25년 두 번째, '10가지 이야기' - 2.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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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란 함께 걷는다는 뜻이다.
난 이 말을 좋아한다.
결정이든, 행동이든 홀로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내게 동행은 행복한 안식처와 같은 단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내 의지 보다는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의 의지를 맞춰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진취적인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나도 진취적인 누군가가 된다.
소심한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나도 소심한 누군가가 된다.
스펀지, 그래, 딱 내가 그런 사람이다. 홀로는 무엇도 쉽게 하지 못하는.
살아가며 손에 꼽을 몇 명의 친구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나는 이미 다섯 손가락을 모두 꼽을 수 있으니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다.
인사치레로 아, 네네.. 하는 그런 사람은 그냥 아는 사람으로 분류하면 된다.
다섯 손가락. 그래, 다섯이면 충분했는데.
세상은 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함께 지팡이를 짚으며 살아가고 있을 먼 훗날을 기대했지만,
기대는 그저 기대에 불과한 것일까.
둘은 나를 보기 좋게 사기를 치며 꽤 많은 내 재산을 빼앗고 달아나 버렸고,
하나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인사도 나누지 않고 향 냄새를 맡게 했다.
그래, 셋이면 그래도 괜찮지.
아니, 마음에 맞는 하나 정도만 있어도 좋을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하나는 멀리 비행기를 타고 떠나서
이제는 함께 술 한 잔 기울일 수도 없는 형편이 되어 버렸고,
남은 하나가 오로지 나의 절친이라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만난다고 하던가.
저 친구도 짝이 없고, 나도 그렇다.
뭐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야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저 친구는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 사는 게 편하다던가.
즐거울 때도, 힘겨울 때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우리는 친구였다.
소주를 몇 병을 마셨던지,
천장의 등불들이 파란색의 테이블 아래로 스며들던 어느 날,
손을 꽉 잡고는 그렇게 약속했다.
우리 둘은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끝까지 우린 함께 하자고.
약속, 기대..
이제는 그런 허망하게 사그라지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였지만, 결국 혼자였다.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그렇게 함께했던 우리였는데.
거기는 어떠니?
거기에도 나처럼 너와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
아니면, 정말 너를 사로잡는 그런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만났어?
보고 싶다, 친구야.
// 25년 두 번째, '10가지 이야기'를 써봅시다.
https://damoang.net/writing/353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