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223.♡.91.207)
2026년 5월 4일 PM 05:01
지난 답사 후기 1편에 이어 2편을 작성합니다.
https://damoang.net/free/6220907
이건 1편보다 짧습니다!
4. 천도교 중앙대교당 : 6.10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되다.
네번째 답사지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주소 :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57)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교당이 있던 곳으로 천도교에서 발간한 잡지 '개벽'의 사무실이자 6.10만세운동 당시 격문을 보관했던 장소입니다.(동일 장소는 아니고 붙어있는 것과 다름 없는 인접 건물)
밖에서 사진 찍는 것은 잊어버리고 쉬는 시간에 내부에서만 사진을 찍어왔네요.;;




이곳에서 6.10만세운동 계획이 어떻게 세워지고 어디까지 실행됐는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
주요 인물 소개부터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권오설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온 안동의 모스크바, 안동군 풍서면 가일마을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하고, 교육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6.10만세운동을 기획하여 고군분투하다가 서대문형무소 독방에서 출소를 100일 앞두고 돌아가신 분입니다.
김단야 : 일제강점기 박헌영, 임원근과 함께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트로이카'로 불리며 신간회 활동과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에 참여했지만 발각 후 상해로 피신하여 조선공산당 임시 상해부를 이끌면서 6.10만세운동에도 관여하고, 30년대에 소련에서 활동하다가 일제밀정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분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기억을 못 하고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과의 삼각관계?만 기억하고 있었네요. 아이쿠.
강달영 : 1925년 2차조선공산당(국내) 당수, 진주 출신
5월 1일 메이데이행사를 상의하려던 권오설이 상해로 피신해있던 김단야를 만나러 단동(중국 안동)으로 갔고(4/27~28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음) 순종이 돌아가시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어 인산일이 정해지면 3.1때처럼 해보자고 김단야가 이야기를 하여 피가 뜨거워진 권오설이 서울로 복귀하여 공산당 간부들에게 얘기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2차조선공산당을 재건중인데 일 또 벌이면 자살행위라고 생각해서 화요회파 사람들이 적극적일 수 없었는데, 권오설이 자신이 책임지고 하겠다고 해서 그 조건으로 동의를 받았고, 연락 정도의 도움을 받았을 뿐, 자금이나 조직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권오설이 고려공청(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여서 가장 가까운 2명(박민영, 이지탁)까지 해서 총 3인이 6.10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삐라(격문이 적힌 전단)을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것이었는데, 3.1운동때도 삐라를 받은 사람들은 다 봉기했었다고, 이걸 받으면 봉기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권오설은 천도교 청년동맹의 핵심 지도자이자 인쇄직공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던 박래원을 설득합니다.(5월 초순)
예전 풍문여고 자리, 현 서울공예박물관 자리에 '감고당'이라는 여흥 민씨들 집에서 살던 민창식 역시 인쇄직공노동조합활동을 하며 고려공청에까지 들어간 인물인데 권오설이 상당하는 인물로 추정되고, 민창식을 먼저 만나서 박래원을 모시고 와달라고 청해서 권오설의 아지트에서 박래원을 만나 삐라 인쇄를 책임지고 맡아달라고 한 것입니다. 권오설이 필요한 격문을 써주고 자금을 대주겠다고 했구요.
박래원에게 이 계획을 전해들은 민창식이 처음에는 펄쩍 뛰고 못 한다고 했는데 박래원이 민창식을 꾸준히 설득하고 조합원이자 천도교인인 두 명을 더 설득해서 총 4명이 명동 인쇄기 가게에서 3차례에 걸쳐서 인쇄기를 사오는데 권오설에게 450원(현재 4,500만원 정도)을 받아서 일주일동안 큰 기계 1대, 작은 것 1대를 사오고 활자도 다 사와서('독립'같은 경우 같이 살 수 없으니 여러 곳에서 활자를 사모아서) 조판을 해서 5월 17일경(혹은 5월 23일경 기록에 따라 다름) 집을 빌려서 인쇄를 시작했는데 5가지 원고를 1주일간 5만2천부가 되도록 찍었다고 합니다.
큰 종이에 여러개를 찍어서 절단해서 5만2천부가 된 것인데, 인쇄 후 절단을 위해 석유괘짝, 버들고리 가방 등에 넣어서 개벽사(20년대 베스트셀러 잡지사, 절단기 보유) 건물(천도교 교당 근처)로 가져왔습니다.
이 격문이 보관된 곳은 교당 동쪽 모퉁이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손재기(손병희 조카의 아들)의 집이었고, 5월 31일에서 6월 1일 사이 손재기가 박래원과 같이 새벽 1시까지 절단을 했고, 이 상황까지는 권오설에게 보고가 됐고 순조로웠는데 6월 4일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동규라는 사람이 위조지폐(중국돈)사건으로 집을 수색을 당했는데요. 경상북도 경찰국에서 제보를 받고 습격해서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삐라(6.10만세운동 격문 ㅠㅠ)이 나와서, 이게 어디서 났냐고 하니 안정식(광산업을 하던 사람)에게 받았다고 하고, 안정식이 6월 5일 붙잡혀 또 추궁을 당하고 나서부터 2가지 썰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썰 : 안정식과 권오설은 동향 사람으로, 자금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권오설이 김단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지방에 삐라를 배포하려던 계획(여비를 주고 지방에 배포하고, 개벽이나 신여성 같은 잡지 봉투에 삐라를 넣어서 사회단체들에 배포)을 갖고 있었는데, 이게 순조롭지 않자 안정식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삐라를 주고, 안정식도 현금을 다 구하기 어려워 위폐범인 이동규에게 삐라를 보여주며 돈을 구하려고 했다는 썰이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 썰 : 종로경찰서 형사가 나중에 발행한 사상범검거실화집에서, 안정식이 천도교 간부인 이동규에게 받았다고 실토, 이동규는 자기 부인(개벽사에서 근무)에게 삐라 2장을 받아서 안정식에게 주었다는 썰이 있는데, 안정식과 이동규가 무슨 관계인지도 아직 파악이 안된다고 하네요.
권오설이 박래원에게 전달했던 돈도,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러 유학갔던 20여명이 보낸 자금 450원이라는 썰, 이지탁이 해방 이후 동아일보에게 쓴 내용으로는 이 아무개가 개인돈을 5천원을 줬다는 썰과 김단야가 단동에서 줬다는 썰도 있다고 하구요.
암튼 이동규와 안정식이 붙잡히고 난 6월 5일부터 경찰이 권오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종로경찰서에서 개벽사를 주시하고 있었어서 6월 3일 개벽사를 압수수색해서 '개벽' 6월호를 모두 압수하는데, 이 때 이 잡지에 실린 시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교수님 말씀으로는 잡지가 모두 압수되었기에 당시 사람들이 이 시를 몰랐을 것이라고 하셨구요.
종로경찰서에서 천도교에 위장잠입시킨 프락치가 6월 6일 개벽사 직원들의 얘기를 엿듣고 손재기 집에 뭔가가 있다고 듣고 종로서에 보고를 해서 형사대가 급파되어 오후 4시반에 삐라도 모두 압수당하고 개벽사와 천도교 사람들 100명 가까이가 압송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던 박래원이 다음날인 6월 7일부터 삐라를 뿌리려는 계획을 손재기에게 알리려고 왔다가 박래원도 붙잡히고 말았구요.
프락치에 관해서도 경찰에서는 숨기려고 하고, 동아일보는 경찰들에게 주워들은 얘기로만 기사를 작성해서 정확하지 않고, 참여자들도 자기 역할만 알고 있어서 사건의 재구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잠시 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다가 천도교 교당 앞에 있는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 앞에서 방정환 선생에 대해 간략히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 뒷편에 천도교 교당이 좀 같이 찍혔군요.)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로 개벽사를 맡아서 격무에 시달려 젊은 나이에 사실상 과로사를 한 것인데, 몸집이 컸고 땀을 많이 흘려서 늘 손수건을 갖고 다니며 땀을 닦았고, 빙수를 좋아했어서 하루에 빙수를 여덟그릇이나 드셨다고 합니다.(왜 이런 건 메모를 안 해도 잘 기억나는 거죠. 풉 ㅋㅋ 저도 빙수 좋아해요. ㅋㅋㅋ)
다음 답사지로 이동하면서 친구가 했던 말이, 그 당시 태어났었다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독립운동을 했을 수도, 친일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창식도 다른 주변 인쇄직공들도 처음부터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던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주변인들의 설득에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싶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동지들과 함께여서 할 수 있었던 걸테구요.
암튼 4번 답사지 내용까지 적고 다음 5번 답사지, 단성사와 권오설 아지트터, 세브란스 의전 만세운동 현장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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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V4030
05.04 · 210.♡.2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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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FV4030 작성자
05.04 · 223.♡.90.144
네, 억울하게 소련에서 누명을 쓰고 죽고 부인 주세죽 선생도 카자흐스탄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에휴…
근데 6월 10일이 생일이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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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05.04 · 211.♡.164.238
정성글 추천합니다. 답사 가보는 것도 좋네요ㅎ 빙수 여덟 그릇이나 드시다니오{emo:damoang-emo-01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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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수현 작성자
05.04 · 223.♡.90.144
가을에도 답사가 있을 거라고 해요.
그때는 답사 정보를 미리 알게 되면 공유할게요.
저는 빙수 여덟그릇은 못 먹고 두세그릇은 ㅋㅋㅋㅋ 집에 빙수기가 있어서 소박하게 두세그릇은 먹을 수 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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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ita
05.04 · 125.♡.203.162
{emo:damoang-emo-007.gif}
공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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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kita 작성자
05.04 · 223.♡.90.144
후기 작성하는 게 진짜 공부가 됩니다.
듣고 메모해온 것에 더해 자료 찾아서 글 작성하는 게 찐 공부가 되는 느낌인데 안 하던 걸 하려니 쉽지 않네요.
그래서 원래 한꺼번에 올리려다가 마지막편 다 못 쓰고 이것만 먼저 올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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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감자동
05.04 · 23.♡.120.140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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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감자동 작성자
05.04 · 223.♡.90.14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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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rvelous
05.04 · 118.♡.80.213
와.. 답사와 정성글! 존경합니다요!!
편히 앉아서 보기 죄송할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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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marvelous 작성자
05.04 · 223.♡.90.144
다모앙에 후기 올리려고 답사 갑니다. ㅋㅋ
이거 말고도 다른 답사 후기 2건 반년이나 밀려있습니다. ㅋㅋㅋ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안 나요 ㅠㅠ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김단야 선생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쪽에서 종종 보이던데.. 30년대에 돌아가셨군요. 6.10 만세운동하면 87년 6.10 항쟁이랑 많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아.. 그때가 제 생일이기도 하군요. 허허허. 민주주의여 만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