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으로 모셔지는 조선 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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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코미 160.♡.37.47
작성일 2024.09.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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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평입니다.

이삼평이란 이름은 당시 그가 일본에 기록된 이름 가네가에 산베에(金ヶ江 三兵衛)란 이름을 추정해 복원한 것으로 진짜 이름인지는 모릅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 다이묘 나베시마 나오시게(동작구와는 관련 없음)에게 끌려가 지금의 북규슈 사가 현 아리타 지역에 정착해 도자기를 만든 인물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쌍하게 끌려간 피해자처럼 한국에서 여겨지기도 했는데...

기록을 조사해 보니 그는 충청도 공주 내지는 경상도 김해 지역 출신 도공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기록에 "조선의 길을 모르던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 도왔다.". "이삼평은 우리 일본군에 적극 협력한 분이다."라 적을 정도였으니 일본에 협조적이던 인물로 보입니다. 

이삼평은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영지 사가 번에서 사무라이 대우를 받으며 도자기 생산이 가능한 고령토를 찾다가 지금의 아리타초 지방에 고령토가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사가 번의 지원으로 150명의 조선 도공을 부리며 도자기 생산을 시작하죠.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아리타 도자기는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에 팔려나가며 중국 경덕진과 덕화요 등과 함께 명품 도자기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렇게 도자기를 팔아 모은 돈으로 사가 번은 메이지 유신 당시 사쓰마 번, 조슈 번, 도사 번과 함께 에도 막부를 무너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화를 이끌게 되죠.

아무튼 그렇게 된 연유로 이삼평은 지금도 사가현 아리타초의 스에야마 신사에서 신으로 모셔지고 있죠.

댓글 7 / 1 페이지

luqu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luqu (218.♡.215.30)
작성일 15:41
일본 기록이라면 끌고 갔다, 반항했다고 적을 리가 없을 거 같긴 한데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60.♡.37.47)
작성일 15:42
@luqu님에게 답글 일본군에게 길안내를 했고, 사무라이에 준하는 대접을 한 걸 보면 어느정도 순왜 활동을 한 건 사실 같긴 합니다.

luqu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luqu (218.♡.215.30)
작성일 16:07
@코미님에게 답글 조선에서의 대우와 일본에서의 대우가 확연히 다르긴 했을테니
넘어가서의 행적이 그랬다고 한다면 납득되는 부분이긴 하겠네요.

제리아스님의 댓글

작성자 제리아스 (118.♡.12.91)
작성일 15:44
뭐 당시 정권에 대해 모두 긍정적이진 않았을테니 저런 사례도 있을수 있다 봅니다

후로다이버님의 댓글

작성자 후로다이버 (175.♡.217.28)
작성일 15:54
뭐.. 굳이 따지면 매국노였던 거네요.

LG트윈스님의 댓글

작성자 LG트윈스 (121.♡.28.135)
작성일 15:55
저도 이삼평 도공과 아리타 도자기에 대해 흥미가 있어 예전에 블로그도 썼긴했는데... 이삼평은 순왜로 봐도 돼지만 아무래도 자신을 더 대우해주는 일본 측의 조건이 만족스러워서 건너간 이후 적극적인 도자기 생산을 한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https://blog.naver.com/infolog2013/223498662775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60.♡.37.47)
작성일 15:59
@LG트윈스님에게 답글 뭐 이삼평 입장에서는 저걸 마치 삼성에서 일하던 비즈니스맨이 더 높은 연봉과 직위를 약속한 소니로 이직하는 그런 감각으로 갔던 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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