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일상파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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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딱 잘라서 ‘이것이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제대로 된 원인을 찾으셔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렇지, 그렇게 설명하는 게 합당할 테지.
저 의사가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말하는 증상을 근거로 알음알음 판단을 내려야 하니,
그렇게 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답변일 테지.
결론적으로 의사는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추측하는 수밖에.
내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저녁부터였다.
평온한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리되었고,
곧 마무리될 것 같았던 그 사건은 점점 느리장을 부리듯 늦어지더니
지금까지도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말 그대로 그 상태 그대로 멈춰있는 듯 했다.
틈만 나면 속보를 들여다보며 이제 곧 마무리될까, 해결될까.. 하는 바람으로
백여 일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순 없다.
이렇게 내 평범한 일상이 파괴되어 버렸다.
친구와의 약속들은 기약 없이 뒷전으로 밀려 버렸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무엇을 해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알게 모르게 솟구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분노.
나는 내 일상을 되찾고 싶었다.
내 일상을 파괴한 주범을 잡아야 했다.
뒤틀어지는 내 삶의 궤적과 그 일상 파괴범의 행적이 고스란히 맞물리지 않는가.
맞다, 저 일상 파괴범으로 인해 내 일상이 이렇게 망가지고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저 넘을 막아 세워야 한다.
저 넘을 잡아넣어야 비로소 내 일상이 되살아나리라.
오늘도 나는
내 부서진 일상을 다시 꿰맞추고자 하는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 일상 파괴범에게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저 일상 파괴범을 떠올리지 않고 몇 시간이나마 버틸 수 있을지.
날씨를 확인하고 외투를 고른다.
단단히 견딜 수 있도록,
내 일상을 되찾은 그날까지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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