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가지 이야기 - 9.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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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내방자여, 저를 찾아 왔다는 건 아마도 당신에게는 꽤 큰 고민이 있어서겠지요?
그렇게 놀란 표정은 거둬 주세요.
당신처럼 곤란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을 맞이하는게 어쩌면 제 숙명 혹은 의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말해보세요.
무엇을 알고 싶은가요? 아니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으신가요?
아직 말씀을 하실 단계는 아닌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세요. 저를 찾아 온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반응을 보였답니다. 저는 그런 것에 아주 익숙하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이런… 벌써 지루하신가요?
하지만, 듣고 나면 인내심을 조금 발휘한게 꽤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 이야기는 거울을 가진 한 여자의 관한 겁니다.
찾아오시는 분들의 취향에 따라 저는 그 여성의 이름을 달리 붙이고 있습니다.
어쩔때는… 카산드라. 어쩔때는 그림하일드. 아니면, 귀여운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는 앨리스라고 부르곤 했답니다.
당신은 어떤 이름을 듣고 싶은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니요, 꼭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여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잘 생긴 남자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맞춰서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안정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젊은 여자나 소녀를 선택 하더군요.
아, 그래요?
그렇다면 거울을 가진 여자의 이름을 페넬로페라 부르도록 하지요.
마음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옛날, 옛날… 당신과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나라의 젊은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당신이 말한 페넬로페입니다.
그녀에게는 신기한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 거울을 이용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었지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싸움터의 소식이라든가… 아니면, 누군가 짓궂은 장난을 꾸미려 할 때도 이 거울은 모든걸 다 비추어 페넬로페에게 알려주었어요.
이 거울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페넬로페에게 입수된 경로나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답니다.
페넬로페는 누구에게도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그녀에게 신비한 힘이 깃든 거울이 있고, 그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간의 이야기만이 있을 뿐이지요.
어느 날 한 손님이 그녀를 찾아 왔어요.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었는데, 페넬로페는 그를 보자마자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요.
네, 짐작하셨던 대로 페넬로페는 평소와 다르게 안절부절하지 못했어요.
거울은 그런 그녀의 동요를 곧 알아채고는 그 표면에 지속적인 파문을 일으켰지요. 페넬로페는 필사적으로 거울면을 가리며, 남자를 맞이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청년은 페넬로페의 동요와 거울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페넬로페에게는 그런 사실이 결코 행운만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더 큰 행운과 이를 관장하는 여신의 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요.
청년은 그 아름다운 입술을 빌어 페넬로페에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웃집 아가씨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댓가라도 치루고 싶습니다.”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페넬로페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악 가셨어요. 너무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 동안 아무런 말도 못했지요. 그 낌새가 얼마나 이상했던지 거울이 신음소리를 내듯이 울렸어요.
그제야 청년은 거울의 이상을 알수 있었지만, 그 전말을 완전히 이해한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소문대로 신비한 힘을 가진 거울이구나 정도로만 여겼던 거지요.
그 아름다운 청년의 눈에 사로잡혀 페넬로페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청년의 손이 뻗쳤을때야 급히 정신을 차릴 수 있을 정도였지요.
청년의 시선에서 감춰뒀던 거울을 꺼내들며, 페넬로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선택을 해야만 했어요.
남자의 부탁을 들어서 이웃집 아가씨의 모습을 비출지, 아니면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독차지 하기 위해 거울을 깨트려야 할지.
네, 그래요. 자신의 소중한 거울을 깨트릴 결심을 해야 할만큼 페넬로페의 눈은 그 청년에게 열중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울은 페넬로페의 인생 그 자체였고, 그녀의 말 없는 동반자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입장이었던 거지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만약, 당신이 그 페넬로페라면?
그 갈등하는 마음의 문턱을 “넘어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고민이 되지 않으신가요?
그렇지 않다고요?
애석하네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저는 당신이 여기에 나타나기 전에, 그리고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그리고 또 당신이 이웃집에 살고 있는 귀여운 여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페넬로페 이야기의 마지막을 들려드릴게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이야기는 끝이 없이 계속 될테니.
결심을 굳힌 페넬로페는 거울을 깨 버렸어요.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게 곧 판명되었지요.
자신의 눈 앞에서 거울을 깬 페넬로페를 남자는 미친 여자처럼 취급했어요.
그리고, 거울은 자신을 해한 페넬로페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거울은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있었답니다. 제가 당신이 가진 문제를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지만, 거울은 그 자신의 존재를 잃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울은 페넬로페를 영원히 가두었습니다.
가두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녀가 갇힌 곳이 시간이라는 감옥이었기 때문입니다.
페넬로페는 거울의 힘에 의해 영원히 과거를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언제나… 매일… 매번…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날이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습니다.
다만, 그 형벌에서 숨통이 틔이는 순간은…
바로… 그 사랑하는 청년이 저 방문의 문턱을 넘어, 그녀를 찾아 왔을때 뿐이었습니다.
벗님님의 댓글
거울이 어떻게 반응할 지 궁금해집니다.
자신은 '영원한 만남을 원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