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 유일하게 골품제 관계없이 출세 가능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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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시위부라고 하는 기관인데 역할은 왕실 근위대입니다.
다른 관직이나 군대는 진골이나 6두품 등 중앙 귀족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설령 들어가도 하급 실무자 이상은 못 올라가는데 비해 시위부는 처음부터 경주 출신 사람과 귀족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주로 신라 왕실이 직할지처럼 다스리던 조령과 추풍령 일대 사람들을 자원입대를 받았는데, 경주를 지키는 정규군인 육기정이 신라 경주 출신 사람만 받은 걸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일이죠.
거기에 이 시위부에 한해서는 골품 제한을 무시하고 장군에 오를 수도 있어서 지방민들에겐 유일한 출세 루트였고,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이 원칙을 유지해서 신라를 지탱하는 주요 군사적인 인재들이 여기서 많이 나왔죠.
이렇게 한 이유는 저 왕실 근위대마저 경주 사람을 받고 지휘를 진골에게 맡기면 로마제국의 프레토리안 가드마냥 하극상을 일으켜 왕에게 맞먹으려 들 것이기에 일부러 아웃사이더이자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끌어모아 은혜를 입히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지방민들에게 충성을 받아내려는 것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 시위부 출신 사람 중에는 신라 멸망에 기여하는 후백제의 초대 국왕 견훤도 끼어 있었습니다.
견훤은 시위부 장군에서 그치지 않고 나도 진골처럼 나라를 쥐락펴락 해보고 싶다는 야망을 가졌지만, 그게 안 되서 결국 뛰쳐나가 후백제를 세웠죠.
그러다보니 후백제의 견훤은 초기부터 경상도 서부 지역 일부를 차지하고 신라의 지방군을 흡수해서 후고구려보다도 앞서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죠.
후고구려와 고려에 비해 초기 후삼국 시대에 후백제가 앞서서 치고나간 비결이기도 합니다.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외부인을 친위대로 받아들인다는 아이디어가 말이죠.
왜이러냐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