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장례 사업을 하는가: 거품 낀 슬픔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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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사업을 하고 있다. 후불제 장례 플랫폼 사업이다. 모든 사업의 시작은 고객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전문가의 영역일수록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고객을 기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중고차 시장이 그러하고, 건축 인테리어 시장, 보험 시장, 카센터 시장이 그러 하다.
중고차는 허위 매물, 인테리어 시장은 시공 비용 및 부실 공사, 보험 시장은 불완전판매, 카센터 시장은 과도한 수리 비용 등 고객 기만 현상으로부터 생긴 고객의 결핍은 각각의 분야별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로 재탄생 되고 있다.
그러한 고객의 결핍이 존재하는 시장,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고객을 기만하는 현상이 발생되어도, 오히려 성장하는 시장, 나는 그 시장을 우리나라의 장례(상조)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 구조로 진입하였다. 사망자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고, 현재 3조 원에서 7조 원으로 성장하는 시장이다. 빈번하지 않은 구매 패턴으로 인하여, 상품에 대한 정보의 폐쇄성과 오롯이 장례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시장의 영역은 구매 정보에 대한 탐색을 무색하게 한다. 또한, 시장의 특수성(고인에 대한 감성적 요인)은 비용 지출에 대한 합리적 제어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일부 대형 상조 회사의 모럴 해저드(자본잠식, 공금 횡령, 수익 악화, 부도 등)에 대해 소비자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전자 제품 결합 상조 상품이라는 마케팅 툴을 사용하여, 불완전 판매 및 소비자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선불식 위주의 국내 상조 시장은 너무나 폐쇄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한 폐쇄적인 시장 구조의 폐해는 그대로 고객이 받고 있다. 지금의 선불식 상조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이미, 선불식 상조 시장은 포화 상태이다. 2019년 1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본금 상향 조정(3억→15억)으로 인하여, 중소형 상조 회사들은 이미 폐업되거나 도산하였고, 현재는 대형 상조 회사 중심으로 산업은 재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현재의 선불식 상조 시장이 증가하면 할수록 고객의 니치 마켓(유사한 기존 상품이 많지만 수요자가 요구하는 바로 그 상품이 없어서 공급이 틈새처럼 비어 있는 시장)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객님, 이번 기회에 75인치 TV를 준비하세요.”
평일 늦은 저녁에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는 홈쇼핑 방송이다. 처음에는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 프로그램은 상조 상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상하지 않나? 상조를 가입하면 전자 제품을 준다고 한다. 상조 서비스의 설명 보다 전자 제품의 상품을 더 많이 설명하니 말이다.
고객은 생각한다.
‘그래 어차피 우리도 부모님의 장례를 준비해야 하니까 이번 기회에 전자 제품도 받고, 상조 하나 가입하자’
오래된 냉장고(또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를 교체해야 할 듯하여, 대기업 전자제품 대리점에 방문한다. 그런데, 내가 구매하고 싶은 전자 제품이 예상보다 가격이 더 비싸다. 생각했던 가격 보다 더 많이 나온다. 그리고 갈등한다. 그때, 판매 사원이 다가와 이야기한다.
“고객님, 상조 가입하면 최대 130만 원을 할인해 드립니다.”
“만기까지 유지하시고, 100% 혜택받으세요.”
이게 웬 떡이냐, 상조를 가입하면 최대 130만 원을 할인해준다고 한다.
‘그래 어차피 부모님 장례도 미리 준비해놔야 하니, 가입해서 할인도 받고, 준비도 하자.’
우리는 그렇게 상조 상품을 가입한다. 전체 약 600만 명의 상조 가입자 중에서, 이렇게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을 가입한 상조 가입자는 약 32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매년 약 최소 55만 명의 고객이 홈쇼핑, 대형전자제품대리점, 온라인 등을 통하여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을 가입한다. 하지만, 상조를 가입하면서 받은 (또는 할인받은) 전자제품은 공짜가 아니다
여러분이 가입한 상조 상품 금액에는 전자제품대금과 상조 회사의 마진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600만 원의 상조 상품 총액에는 장례 의전 도급 원가 350만 원 + 전자제품대금 120만 원 + 상조 회사 마진 130만 원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조를 가입하면 사은품으로 알고 있었던 전자제품이 여러분이 매월 납부하는 월 납입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상조 회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고지를 녹취 계약을 통하여 고지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 속았네, 그럼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 계약을 해약해야겠다.
상조 상품을 가입하고 나서 해약을 하게 되면, 해약 환급률이 적용되어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해약환급금은 실 상조 부금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가입 증서를 잘 보시라. 여러분들이 납입하는 월 납입금 중에서 대부분의 금액은 전자 제품 대금이고, 아주 적은 금액의 실상조 부금으로 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최소 36개월부터 60개월까지) 여러분들이 가입한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을 해약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전자 제품 대금을 제외한 실상조 부금의 해약 환급률을 적용받아 환급받는다. 즉, 600만 원의 상조 상품 총액 중, 현재까지 300만 원을 납부하였으니 300만 원의 해약 환급률을 적용받아 환급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300만 원 중에서 전자제품 대금 120만 원을 제외한 금액의 환급률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해약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전자 제품의 대금을 그대로 납부하는 구조인 것이다. 하물며 할부 이자까지 말이다.
어차피 가입한 거, 그냥 상조를 써야겠다.
갑자기 장례가 발생되면 대부분 정신이 없다. 경황이 없다. 살면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한마디로 패닉 상태가 온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일전에 가입한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상조 회사에 연락하여 장례를 치른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이러한 패턴으로 전자제품 결합 상조 상품을 사용한다. 어차피 가입했으니까, 대형 상조 회사니까 믿을만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앞서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 구조에 대하여 언급했듯, 여러분들이 그러한 상황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가입한 전자제품결합상조 상품을 사용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고가의 전자 제품 대금과 상조 회사의 마진을 부담하게 된다. 즉, 여러분들은 상조 상품만 가입한 것이 아니라, 전자 제품 구매에 대한 계약도 함께 한 것이다. 상조의 사용은 계약의 종료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덕분에 장례를 잘 치웠다고 말한다. 여러분들은 전자제품 대급과 상조 회사의 마진을 지불했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이 얼마나 좋은 사업인가? 상조 회사는 전자제품 판매에 대한 별도의 마진과 상조 상품에 대한 마진을 고객에 받고 나서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대형 상조 회사에 소속된 장례지도사는 일부 업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도급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즉, 정규직 사원이 아니다. 또한 독점 계약이 아닌 경우들이 많다 보니, 지역의 장례 의전 업체(또는 개인사업자)는 여러 상조 회사와의 중복 계약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형 상조 회사의 유니폼만 바꿔 입을 뿐, 그들은 사실 다른 상조 회사의 도급을 받아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등장한 이후, 모든 산업의 소비 자체가 합리화되고 고객도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상조) 시장의 합리화는 아직도 적용되지 않는다. 빈번하지 않은 소비 형태와 상황의 특수성은 시장을 왜곡한다.
우리나라의 장례 소비문화는 더 합리적이어야 한다. 단돈 몇 만 원의 신발을 구매하더라도, 여러 사이트의 비교 검색을 통하여 구매를 결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많게는 수백만 원의 비용을 치르는 장례 상품에 대하여서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하다. 경황이 없다고 그것이 효도라고 합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시는 부모님도 자식이 힘들게 번 돈이 그렇게 쓰이는 것을 원하시지 않을 테니까.
#몇년전 딴지일보에 기고했던 연재 기사 입니다.
바다사이님의 댓글의 댓글
아라님의 댓글
감각제로님의 댓글
떼굴떼굴님의 댓글
그래서 저희식구들은 딱히 상조상품 가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더라구요.
sunandmoon님의 댓글
가까운 지인들만 봐도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면서도 수준은 들쑥날쑥하고 경황이 없으니 불만이 있어도 표현할 여유도 없고,
혹시 가시는 길에 괜히 좋지 못한 대접을 받게 할까 쉬쉬하기도 하고, 참 뭐랄까 서비스 받으면서 눈치 많이 보더라구요.
더 합리적이고 직관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6미리님의 댓글
이젠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하며 온갖것들로 포장한 장례사업으로 옮겨간것 같죠.
처음엔 상조회사가 나타나 그동안 장례식장에서 암암리에 있던 폐해들을 몰아낸거 같더니 이젠 본인들이 적폐가 되어가고 있죠.
그래도 법 테두리 안에서 하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려나... 여튼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