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유도설 보다는 미국의 전략판단 미스와 소련의 핵개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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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우원

작성일
2025.02.27 23:11
본문
역전다방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원자폭탄 개발 이후 더이상 재래식 무기로 적국을 포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군비감소는 필연적이였고...
굳이 국경에 군대를 주둔하기 보다는 그냥 전략폭격기로 상대국가에 원자폭탄을 날리면
되는 게임이였기에 항공기 거점 정도만 필요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도 1949년 핵개발 전까지는 남침할려던 김일성을 만나주지도 않다가
핵개발 이후 김일성을 만나 남침 가능하냐고 물어볼정도로 태도가 급변하였습니다.
소련의 정보도 많이 공개된 이 시점에서... 남침유도설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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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1 페이지
산이아빠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7 23:51
@진우원님에게 답글
49년 핵개발과 중공의 승리가 소련의 입장에선 아시아에서 영향력 강화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거겠죠.
진우원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8 17:26
@산이아빠님에게 답글
또한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큰형님으로서 뭔가 보여주면서 미국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잡아 놓을 계획이였겠죠.
달짝지근님의 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작성일
02.27 23:36
당시 한반도의 정치 안보적 분위기로는 소위 어그로 끈 이승만 때문에 북쪽의 안보적 여론이 차라리 선빵 치는게 안전하다곤 생각할수도 있지만.. 이건 김일성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도 쓰인 부분이긴 해서 결정적인 부분은 아닐테고요
아무래도 뒷배인 강대국들의 입장이 바뀐게 가장 크긴 하죠
물론 스탈린이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북에서 한반도에서 한민족끼리 내란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면 김일성도 남침을 함무로 시도치는 못했긴 할겁니다
이런 부분에선 어그로 끈 남한의 정치꾼들의 책임이 상당부분 있긴 하죠
아무래도 뒷배인 강대국들의 입장이 바뀐게 가장 크긴 하죠
물론 스탈린이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북에서 한반도에서 한민족끼리 내란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면 김일성도 남침을 함무로 시도치는 못했긴 할겁니다
이런 부분에선 어그로 끈 남한의 정치꾼들의 책임이 상당부분 있긴 하죠
진우원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7 23:47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글쎄요.. 어짜피 남한이나 북한이나 독단적으로 전쟁은 불가합니다.
북한도 소련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냥 목줄 묶인 개의 공허한 짖음을 뿐이죠.
소련도 핵개발 전까지 북한의 요청은 콧방귀도 안뀌었습니다.
그러다 핵개발 하고 난 다음에
미국과 붙을 자신이 생긴거죠.
북한도 소련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냥 목줄 묶인 개의 공허한 짖음을 뿐이죠.
소련도 핵개발 전까지 북한의 요청은 콧방귀도 안뀌었습니다.
그러다 핵개발 하고 난 다음에
미국과 붙을 자신이 생긴거죠.
프레이얼스터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8 00:07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이승만이 어그로 끌었고 김일성이 거기 말린 거라고 주장하시는데, 그런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김일성은 무력을 동원한 남한 점령이라는 스스로의 욕망과 선택으로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김일성은 무력을 동원한 남한 점령이라는 스스로의 욕망과 선택으로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프레이얼스터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8 00:05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저도 글쎄요...네요.
남북이 신탁통치로 분단되고 그 후 북한이 이미 공산화되어 서로 이념갈등이 커져서 월남과 월북을 수도 없이 하던 상황이었는데요.
김구 등 여러 명망있는 분들이 북한에 가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미 해결불가능한 상태에 왔었고요.
이런 문제들이 쌓이니 결국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허락한 겁니다.
남한과 북한 모두 적대시하고 38선에서 계속 국지전이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어느 쪽도 큰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던 게 당시 상황입니다.
어그로 끈 남한 정치꾼들 책임이 상당부분 있다고 하셨는데, 정작 살펴보면 전쟁 발발에 이건 그리 큰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큰 전쟁은 누가 어그로 끈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일어나는 거니까요.
남북이 신탁통치로 분단되고 그 후 북한이 이미 공산화되어 서로 이념갈등이 커져서 월남과 월북을 수도 없이 하던 상황이었는데요.
김구 등 여러 명망있는 분들이 북한에 가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미 해결불가능한 상태에 왔었고요.
이런 문제들이 쌓이니 결국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허락한 겁니다.
남한과 북한 모두 적대시하고 38선에서 계속 국지전이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어느 쪽도 큰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던 게 당시 상황입니다.
어그로 끈 남한 정치꾼들 책임이 상당부분 있다고 하셨는데, 정작 살펴보면 전쟁 발발에 이건 그리 큰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큰 전쟁은 누가 어그로 끈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일어나는 거니까요.
아사님의 댓글
작성자
아사

작성일
02.28 10:42
뭐... 당시 기록으로는 분단 = 전쟁은 필연이었습니다. 미국이 오판이 북한의 남침에 도화선이 되었지만, 애초에 전쟁이 일어날 상황을 미소 양국이 막고 있었던 거라서 어느쪽이던 태도가 바뀌는 순간 바로 전쟁이 나는 거였죠.
진우원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2.28 17:29
@아사님에게 답글
냉전이 시작되는 초기였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던 미국과 확장할려던 소련의 대리전이 아니였던가 싶습니다.
그나마 핵 때문에 덤비지 못했는데, 소련마저 핵개발하니 미국이 핵을 쉽게 못쓸꺼라는 확신이 전쟁지원을 가능하게 한거겠죠.
그나마 핵 때문에 덤비지 못했는데, 소련마저 핵개발하니 미국이 핵을 쉽게 못쓸꺼라는 확신이 전쟁지원을 가능하게 한거겠죠.
산이아빠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