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두 번째, '10가지 이야기' - 9.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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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지고 난 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두머리가 바로 체포되고, 관계자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우둔한 자의 결말을 바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장면이 아닌가.
당연히 그리되리라 생각했고, 천만다행으로 바로 수습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기대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에 부딪쳤다.
첫 번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고 주춤하며 겨우내 중심을 잡았다.
음? 이게 무슨 상황이지?
조선 시대로 치자면 대역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 어디서 감히 고개를 쳐들고
마치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엮여서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것처럼 그렇게
재판정에 나와서 항변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민주주의. 그래, 민주주의 국가라서 저런 대역죄인에게도 재판할 수 있게
기회도 주고, 충분히 자신을 소명하라고 변호사들도 붙여주는구나.
참 좋은 나라에서 대역죄인도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구나.
그런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변칙적인 법적 해석을 들이밀면서
날짜 계산이 아니라 시간 계산이라며 이리저리 짜 맞추고,
넣어야 할 것을 빼고 해서.. 결론적으로 대역죄인을 풀어줘?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멍해진다.
현실은 늘 꿈보다 거칠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서늘하다.
매번 반복되는 시험에 들게 하듯 우리는 광장으로, 거리로 부른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까, 함께 모여 빛을 밝히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아직 뚜껑을 열지 않는 위스키가 한 병 있다.
그날을 위해,
그날 오픈을 하고 투명한 유리잔에 한 잔을 기울이려고 준비해 둔.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뜨끈한 알코올을 느끼고 싶다.
이제 그만,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 25년 두 번째, '10가지 이야기'를 써봅시다.
https://damoang.net/writing/3533
끝.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개인적은 성격은 이 인물 보다는 조금 더 낙천적인 듯 합니다. ^^;
팬암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