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머니 (175.♡.29.112)
2025년 11월 7일 PM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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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나흘째의 해가 밝았습니다.
크레타는 좀 많이 더웠습니다. 전편에서 깜빡하고 안 적었더군요. 낮에 30도, 밤에도 25도로 열대야였습니다. 10월 말에 열대야라니 대단하죠. 게다가 룸 에어컨 상태가 안 좋아 밤에 작동을 잘 안 해서 더위에 지쳐 잠도 좀 설쳤죠. 심지어 여기는 밤 10시까지, 아침 6시부터 여객기 이착륙 소리가 요란합니다. 사람 살 곳은 못 되네요.
아무튼 오늘은 진짜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오전 8시에 씨제트라고 부르는 제트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초 호텔 조식이 7시 30분부터인데 3편에서 보신 것처럼 호텔측에서 배려를 해준 덕에 15분 먼저 조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호텔 뷔페 사진은 안 올리는데 이번에 한 번 올린 것은 이 호텔에서 제공하는 특별한 음식 때문입니다. 먼저 접시 오른쪽 나이프 앞을 보시면 무슨 쌈밥 같은 게 보이실 겁니다. 이건 진짜 쌈밥입니다. 단지 포도잎으로 싸서 쪄낸 음식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죠. 안에는 쌀, 고기, 양파 등을 다져서 뭉쳐 넣었기 때문에 한국인 입에도 꽤 잘 맞습니다. 제가 머문 다른 호텔에서는 한 번도 못 번 것이고, 레스토랑에서 별도로 파는 메뉴라 돈 주고 사먹을 계획이었는데 여기서 맛봤기 때문에 이후 따로 사먹지는 않았습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 사족을 달자면 병에 든 것은 그릭 요거트입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택시 기사가 들어와 “택시 예약하신 분~” 합니다. 저라고 손을 드니까 밖에 택시 세워놨으니 오라네요. 리셉션 직원에게 도시세를 낸 뒤 체크아웃을 마치고 택시를 탔습니다. 헐레벌떡 타느라 차종은 제대로 못 봤는데 기아 스포티지 같았습니다. 그리스는 우리나라처럼 택시 차종이 특정 차종 한두 개로 통일된 게 아니라 중구난방입니다. 전편들에서 쓴 것처럼 독일에서 수입한 고급 승용차부터 시작해 SUV까지 참 다양합니다.
이 택시기사는 영어 발음에 찐한 스페인식 발음이 묻어납니다. 처음에 “원 페르손?”이라는 말에 무슨 말인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One person?”을 그렇게 발음한 겁니다. 그리스어를 따로 배운 적은 없기에 그리스어 발음 체계가 스페인과 유사한 지는 모르겠지만, 1명을 스페인어로 쓰자면 ‘uno persona’, 스펠링 발음 그대로 ‘우노 페르소나’입니다. 그래서 이 양반 하는 말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좀 황당한 것은 미터기를 안 돌리고 그냥 돈 달라고 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택시를 부르기는 했지만 호텔에서 항구까지 걸어서 27분 거리입니다. 택시로는 5분 거리인데 이걸 14유로를 받네요. 아테네나 미케네 생각하면 5~7유로면 충분할 것 같은데 바가지 썼습니다. 실랑이할 시간도 없고 상대방 말도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 싶어서 그냥 돈 주고 끝냈습니다.

이미 씨제트는 손님들이 탑승 중이었습니다. 저도 캐리어를 끌고 탑승했습니다. 1층에 캐리어 두는 곳이 있는데 저는 이렇게 커다란 배에 캐리터 보관 공간은 너무 좁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캐리어 둘 자리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걸 끌고 3층까지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라 다른 사람들 캐리어를 밀어붙이고 최대한 공간을 만들어 겨우 끼워 넣었습니다. 2단으로 된 보관 공간 중 2층에 둘 수밖에 없었고, 떨어질까 봐 걱정이 좀 되었습니다. 마침 어제 크노소스 궁전에서 잠깐 마주쳤던 한국인 가족들도 캐리어 쑤셔넣느라 바쁘더군요. 인사를 따로 하지는 않았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20~30대로 보이는 딸 둘이 여행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캐리어 많은 분들은 가급적 출항 1시간 전에 오시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일찍 공간 확보해야 해요.
이제 3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객실이 나옵니다. 손님들 프라이버시 때문에 따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의자 모양은 비행기 이코노미석과 비슷합니다. 헤드 레스트가 없는 이코노미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총 3열로 되어 있으며, 한 열이 15~20좌석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좌석들이 10행 정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4층에 좀 더 넓은 좌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쪽은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었을 겁니다. 다 합치면 1천명 이상 탈 수 있는 배입니다.
마침 저는 중간 맨 앞 열이라 다리 쭉 뻗고 있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 바로 앞에는 매점이 있다 보니 사람들이 줄 서서 뭔가 열심히 사먹더군요. 아침을 이미 먹은 저는 커피 한 잔 사 마실까 하다가 줄이 워낙 길어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엄청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층까지는 자동차 주차 공간이고 3층부터 선실이니 높이가 꽤 높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흔들리며 몰아치는 파도가 창문을 두들길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비가 오나 했을 정도로 창문에 물줄기가 보여 자세히 보니 바닷물이었습니다. 좌우로 흔들리는 정도로 엄청나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수평선이 창문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했습니다. 매점 냉장고 안에 있던 캔 음료들이 넘어져 굴러갈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겠죠?
뭔가 열심히 먹어대던 주변 사람들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집니다. 멀미를 시작하니까 속 안 좋은 애들은 울고, 어른들은 구토봉투 쥐고 토하고 아주 난리였습니다. 저는 조식도 아까 사진으로 보신 것처럼 가볍게 먹었기 때문에 크게 부대낄 일이 없어서 혀를 차며 그 광경을 구경했죠.

크레타에서 산토리니까지는 2시간 거리입니다. 10시가 되어 가니 창 밖으로 섬이 보이고 배가 정박했습니다. 모두 우르르 1층으로 내려가 짐을 챙겼는데, 다행히 제 캐리어는 그 난리 중에도 2단에서 안 떨어지고 잘 있었습니다.
이제 밖에 나오니 수많은 버스와 택시들이 손님을 맞이합니다. 저는 로컬 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었고 로컬 버스는 Local이라고 써 있다고 인터넷에서 미리 봤는데, 아닙니다. 안 써 있는 버스가 더 많아요. 대신 Public이라고 붙어 있는 버스도 로컬 버스이니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출발하는 버스는 모두 피라 마을로 갑니다. 이아 마을로 바로 가고 싶으시다고요? 피라 마을 가서 갈아타셔야 합니다. 택시를 타신다면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는 이상 무조건 피라 마을입니다. 저는 피라 마을에 호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어차피 상관이 없었죠.
버스 요금도 차 안에서 수령하니까 그냥 타시면 됩니다. 버스 요금은 무조건 2유로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디로 가든 로컬 버스는 무조건 1인당 2유로입니다. 동전이 없어도 거스름돈 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손님이 다 타자 버스가 출발합니다. 경사로를 따라 버스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먼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명 휴양지답게 저 멀리 대형 크루즈 2척이 보입니다.
항구에서 피라 마을까지는 20분 정도 걸립니다. 정류장이 하나뿐이니까 뭐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냥 버스 멈추는 곳에 내리면 됩니다.

여기를 잘 기억해놔야 하는 것이 여기서 산토리니 전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이 다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시즌별로 버스 시간표가 바뀌는 터라 다른 사람이 찍어서 올리는 버스 시간표 믿으시면 안 됩니다. 편안한 이동을 위해 정류장 인포메이션 부스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한 장 찍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머물 호텔은 1층짜리 호텔입니다. 정문 입구 앞에 리셉션이 있어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안내 받았습니다. 무척 깔끔하고 좋은 방이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비오킬은 항상 뿌려야죠.
팁 하나! 그리스에서는 화장실 변기에 휴지 버리면 안 됩니다. 육지인 아테네는 물론이고 모든 섬들이 수압이 약해서 변기가 쉽게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장실 가면 변기에 휴지 포함해서 아무것도 버리지 말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수십년 만에 휴지통 쓰는 그 느낌 정말 생소합니다.
방 확인이 끝났으니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해야겠죠?
1. 레드 비치
2. 아크로티리
3. 이아 마을
레드 비치와 아크로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므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됩니다. 아까 찍어 놓은 시간표를 꺼내 보았습니다.
이런이런… 1시간에 한 대 버스가 있거늘, 이미 11시 버스는 떠났군요. 그럼 12시 버스를 타야 해서 점심부터 먹기로 했습니다. 이미 봐둔 가게가 몇 군데 있어서 그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예약 없이 왔는데 자리 있냐고 물으니 2층으로 안내해주네요. 2층이라고 해도 그냥 그늘막 쳐놓은 정도라 건물 옥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의 점심은 프라이드 깔라마리입니다. 오징어 튀김인데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식으로 튀겨낸 것이라 짭짤하고 야들야들해서 맛있습니다. 먹물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있습니다. 빵은 별도 요금을 내야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빵 올려주는 게 손 안 대면 돈 안 내지만, 손 대는 순간 2~3유로 정도 추가 요금이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지만, 저 놈의 콜라! 200밀리짜리 콜라 주제에 무려 4유로나 합니다. 너무 비싸죠. 식당 음료가 더 비싼 건 이해해도 진짜 비쌉니다. 다 먹으니 대충 34유로 정도 하는군요. 물가 비싸죠? 산토리니 물가가 특히 비쌉니다.

야외 식당이 참 신선한 느낌이라 다 좋은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담배 연기입니다. 그리스 식당은 어디 가나 담배 피는 인간들이 꼭 있습니다. 하필 바로 옆 테이블에서 담배를 펴대니 꼼짝 못하고 다 연기를 마셔야 합니다.
둘째, 파리입니다. 파리가 꽤 날라다녀 음식에 자꾸 꼬입니다. 파리 쫓아내며 먹다 보면 음식을 충분히 음미하기 좀 어렵습니다.
여기 주인장이 굉장히 붙임성이 좋습니다. 좀 배우상인 아저씨로 나이는 50대 후반 같은데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악수하며 얘기를 합니다. 저는 처음에 단골들이라 그런가 했더니 저한테도 스몰토크를 막 날리고 악수도 하고 그러네요. 그냥 친화력 갑인 아저씨였습니다.
이제 12시가 되어 버스를 탔습니다. 30분 정도 산토리니 남쪽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관광지를 벗어나니 시골 풍경이 펼쳐집니다. 수확이 끝난 밭도 많이 보이고, 일반 주민들이 사는 집들은 그렇게 하얗지가 않습니다. 이아 마을, 피라 마을은 관광지라 아주 열심히 흰색으로 칠했지만, 다른 곳은 아이보리 색도 좀 있고 칠도 대충하고 뭐 그렇습니다.
버스 종점에 도착해 사람들 모두 내렸습니다. 레드 비치와 아크로티리 중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다가 더 먼 레드 비치를 먼저 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아크로티리 바로 앞이라 버스 시간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려면 그게 더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산토리니는 크레타보다는 훨씬 시원해서 낮 온도가 23도 정도였습니다. 물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 햇볕이 워낙 뜨거워 아이스크림 하나 땡겨주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스크림이 얼마냐? 4유로입니다. 어허허허허… 물가…. 맛있긴 했죠.
레드 비치까지는 2km 정도 거리입니다. 포장이 잘 된 거리를 걷다가 마지막 500미터 정도를 남기고 비포장 산길을 올라야 합니다. 높은 건 아니라 레드 비치가 보이는 곳까지는 노약자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드 비치까지 가려면 이제 좀 위험한 지형을 지나야 합니다. 일단 레드 비치는 붉은 절벽을 배후로 삼은 해안입니다. 사진 기준으로는 저 멀리 해안 절벽 아래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진에서 보일 지 모르겠는데 자세히 보시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쳐놨습니다. 파도가 굉장히 세서 물에 들어가면 떠내려가기 딱 좋겠더군요. 좀 알아보니 늘 위험한 건 아니고 여름에 잔잔할 때는 해수욕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다만 10월쯤 되면 파도가 거칠어지기 때문에 위험해지는 거죠.
이제 레드 비치로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좀 전에 쓴 것처럼 가는 길이 굉장히 험합니다. 샌들? 절대 안 됩니다. 구두? 미친 짓입니다. 무조건 운동화 신으세요. 여기 발 헛딛으면 바위에 머리 박아 바로 삼도천, 아니 여기는 그리스이니까 스틱스강을 건너게 됩니다.
해변으로 내려오면 짭쪼름한 해초 냄새가 가득합니다. 발 밑이 푹신푹신해서 보면 무슨 해초류가 해변을 덮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봅니다. 그냥 저 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시 거친 바위를 올라 돌아나오면서 사진 몇 장 찍고 아크로티리로 향합니다.
아크로티리는 미노스 문명의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크노소스 궁전이 무리한 복원을 하는 바람에 원형을 알 수 없게 된 면이 있는 반면, 아크로티리는 발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대신 비 바람에 더 이상 풍화되지 않게 유적지 전체에 지붕을 씌워 덮어 버렸습니다.

입장료는 원래 12유로인데 이상하게 티켓 부스가 문을 닫아서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무료라고 합니다. 알아보니 10월 28일이 ‘오히 데이’라고 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보낸 최후 통첩을 거부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지난 편에서 제가 간단 그리스어 회화 부문에서 아니오는 ‘오히’라고 했죠. 바로 그 오히입니다.
그리스는 몇몇 국가 기념일이 있고, 10월 28일은 그 중 하나라서 이 날은 그리스의 모든 박물관과 유적이 무료입니다. 그렇다고 이 날 파르테논 같은 데 공짜라고 좋아라 올라가면 인간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가게 될 지 모릅니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에서도 간혹 소매치기가 있는 곳이 그리스인 만큼, 무료인 날 사람 바글바글한 곳에 가면 소매치기 정말 당하기 쉬워집니다.
아크로티리 유적지는 무료이기는 했지만 산토리니 자체가 10월 말이 좀 비수기의 시작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저 같은 역사 덕후 아니면 여기 거의 안 갑니다. 사람들 대부분 레드 비치나 아크로티리 비치에 가지 유적지 오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 넓은 유적지에 저 포함해서 관람객은 한 스무 명? 덕분에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유적은 기원전 4천년경 시작된 곳으로 기원전 1627년 대폭발 당시 화산재에 묻혀 버렸습니다. 원래 하나의 섬이었던 산토리니는 대폭발로 중심부가 침몰했고 섬도 몇 개로 나눠졌습니다. 아크로티리 유적은 그나마 섬 외곽이라 폭발에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화산재에 묻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대폭발로 크레타섬에 있던 미노스 문명 본진도 타격을 받았지만, 이때 멸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역사책에 보면 이 화산 폭발의 여파로 미노스 문명이 멸망한 것처럼 썼으나, 미노스 문명의 정점은 오히려 화산 폭발 이후였고 기원전 15세기부터 약해지기 시작해 기원전 1075년 미케네 문명의 침공으로 멸망합니다.

이 유적지는 복원을 따로 안 했기 때문에 정말 돌 무더기들로 보입니다. 간혹 당시 발견된 일부 항아리 등이나 건물의 형태 등을 통해 규모를 가늠할 뿐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조사해 당시 건물을 영상으로 복원한 것을 보면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초기 청동기 시대였음에도 이들은 이미 3층짜리 복합 주택(첫 번째 사진)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층별로 실내 화장실(두 번째 사진)을 갖춰 대소변이 건물 밖 정화조(세 번째 사진)에 모이게끔 했습니다. 방도 다양한 프레스코화를 그려 인테리어를 신경 썼고 각 방이 문과 계단이 있어 멀쩡했다면 중세 수준보다 훨씬 나은 주택이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미노스 문명을 상징하는 일부 프레스코화는 크레타섬이 아닌 이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유물이 상당히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은 화산재에 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유물들 중 일부가 피라 마을에 있는 산토리니 선사시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아테네와 크레타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여기서는 몇몇 벽화 외에는 더 볼 게 없는 상황이라 들르지 않았지만, 크레타를 가지 않은 분들은 패키지 여행이라도 자유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 가보시기 바랍니다. 피라 마을 중심가에 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입장료는 10유로이고 아크로티리 유적에서 발굴된 프레스코화들이 많이 있으니 가 볼만 할 것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이 박물관을 상징하는 벽화 하나를 첨부했습니다.
유적 관람을 마치니 오후 2시네요. 곧 피라 마을로 돌아갈 버스가 올 예정입니다. 그늘에서 선선한 바닷바람을 쐬며 버스를 기다리며 도착한 버스를 타고 피라 마을로 갔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바로 이아 마을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피라 마을에서 이아 마을까지는 얼추 20분 정도 걸립니다. 걸어본 사람 얘기로는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실제로 구글 맵에서 찍어봐도 10km 정도 거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길이 2차로이고 구불구불해서 차가 속도를 못 냅니다. 그러니 천천히 갈 수밖에요.
이아 마을도 버스 정류장은 하나이니까 위치만 잘 기억해두시면 됩니다.

이아 마을부터는 제 주목적인 유적지, 박물관과는 아예 관계가 없는, 순수 관광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명소들은 한 번 둘러봐야죠. 대충 2시간 둘러봤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마을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계단 지옥입니다. 오르락 내리락 정말 많이 합니다. 2시간 동안 오르내린 계단이 대충 20층 건물 수준입니다. 위 사진들 보시면 저기만 저런 게 아니라 마을 전체가 굴곡졌습니다. 무릎 안 좋은 분들은 고생 좀 하겠죠.
이아 마을에는 중국인들도 정말 많습니다. 이 중국인들, 정말 시끄럽습니다. 이 다음 날 피라 마을 아침 산책할 때도 아침 7시경이라 아직 쉬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지들끼리 어찌나 동네 떠나가라 떠드는지… 아시아인 망신 다 시키고 다닙니다.

이아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 몇 곳을 보고 나니 벌써 5시가 넘었습니다. 곧 석양이 질 시간이라 서둘러 이아성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미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마침 명당 자리가 한 곳이 비었네요. 낼름 앉았습니다.

섬의 끝자락 너머 수평선으로 해가 집니다. 주홍빛 여운이 하늘과 바다 경계로 물들여갑니다. 때 마침 제 앞에 아름다운 여성 한 분이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서 배경 삼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때 뒤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일어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찍어야만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사실, 사심일지도 모릅니다.)

해가 바다에 닿을 무렵 한 줄기 구름이 눈꺼풀처럼 해를 살짝 덮었습니다. 조용히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눈을 감듯 해는 바다로 침잠했습니다.
해가 바다 아래로 내려가자 모두들 박수를 치고 자리를 파합니다. 다시 돌아갈 시간입니다.

버스 정류장에 가는 동안 하늘을 보니 저녁 어스름이 하늘을 덮으면서 보랏빛으로 영롱하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피라 마을 가는 버스는 사람으로 꽉 차서 입석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보통 산토리니 버스는 탑승 후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는데, 이번에는 승차할 때 돈을 받네요.
마침 제 앞에 앉은 한국인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와서 아기에게 간식을 주고 있었습니다. 하도 귀여워서 몇 개월 되었냐고 물으니 12개월 되었답니다. 아이고, 아가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겠다, 너는 오늘을 기억 못하겠지만 네 부모님은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
아기의 간식 먹방을 웃으면서 구경하느라 피라 마을은 금방이었습니다.

이제 저녁을 먹어야죠. 낮에 깔라마리를 먹었으니 저녁은 구운 문어를 먹기로 했습니다. 문어 몸통은 아니고 문어 다리를 그릴에 구워 소스를 발라주는 것입니다. 이것만 먹기에는 좀 아쉬워 새우 파스타를 곁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려나요. 이 직원 제 주문을 잘못 들었는데 파스타가 아닌 새우구이를 내왔습니다. 어차피 이것도 먹을 생각이었기에 그냥 먹었습니다. 해산물은 역시 사랑입니다. 저렇게 나온 두 접시 시켜서 46유로 줬습니다. 낮에 아크로티리 12유로 아낀 것을 여기에 더해 버렸죠. 후훗.
다만 사이드로 나온 밥은 몇 입 먹고 말았습니다. 버터에 볶은 것도 아니고 버터맛 나는 기름에 담근 듯한 차가운 맛은 고수 향기도 살짝 나더군요. 나중에 검색해 보니 레몬 라이스라고 그리스식 쌀 요리라고 합니다. 레몬 즙, 올리브 오일 또는 버터, 육수, 양파, 마늘, 허브를 넣고 볶은 쌀을 끓인 음식이라네요. 그러니 맛이 이상하지.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배도 채웠겠다 아직 체력도 좀 남았겠다 싶어서 밤 산책을 했습니다.
광해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꽤 별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주변 조명이 없는 어둑한 절벽 쪽으로 가서 밤 하늘을 찍어 봤습니다. (갤럭시S24 천체 모드 3분짜리로 찍었습니다.)

보이시죠? 하늘에 별이 참 많습니다. 물론 사하라 사막 갔을 때 봤던 밤 하늘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기는 합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찍은 별 사진은 이 링크를 봐주세요. https://damoang.net/travel/349 )

달이 반달이라 별이 좀 약하게 보인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달빛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모습도 꽤나 운치 있습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니 이제 쉴 시간이네요. 내일은 다시 아테네로 돌아갑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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