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범죄를 알리는 일본인을 레딧에서 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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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2024.12.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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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 일가, 경성일보에 의해 장남 영조를 기쁨과 함께 "명예로운" 제국군으로 보내고 여동생 임자양이 신이 난걸로 묘사되다 (1943년 12월)



안녕하십니까!

저는 Exposing Imperial Japan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본인 블로거입니다. 현재까지 저는 제 블로그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신문이었던 경성일보에 실린 일본어 기사 200여 편을 사본과 영어 번역본을 공유해왔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제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전 기사들을 Reddit, 트위터/X, 그리고 Bluesky에 꾸준히 업로드해 왔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저의 노력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부끄럽고 학대적이며 굴욕적인 현실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의 극우 세력에 의해 부정되고 억압되어 왔습니다.


양심적인 가책을 느낀 일본인으로써, 저는 이 중요한 자료들이 도서관의 잊힌 구석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여가 시간을 할애히야 가능한 한 많은 자료들을 영어로 번역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지지자 그룹과 협력하여 경성일보 기사 중 하나를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 해보았습니다. 이 작업이 의미 있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느끼신다면 꼭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관심이 충분하다면, 앞으로 더 많은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계획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기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모범적인 조선인 가족'으로 그려진 임씨네 가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임씨 가족이 일본 제국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을 드러내며, 장남을 황군에 입대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황군에 입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남성체력장 검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당시 체력검정에서는 120미터 단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수류탄 투척, 40kg 모래주머니 운반, 턱걸이 등이 평가 항목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한국 어머니들이 입시준비를 걱정하는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사진=영조 군을 배웅하는 가족】



[한국어 번역]

경성일보 1943년 12월 10일

기다리던 남성체력장검정 합격의 날

기쁨이 넘치는 임 군의 가정

학도병의 가정을 찾아 (마지막 회)


경성부 종로구 관훈동 90번지에 거주하는 학도병 임영조(林栄造)의 가정은 아버지 임걸(林傑)씨와 어머니 영지(令枝)씨가 아직 나이 마흔다섯도 넘지 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계시며, 장남 영조 군 아래에는 수송(壽松)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는 유수(有秀) 군과 유치원에 다니는 귀여운 여동생 임자(今子)양이 깔깔대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 집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마저 "이 집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라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오빠 따라 전쟁에 갈 거야!" 임자 양은 천진난만하게 외쳐댔다. 그때 유수 군이 "너는 여자니까 안 돼. 전쟁은 무서운 거야"라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임자양은 "무섭지 않아. 우리 오빠는 강한 군인이니까 오빠 손만 잡고 있으면 아무 걱정 없어!"라며 응수한다. "이 아이는 늘 이렇게 활발해서 우리를 가만두질 않는다니까요. 하하하..." 군국에 헌신하는 아버지 림걸 씨는 활기 넘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무색하게 할 만큼 이 집안에만 봄이 찾아온 듯하다.


이 밝고 명랑한 풍경은 영조 군이 염원하던 제국군 입대를 자원하고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되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해도 저의 기쁨은 아직 반쪽뿐이에요. 우리 영조가 다가오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요"라며 어머니 영지 씨는 엄마다운 걱정을 내비쳤다. "검사 떨어지면 오빠는 군인이 될 수 없는 거야?" 그 순간까지 장난치던 임자 양은 금세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래요. 우리 영조는 누구보다도 여동생과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합격해야만 해요. 영광스러운 검사는 11일부터라는데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조가 황군의 일원이 되고자 지원한 이후로 어머니로서 이렇게 가슴 뛰는 기쁨을 경험한 적도 없었고, 검사의 날을 기다리며 걱정하는 것도 처음이라서 밤에도 잠을 설칠 지경이에요.


일본 본토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한 명은커녕 두 명, 세 명, 심지어 다섯 명까지도 성전 완수를 위해 전장에 바치고 있는데, 우리 반도의 어머니들은 그동안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마침내 푸른 하늘 아래에서 떳떳하게 군국의 어머니로서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번 검사에 반드시 합격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저 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반도의 새로운 용사의 어머니들이 모두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한답니다."라고 영지 씨는 등교를 앞두고 동생들과 신나게 뛰노는 학병인 아들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형, 빨리 가자!" 먼저 나서던 유수 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가자." 영조 군은 내일 있을 영광의 검사를 합격하기 위해 필승을 다짐하며 훈련과 학업을 위해 나섰다. 임자 양은 학도병 오빠의 등에 매달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배웅에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당히 출정하는 날 이렇게 배웅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기까지만 배웅할 거에요? 저는 깃발을 들고 기차역까지 갈 거에요!"라는 유수 군의 말에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체력 검정 현장 (경성일보 1943년 11월 3일)


체력 검정 현장 (경성일보 1943년 11월 3일)


작성자의 원글보기


..............................


상기 글에 제가 남긴 댓글입니다:


"

다른 서브레딧에 올리신 게시글을 보니 일본의 전쟁범죄와 한국의 친일 매국 자칭 보수들의 전쟁범죄 옹호 행위에 대해, 그리고 역사왜곡 행위에 대해 열심히 공유해오셨군요.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최근 읽고있는 책<일본의 굴레>, 그리고 예전에 봤던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보면 일본은 천황 자체가 신(God)인 국가신토가 국가 종교였고, 지금은 국가종교가 아니지만 여전히 일본 정치와 문화, 사실상 종교, 공교육, 일본인의 정신, 애국심 등과 결합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황이 다스리는 세계가 평화로운 나라‘라는 믿음이, 이 천황을 신으로 모시며 제국주의의 기본바탕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신 천황을 믿는 종교가 일본 전국 신사를 통해 일본인들의 삶에 완전히 녹아있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인들이 매년 참배를 하고 공물을 바칩니다.


이런 일본의 정치, 종교, 문화, 애국심, 교육, 사고방식, 정체성 등과 결합된 침략주의 정치종교의 결합(신도정치)는 세계에서도 찾기 드문 매우 특이한 국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은 전쟁범죄 자체를 독일과 달리 반성할 수가 없겠구나. 전쟁이 곧 애국심이자 문화구나. 그 속에서 자라온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이렇게 반성을 하고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


<안산 저격 술집 입구 신사 상징물 도리이 재차 논란>



중앙일보 기사보기


그리고, 안산 선수가 국내 한 식당가의 과도한 '일본풍' 컨셉에 대해 비판하자


안산 선수가 저 프랜차이즈 식당 자영업자들을 '매국노' 취급하고

그들의 생계에 타격을 줬으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던 분들도 떠오릅니다.


안산씨는 그걸 어디라고 가게이름 말 안해도
저기라고 딱알수있는걸

욕먹을 짓 하긴 했죠. 안산이

안산이건 가산이건 페미는 아웃입니다.

매국노라는 한마디에 프렌차이즈 전체가 피해를 입었고

저는 여전히 안산선수가 실수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사라는게 우리가 맨날 생각하는 신사참배에 나오는 그 신사만 있는게 아니고 만가지가 넘는 종류에 사물이든 동물이든 모시는 일본의 토속신앙 혹은 종교 같은거죠. 이런 논리면 한국에선 한국적인거 외에 아무것도 하면 안됩니다.

생각없이 올린 인스타 스토리로 어느 자영업자는 일상이 박살이 났는데 옹호까지 받아야 하나요?

망하면 그 책임은 누가지나요?

오히려 냉정하게 따지면
국가적으로 지금현재
중국보다 일본이 더 자유주의 우방아닌가요???

남의가게 죽던말던


저 댓글들을 다시보니..

저 일본분 앞에서 좀 부끄럽네요.


댓글 1 / 1 페이지

diynbetterlif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14:02
<신사와 신토사상, 국체 천황>
"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중심에 있는 커다란 신토 사당이다. 여기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포함해 일본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패가 보관되어 있다. 이곳은 3장에서 다뤘던 국가 신토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서, 전전부터 전쟁 중에 이르는 기간에 국체(國體) 이데올로기를 떠받드는 정신적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국체는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를 이르는 말로 1930년대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기 위한 사상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국수주의 우익들과 일본유족회에게 상징적인 곳으로 계속 남아있다. 일본유족회는 한때 그 정치적 영향력이 미국의 전미총기협회에 비견되었을 정도로 막강한 단체다.

생략

<전쟁 범죄 반성은 일본인에게 있어 정신적 자살이나 마찬가지>


세계는 일본이 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독일 처럼 반성하지 못하는가 의아해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에게 있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1930년대의 전쟁 과 그로 인한 여파를 겪고도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조국과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일본의 문화적 유산을 복잡한 심경 없이 즐기고 자랑스러워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독일에서는, 예를 들어 그 어떤 음악감독도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을 무대 에 그대로 올릴 수는 없다.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들은 독일 음악극의 화려한 정점이자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도 가장 탁월하고 영향력이 큰 업적 중 하나다. 그러나 나치가 바그너의 작품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 용했던 탓에, 독일의 음악감독들이 바그너의 방대하고도 자세한 주석에 따라 그의 오페라를 상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본 가부키의 최고봉 으로 일컬어지는 「가나데혼 주신구라」 공연을 준비하는 연출가들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 중에는(그리고 다른 나라의 우익들도 마찬가지지만) 권력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애국심 및 현대사회의 정신적 위기에 호소하긴 해도, 사실은 철저히 냉소적인 태도로 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고이즈미와 아베 신조를 포함해 수많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은 현대 일본의 병이 사회경제적 문제의 껍데기를 썼을 뿐 사실은 정신적 위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만이 국민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일본의 굴레  p482 | 태가트 머피R 지음
<> 괄호 속 내용은 임의 별도 추가했습니다.
.................

<아베 뒤에 일본회의, 그 뒤엔 종교집단>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아베 정권인가 ‘일본회의’인가.

일본 최대 우익단체의 기원과 실체 해부
사상적 뿌리는 신흥종교집단 ‘생장의 집’
일제 토대였던 민족종교 ‘신도’가 기둥

일본회의의 ‘국회의원간담회’ 가맹의원은 중·참의원 합해서 281명(2015년)이다. 이들 중 집권 자민당 의원이 약 90%를 차지한다. 아베 제3차 내각 각료 20명 중 13명, 즉 65%가 그 간담회 회원이었고, 2014년 제2차 내각 때 그 비율은 80%에 달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각료가 일본회의 멤버란 얘기다. 일본회의 지방의원연맹 소속 의원 수도 1700명이나 된단다.

이쯤 되면 일본을 움직이는 것이 일본 정부인지 일본회의인지.

일본회의의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천황제 부활, 국민주권 부정), 헌법 개정, 국방의 충실(재무장), 애국 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그야말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치달은 쇼와(히로히토 천황) 시대 전시체제로의 반동적인 ‘원점회귀’다.


일본회의의 정체 | 아오키 오사무 지음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072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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