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어요: 천선란 단편모음집 <모우어> 중 <얼지 않는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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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59.♡.103.12
작성일 2025.01.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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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우어 | 문학동네 소설집 | 작가 천선란 


작가의 말

"지구를 여행하며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정체성, 가치관, 국경. 그리고 삶과 죽음. 그들이 위태롭게 선 경계에 한 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이 소설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없다. 그러길 바라지만. 


비통하게. 그렇지만 홀로 버텨야 하는 그 경계에서 조금은 덜 외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지키고. 누군가는 이름만 남겨놓고 홀령ㄴ히 사라지는 세상에서.


몇 편의 소설은 독일과 태국, 캐나다 그리고 영원히 떠나버린 누군가의 빈자리에서 썼다. 


소설 뒤에 숨은 작가가 

이제 어렴풋이 얼굴을 알 것 같은 독자에게.


2024년 11월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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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단편모음집 <모우어> 중 <얼지 않는 호수> 줄거리 :


지구가 아닌 어떤 행성.

한때는 생태계가 유지됐으나 지금은 파괴 된 곳.


살아남은 인간이

죽은 시체를 먹으며 생존하고,

아픈 사람은 돌보지 않고 되려 굶겨서 식량으로 만드는 세상.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방랑하는 한 여성과 아이의 만남.


여성은 사랑하는 연인을 찾다가 한번 휩쓸리면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황사의 눈보라 속에서


'이리 와'


따듯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만나서 따라갑니다.


이 여인을 구해준 건

'인간'이 아니라


오래 전 어떤 한 사람이 심어둔 머리 속 칩을 이용해 '말'을 할 줄 알게된

산양 '폴' 입니다.


여인은 버려진 호텔에서 폴과 지내다가 

어느 날 인근 마을로 순찰을 가는 길에 한 아이를 만납니다.


아이는 품에 가죽 주머니를 굉장히 소중하게 껴안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주 작은 말라버린 사람의 심장이 있었고요.


아이 이름은 '야자나무'. 심장의 주인은 '야자'의 친구 '결'.

원래 살던 마을 사람들이 '결'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다가

결이가 죽자 역시 먹어 치웠다고 합니다.


아이는 차마 먹을 수 없어 결이의 '심장'을 안고 

'얼지 않는 호수'를 찾아 방랑합니다.


'야자'와 '결'이 함께 마을 보초를 서다가

우연히 만난 굶주린 외부인 '곰가죽을 뒤집어 쓴 남자'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가 이 '얼지 않는 호수'입니다.


호숫가에 '심장'을 두면

심장의 주인이 찾으러 돌아와 만날 수 있다고요.


여인은 이 이야기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찾아서 방랑하는 바로 그 연인에게서 수없이 들은 얘기니까요.


아이는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여인도 연인을 찾아 다시 방랑을 떠납니다.

방랑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만난 황사의 눈보라.

나무에 몸을 묶고 며칠인지 모를 시간을 견딘 여인이

눈을 떴을 때 들려오는 파도소리.


여인이 늘 다니던 이 길 끝의 호수는

꽁꽁 얼어 있어서 파도가 칠 수 없습니다.


여인은 절벽 끝으로 가서 호수를 내려다 봅니다. 

그 절벽 아래 파도치는 호수에

익숙한 가죽 주머니가 덩그러니 펼쳐져 있습니다.


심장을 가지러 돌아온 결과 야자는 만났을까요.

심장을 갖고 가지 못한 여인은 연인을 만났을까요.

만났어도 다시 환생을 하려 헤어져야 하니 그 또한 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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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부 발췌:

"결이는 다정한 아이예요. 아, 저는 다정하다는 단어를 제일 좋아해요. 나는 그걸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도 다정했다. 다정하다는 것이 이토록 짙은 화상을 남길 줄 알았더라면 함부로 끌어안지 않았을 것이다. 생략. 한 사람의 다정함에 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설산에서 화상 입은 몸을 끌어안고 사는 것.


한참을 쉬지 않고 떠들던 야자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결의 심장이 든 가죽 주머니를 소중하게 끌어안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아니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아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 그냥 사라지는 거지."

그녀가 이것만이 답이라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신념이기도 했다.

"영혼이 있다면 네 마을 사람들이 인간을 먹지도 않았을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요. 먹을 게 없잖아요. 살기 위한 방법일 뿐이에요. 사람은 죽어서 어디론가 가요."


생략


"곰 가죽을 덮어쓴 사람이 찾아왔어요. 열흘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마을 사람들은 굶주린 사람을 보면 먹을 걸 주지 않아요.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을 먹으니까요. 곰 사람이 나타났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면 저랑 결이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가 우리를 보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밝혔어요. 

이름을 알면 그때부터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려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영영 사라져도 그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단어는 평생 사라지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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