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장에 나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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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다녀오면 아주 조금 몸이 축나긴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안정을 찾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선 서로 자신의 마음을 ‘내색’하지 않음이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타인들은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저만 속타하는 것 같은데,
광장에서 만나는 수 많은 시민들을 보면서 ‘맞아, 홀로 걱정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한 편으로는 안심하고,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더불어 광장을 가득 채운 수 많은 인파의 한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 기운을 주고, 기운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성조기를 들고 또 다른 광장에 나오시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같은 모습이고, 같은 이상인 거죠.
‘망가질 것 같은 세상을 우리가 바로 잡아 세운다.’
아이러니입니다.
이런 상황에 반박을 하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맞는 방향’이라고.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말도 되지 않은 궤변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분들의 ‘신념’은 정직하고 바른 것이거든요.
세상이 망가지고 있고, 가만히 두면 엉망이 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나온..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왜 광장에 나오는가,
왜 광장에 나가는가.
작가 유시민이 출연했던 어떤 유튜브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유시민은 억울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젊은 청년 유시민에서 장년 유시민을 거쳐, 이제는 노년 유시민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유효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텐데,
자신만 그렇게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자신만 빼고 다른 이들이 살고 있을 세상.
죽지 않는 드랴큘라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에서 바쁘게 먼저 퇴장해버리게 되는.
이런 심정이셨나 봅니다.
그러다 어떤 책을 읽은 후, 이런 불편부당했던 생각을 접게 되셨다고 하죠.
‘결국엔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저 조금 더 빨리 죽게 되든, 조금 더 늦게 죽게 되든 모든 사람들은 다 죽는다.’
부당하게 권력을 잡고 독재로 세상을 어지렵혔던 이들도,
그 세상에서 침탈당하고 수탈당했던 이들도,
세상을 바꾸고자 애를 썼던 이들도,
모두 그 시대, 자신에게 주어졌던 시간을 살아나고 나면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누가 하나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거죠.
그래서, 작가 유시민은 ‘억울했던 그 마음’을 덮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저 이렇게 ‘한 시절 살아가는 짧은 운명’의 존재들인거죠.
왜 우리는 광장에 나갈까요.
왜 우리는 광장에 나올까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바꾸어나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기회 자체도 많지 않고,
그런 권한도 별로 없으며,
그런 힘도 아주 미약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무도한 독재를 펼치려는 그릇된 이가 세상을 혼탁하게 하려 할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을 때,
‘진정 우리가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 지를 고민해봐야 하는 장’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하고, 소중한 순간입니다.
그 광장에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 현실로 발현해줄 수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시선’도 함께 합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
우리의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
윤택하기를 바랍니다.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염원으로 우리는 광장으로 나옵니다.
광장의 스크린에 비춰지는
수 만 가지 빛의 방울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깃발들이 함께 휘날리는 걸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바른 방향으로 흐를 겁니다.
너무 마음 졸이지 않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걱정스럽다 싶으시면, 광장에서 ‘다른 모습의 나’를 만나보셔도 좋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