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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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2024.09.12 16:18
분류 한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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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보이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저 분명한 틈, 저 틈으로 작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어디에 그런 게 있냐며 내 눈을 의심했다.

헛것이라며 눈의 시시경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 하기도 했고,

눈은 정상인데 뒷통수의 어딘가에서 뭔가 인식하는 부분의 이상 증상이라고도 했다.

결론은.. 내가 잘못된 것이라 했다. 환상을 보고 있는 거라도, 실체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이게 정답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걸 그랬다.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 것도 없고, 나는 멀쩡하고, 그저 가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뿐이라고.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보이는 걸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단순한 걸 굳이 말을 꺼내서, 괜히 보인다고 말해서 그런 거였다.

저거.. 저거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인다. 그런 거 없는 거야.


나도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아무 것도, 그냥 나도 어둠으로 뒤덮인다.

당연하지, 눈을 감았으니까. 눈을 감았으니까 아무 것도 보일 수가 없지.

눈을 뜨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안 보여야 정상이다. 눈을 감았으니까.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아니다, 안 보인다.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안 보여.

나도 그래, 나도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보일 수가 없지. 눈을 감았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음.. 아니. 난 안 보인다. 아무 것도 안 보여.

또 다시 그 지긋지긋한 병원에 갇히긴 싫다. 착하다, 친절하다. 그래도 답답하다.

쏟아지는 불빛에, 머리에 온통 뭔가 덕지덕지 붙이고, 묻고 또 묻고.

아.. 그래, 난 안 보인다. 안 보여. 나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난 좋으니까.

난 행복하니까. 눈을 감으면 고요하고, 조용하고.. 그.. 그래도.. 아니, 좋다. 난 좋아.


안 보여, 그 알갱이들. 그 지저분한 알갱이들.. 꿈틀거리는 그 가시 같은 발가락.

후.. 아니, 상상이야. 이런 거 다 상상이다. 마음대로 상상한 거야. 그런 거 없어.

없어, 없지. 그런 게 있을 수가 없지. 보이지도 않는데, 당연히 없지. 그럼 당연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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