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223.♡.85.198)
2026년 7월 24일 AM 07:52

어제 가네코 후미코 선생 순국 100주기 기념 마음메시지에 이어 오늘도 부민관 폭파 의거 81주년 마음메시지를 띄워주신 뇌공앙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부민관 폭파 의거 8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오후 5시에 부민관 폭파의거 81주년 기념식이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부민관 폭파의거가 어떤 일이었는지, 그리고 이 때 직접 참여하신 세 분 중 조문기 선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광복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던 1945년 7월 24일 국내에서의 마지막 의열투쟁인 부민관 폭파의거가 일어납니다.
당시 악질 친일파였던 박춘금(경남 밀양 출신으로 중의원, 현재의 국회의원을 일본제국의회에서 두 번이나 한 유일한 조선인으로 해방 후에도 재일교포 사회에서 떵떵거리고 잘 살다가 죽고난 후 밀양에 몰래 묘를 썼으나 파묘되고, 송덕비도 철거된 바 있는 인물로 어떻게 조선인을 핍박하고 학살 하였는지, 그리고 후손들도 잘 먹고 잘 사는지;; 아래 링크의 기사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많이 열 받는 글이긴 합니다.;;
https://omn.kr/2b84l) 이 조직한 대의당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부민관에서 열어 조선 청년들을 전장에 내보내고 조선인들을 또 학살하려고 했었는데요. 이 정보를 입수한 대한애국청년당 소속 조문기(19272008), 유만수(19241975), 강윤국(1926~2009) 3인이 부민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여 폭파시킴으로써 대회를 무산시켰습니다.
이 일로 일제가 계엄을 선포하고 의거를 벌인 분들을 찾으려 하였으나 해방이 되고 나서야 밝혀졌다고 합니다.
아래 영상에 부민관 폭파 의거를 재연한 연극과 의거에 참여하셨던 조문기 선생의 육성 증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내용이니 같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부민관'이 무엇인가 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시민회관' 같은 곳이었나봅니다.
당시 경성이 '시'가 아니라 '부'였어서요.
그리고, 오늘 있을 기념식에 '광복회 화성시지회'에서 후원을 한다고 적혀있는데요.
조문기 선생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으로 만 15세때인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강관주식회사의 훈련공으로 일하다 안성 출신 유만수 선생을 만났고, 1943년 유만수 선생과 함께 조선인 차별에 항의하는 파업을 벌이고, 체포를 피해 일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서상한 선생을 찾아가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탈출을 돕는 활동을 하다가 1945년 1월 서상한 선생의 도움으로 귀국을 합니다.
그리고 7월에 부민관 폭파의거에 참여하고, 체포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 야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맞습니다.
이후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르고, 이승만 암살음모사건에도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하여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힘쓰셨지만 사전이 발간되기 전인 2008년 돌아가셨습니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조문기 선생에 대한 특별전시가 조문기 선생의 고향인 화성시 제암리 소재,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있었는데 제가 정보 취득이 늦은데다 컨디션 난조, 다른 스케줄과 겹침... 뭐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전시를 보지 못 했습니다.;;
그 전시에 대한 후기는 아래 링크 속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고 위의 내용이 전시 내용의 일부입니다.
https://m.blog.naver.com/saykim0305/224038946959

전시 제목이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였는데요.
조문기 선생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출처 : 수원일보 - 경기·인천 최고의 디지털 뉴스(http://www.suwonilbo.kr)
작년에 위의 전시를 앞두고 수원일보에 조문기 선생에 대한 칼럼이 실렸는데요.
여기서 조문기 선생에 대해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710
작년에 경기도 뉴스레터에 실렸던 글도 공유합니다.
https://www.gg.go.kr/myggd/vol193/1_0.php
조문기 선생의 회고록 '슬픈 조국의 노래'를 십여년전에 조금 읽다 말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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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댓글
- 겨울에 찍으신 거예요? 발도리 제대로 하고 있네요.
-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하셨던 청년들은 참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해방 후에도 평생 청년으로 사셨던 것 같구요. 감사하고 참 자랑스러운 분들이라 생각
- 다모앙에 이런 글을 올릴 수 있어서 저도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보내세요.
- 어? 아메숏 성묘로 보이네요. 어떻게 만나셨는지도 알려주셔야겠네요. ㅎㅎㅎ근데 벌써 새벽 1시 41분이라서...;; 내일 뵈어요!^^
- 양치를 다짜고짜 하시면 고양이와 사이가 멀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구요. ㅋㅋㅋㅋ양치 훈련을 단계별로 천천히 하셔서 익숙해지게 하시는 게 중요해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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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aboda
08:19 · 110.♡.2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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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baboda 작성자
08:27 · 223.♡.85.198
다모앙에 이런 글을 올릴 수 있어서 저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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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요보호자
08:37 · 222.♡.27.9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는 숨쉬는게 죄가 됩니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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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마요보호자 작성자
08:48 · 223.♡.85.198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하셨던 청년들은 참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해방 후에도 평생 청년으로 사셨던 것 같구요. 감사하고 참 자랑스러운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 따
따뜻한가을
→ 마요보호자
09:03 · 182.♡.231.202
마지막 세번째 대접 받고 있는것이 죄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숙연해집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민주화 운동, 소수자 약자를 위한 운동으로 국회의원이 되어서 대접 받고 있으면 감사해야하고, 같은 운동을 하고도 대접 받지 못하는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이 독립을 위해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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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큰 희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