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 우당탕탕 그리스 여행기 마지막(코펜하겐 보너스 포함)
빅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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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0일 PM 09:53 · 수정됨(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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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나니 7시가 조금 안 되었네요. 여기는 호텔 조식 뷔페가 아니라 따로 개별 주문을 해야 합니다. 10유로짜리 조식을 미리 시켜놨는데 8시쯤 줄 예정이라 아침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어젯밤 피라 마을 구경을 좀 하기는 했지만 밝은 시간 대에 좀 봐야겠다 싶어서 어제 호텔 주인이 가보라고 한 피라의 세 종까지 왕복하기로 했습니다. 호텔에서 피라의 세 종까지는 계속 오르막입니다. 아침 운동 되는군요.

중간에 파노라마 뷰 포인트가 있어서 파노라마 사진도 한 장 찍어줬습니다.

중간에 옛날 항구부터 올라오는 케이블카도 지나고, 예쁜 집들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피라의 세 종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앞에서 보면 별 거 없습니다. 이 건물은 뒤쪽 위로 올라가 봐야 제맛입니다. 하지만 건물 앞은 탁 트인 절벽길이라 시야가 뻥 뚫려 시원합니다. 아침 공기가 좀 서늘해서 바람막이도 안 입고 반팔로 왔더니 살짝 쌀쌀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늘이라 더 그랬겠지요.

좀 더 걸어서 피라의 세 종 뒤로 올라갔습니다. 이제야 이 건물의 푸른 지붕이 보입니다. 아침이라 좀 덜 예쁘게 나왔지만 한 낮에 왔다면 쨍한 푸른 지붕이 근사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전편에서 언급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동네 떠나가라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울릴 정도였습니다. 아침 먹으러 가기도 해야 하니 자기들끼리 떠들게 놔두고 호텔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중간에 또 다른 예쁜 교회 건물도 보고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조용한 아침 시간을 즐겼습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주인장이 아침식사 포장한 것을 들고 오네요. 오늘의 아침은 토스트,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오믈렛, 오렌지 주스입니다. 어제 200밀리 콜라 4유로 주고 먹었더니 이건 정말 혜자네요.

10시 30분쯤 되어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정류장에 가서 공항행 버스를 탔습니다. 요금은 아시죠? 2유로입니다.

산토리니 공항 참 작습니다. 안에 식당이 있기는 합니다만 먹을 만한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점심을 공항에서 먹고 가야 하기에 뭘 먹을까 하다가 설탕으로 코팅된 도넛(좀 큼지막한 던킨 도넛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도넛이 4유로, 아메리카노 5유로. 이 창렬한 놈들!


이번에는 스카이 익스프레스를 이용해 아테네로 갑니다. 무려 프롭기네요! 심지어 뒤로 탑니다. 이거와 거의 같은 기종을 그랜드캐년 관광할 때 탔는데 이걸로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좌석은 2-2 배열로 50분 정도 타고 가는 거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해 9유로를 주고 지하철표를 끊어 신타그마 광장에 돌아왔습니다. 겨우 사흘 만에 돌아왔는데 신선하네요. 아까 먹은 도넛만으로는 배가 고파서 길거리 간식을 시도했습니다. 가격은 겨우 50센트! 바삭바삭한 게 먹을 만 했습니다.

이게 원래 튀르키예 간식인데,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 시절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 보니 음식 문화가 정말 튀르키예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수블라키와 기로스도 케밥의 변형에 불과하니까요. 저 빵도 튀르키예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산 게 바구니(사람 크기 만합니다)에 든 거의 마지막 빵이었던 터라 노점상 주인이 바구니를 뒤집어 부스러기를 털어내니 갑자기 신타그마 광장의 모든 닭둘기들이 날아왔습니다. 어마 드러워라~.


오늘의 호텔은 이번 그리스 여행 최초로 4성급입니다. 제가 원래 패키지로 갈 때는 무조건 4성급 이상으로만 가는데 이번 자유여행 때는 어쩌다 보니 3성급 대부분에 이번 한 번만 4성급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시내 호텔에 4성급이 생각보다 없었고, 가격도 미쳐서 예산이 안 맞았기 때문이죠. 호텔은 깔끔하고 각종 어매니티가 있어 좋았는데 방이 너무 좁아서 캐리어 펴기도 좀 힘들었습니다.

늘 하듯 비오킬을 뿌린 뒤 호텔을 나섰습니다.


오늘 일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가는 것이지요. 사실 호텔 도착할 때 시간이 오후 3시 30분경이라 방 확인하고 짐 풀고 나오니 거의 4시라 박물관행 빼면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번처럼 신타그마 광장 부근에 호텔을 잡았기 때문에 느긋하게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20여분을 걸어서 지난 번 갔던 아크로폴리스 남쪽 슬로프 부근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있습니다.

딱히 줄을 설 필요는 없더군요.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입장료는 20유로입니다.

원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아크르폴리스 한쪽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복원을 하다 보니 계속 나오는 유물을 관리하기 힘들어지자 현재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새로 건설했습니다.

총 4층 건물이지만 실질적 박물관은 1층과 2층이고, 3층은 카페와 기념품샵, 4층은 미디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아크로폴리스와 주변 일대에서 발굴된 도기 등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자체가 유적지 위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에 안 들어가도 주변만 빙 둘러봐도 고대 유적지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이 유물은 굉장히 기괴하게 생겼죠? 저 반쪽자리 얼굴 조각은 원래 저렇게 만든 건 아니라고 합니다. 원래 봉헌된 조각상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파괴되었고, 얼굴 절반만 장식품처럼 따로 챙겨서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뱀 모양의 조각상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으로 ‘의술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반신이지 진짜 신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명입니다. (아버지인 아폴론이 진짜 의술의 신이죠.)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바다의 신 글라쿠오스가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였습니다. 그를 살려내려고 애쓰던 아스클레피오스는 갑자기 방 안에 들어온 뱀을 지팡이로 때려죽였는데, 또 다른 뱀이 약초를 입에 물고 와 죽은 뱀의 입에 넣자 뱀이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이를 본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약초를 글라쿠오스의 입에 넣어 되살려냈고, 이후 지팡이를 휘감은 뱀으로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옆에 이 지팡이를 휘감은 뱀이 그려진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런데 가끔 뱀이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상징입니다. 옛날 대한의사협회 상징은 이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그린 흑역사가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핵심 유물들은 대부분 2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2층의 유물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뭣도 모르게 몇 장 찍다가 바로 제지당해서 사과해야 했습니다. ㅠㅠ (이전 글 중 '죄송합니다'를 그리스어로 말할 일이 있었냐는 질문이 있었죠? 바로 이때입니다...)

이곳에 영국이 들고 가지 못한 파르테논의 페디먼트 일부가 있고, 아크로폴리스의 다른 신전에 있던 페디먼트 장식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나중에 직접 가셔서 보셔야 할 듯합니다.


이날 밤은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좀 더 맛있게 먹어주기로 했습니다. 호텔 주변 레스토랑을 검색하다 보니 평이 괜찮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더군요. 자리가 많지 않아 좀 구석 자리를 받기는 했지만 예약 안 하고 간 거니 감수해야죠.

씨푸드 링귀니에 오늘의 요리라고 추천받은 참치 꼬치 구이를 주문하고 음료로는 해산물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우선 나온 와인을 머금고 입 안에서 돌리며 음미하고 있으니 파스타가 먼저 나왔네요.

오오! 면 식감부터 해산물까지 훌륭합니다. 면은 적당히 잘 삶아서 알단테 식감이 살아 있고 해산물도 새우, 조개, 오징어까지 다양하게 들어있네요.

부지런히 파스타를 다 먹어갈 즈음에 참치 꼬치가 나왔는데, 이거 일품입니다. 정말 술안주입니다. 또 먹고 싶습니다. 소스가 마요네즈 베이스라 고소하고, 지중해에서 잡은 참치를 그릴에서 구운 거라 아주 느끼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침이 흐르네요.


이렇게 그리스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마지막 아침이 왔습니다.

이 호텔은 조식이 뷔페식이 아니라 개별 주문 방식이라 전날 미리 주문을 해놔야 합니다. 주문표에서 체크하는 식으로 메뉴 2개, 음료 2개를 고를 수가 있습니다. 저는 프렌치 토스트와 오믈렛,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전반적으로 설탕을 많이 써서 좀 단데, 그래도 맛있었습니다.


아침을 흡입한 뒤 체크아웃 전 마지막 유적지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성당도 하나 보이네요.

원래 로만 아고라와 고대 아고라를 모두 볼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안 되어 고대 아고라만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고대 아고라 가는 길에 로만 아고라고 있는데 굳이 입장 안 해도 안이 다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 우회하는 정도로 로만 아고라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로만 아고라는 로마 제국 시절에 건설된 아고라입니다. 옆에 있는 고대 아고라(아테네 아고라)와 시대적 차이가 있죠.

먼저 바람의 탑입니다. 팔각형의 탑으로 풍향계로도 쓰였지만 고대에는 물시계와 해시계도 배치되어 시계탑의 역할도 했던 곳입니다. 8면에는 각각 제피로스(서풍, 봄), 보레아스(북풍, 겨울), 에우루스(동풍), 노토스(남풍, 여름), 카이카스, 아펠리오테스, 리바스, 스키론 등 8개의 방위에 해당하는 바람의 신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화나 고대 지도 등에 입을 부풀리고 바람을 부는 모습 하고 있는 그림은 바람의 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단지 어느 방향이냐, 어느 계절이냐에 따라 신의 종류만 달라집니다.


바람의 탑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로만 아고라입니다만… 정말 기초만 남았죠. 사실 지금 로만 아고라 유적을 보면 원래 모양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아고라 유적 위에 다른 건물들이 올라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양을 가늠하기 위해 구글 지도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빨간 색으로 그은 부분이 보이시죠? 저 빨간 색 안쪽이 지붕이 있는 거대한 이중 정사각형 모양의 회랑 건물이었고, 그 안에는 넓은 뜰이 있었습니다. 회랑 안에는 가게들이 입점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만 아고라의 원래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시다시피 반 이상이 현대 건물들이 그 위에 있어서 이중 정사각형을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냥 보면 폐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복원도 하나를 가져와 봤습니다. 보시다시피 3번 건물이 바로 로만 아고라입니다. 위 지도와 비교하면 조금 가늠이 되시죠? 5번이 아까 지나온 바람의 탑이고요.

저기 1번 건물이 궁금하실 겁니다. 저 터는 지금도 남아 있는데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입니다. (이 그리스 날강도들이 로만 아고라,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각각 입장료를 받습니다. 바람의 탑도 따로 받고요. 좋은 곳들이지만 이걸 따로 돈 내는 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입니다. 저야 시간 관계상 이렇게 밖에서만 봤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로만 아고라와 옆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로만 아고라가 반쪼가리가 되면서 조금 거리가 생겼습니다. 저기도 밖에서 대부분 보이니까 돈 내고 안 들어가셔도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보시겠다면 들어가야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굳이?”입니다. 사진은 돌아오는 길에 찍어서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아테나 아르체게티스 문입니다. 사실 여기가 로만 아고라 유적지 정문입니다. 저는 호텔쪽에서 오다 보니 반대로 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옆에 판타이노스 도서관 유적지가 있기는 한데 로만 아고라 보려고 조금 돌아왔던 터라 시간이 없어서 저도 못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고대 아고라 입구는 대로변에 있지 않습니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고대 아고라 남서쪽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돌아서 가는 길입니다. 이 고대 아고라는 현재 유적지가 지하철로 나뉜 상태입니다. 끝자락 정도 잘린 거라 많이 나뉜 것은 아닙니다.

한참을 돌아 20유로를 주고 입장한 고대 아고라에서 가장 먼저 저를 반기는 건물은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신전입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신전의 특징인 내부 신전 건물이 지붕까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내부 신전 문쪽을 찍어봤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이 기둥만 덜렁 있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쪽에서 바라본 고대 아고라 전경입니다. 저 끝에 복원된 아탈로스의 스토아가 보이고 그 외에는 대부분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바로 밑에 있는 지역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토론을 하던 곳으로 페이시스트라토스 참주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이곳에 배수시설을 깔고 본격적으로 공공건물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성인 자유 시민만 대상이인 제한된 민주주의였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싹튼 곳으로 정치사적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과거 스토아 학파가 여기서 형성되어 철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아고라에는 신전, 실내 공연장, 학당, 의회, 조폐국, 도서관 등 다양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개발이 끝난 게 아니라 500년 가까이 걸쳐 로마 제국 시절까지 단계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건물들은 서로 시대가 다릅니다. 그래서 최초에는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싼 형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장에 여러 건물들이 세워져 ‘아고라’라는 최초의 목적과는 좀 다른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서기 3세기 때 게르만족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은 성벽 건설에 쓰여서 지금은 복원하기도 좀 힘든 상황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빠르게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난간은 뭔가 하시겠지만, 원래 이곳에는 고대 영웅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던 곳입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주인공인 에레크테우스의 조각부터 시작해 아이게우스, 안티오쿠스(헤라클레스의 아들)와 같이 전설적인 인물이 주류였지만, 실존 인물인 프톨레마이오스(알렉산더의 장군 중 한 명으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시조), 아탈로스(페르가몬의 왕), 하르디아누스 황제 등의 조각상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조각상들을 둘러싼 난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원형의 건물터는 원형 벽 위에 원뿔 모양의 지붕이 있었던 형태로, 선출된 행정관들이 만찬을 하던 곳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10개 부족, 500명의 시민들이 선출한 행정관들이 있었고 이들이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배수관이죠? 네, 맞습니다. 아고라를 본격 개발하기 전에 배수시설부터 깔았다고 하는데 아마 아크로폴리스 바로 밑이고 하니 비가 오거나 하면 물이 고이기 좋은 위치였을 것입니다. 지형 지도를 봐도 아고라의 위치는 아크로폴리스와 님피스 언덕 등 주변 일대에서 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건물을 올리려면 지반이 단단해야 하고, 그래서 배수 시설이 필요했겠죠.


이 건물은 아그리파의 오데온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사위인 아그리파가 아테네에 선물한 실내 공연장입니다. 지금은 건물 앞에 있던 조각상 2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건물 자체는 실내 공연장임에도 그리스 로마 극장의 전통에 따라 중앙 무대를 관람석들이 부채살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자, 이제 유일하게 복원된 건물인 아탈로스의 스토아입니다. 록펠러 재단의 자금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네요. 아탈로스의 스토아라 불리는 이유는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가 아테네에 선물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아탈로스는 아까 영웅들의 조각상에서도 한 번 나왔죠? 이름이 두 번이나 나왔으니 어떤 인물인지 짚고 가는 게 좋겠죠.

아탈로스는 왕조 이름이기도 해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영웅의 조각상에 있던 아탈로스는 아탈로스 1세이고, 스토아 건물을 기증한 사람은 아탈로스 2세입니다. 아탈로스 1세는 로마, 아테네와 협력해 마케도니아에 맞섰던 인물입니다. 아탈로스 2세는 아탈로스 1세의 차남으로 원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형 에우메네스 2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형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나 형이 사망한 뒤 형수와 재혼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참고로 형은 자연사했다고 합니다. 아탈로스 2세가 즉위한 게 62세였으니까 형도 60대는 넘어서 죽었을 것이고, 시대를 고려하면 암살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에우메네스 2세의 아들 아탈라스 3세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중간에 왕위를 이어줄 인물이 필요했기에 아탈로스 2세가 나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본인도 20년이나 왕 노릇을 해먹을 줄은 몰랐겠죠. 아탈로스 2세는 로마와 적극적으로 협력한 인물이고 문화에 관심이 많이 대도서관 등 다양한 건물을 페르가몬에 지었습니다.

현재 아탈로스의 스토아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면 아고라 일대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유물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내부 유물 사진은 생략하겠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까 그 철길에 지하철이 지나가네요. 지하철에 그래피티 그린 거 보이시죠? 저렇게 놔두는 것도 신기합니다. 참고로 제가 지나친 길에는 안 보이는데 스토아 학당 유적이 이 철길을 가운데 두고 아고라와 반대쪽에 있습니다. 진짜 방치된 상태라 사실 지나갈 당시에는 이게 스토아 학당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에 아탈로스의 스토아가 스토아 학당이라고 생각하고 갔었거든요. 나중에야 잘못 알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이켜봐도 워낙 방치된 까닭에 그냥 유적 중 하나겠지 할 정도로 관리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하드리아누스 박물관을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은 현재 한쪽 벽만 남아 있습니다. 로만 아고라와 마찬가지로 도서관 터 중 일부가 현재 도로와 현존 건물에 잠식당해 전체적인 모습은 구글 맵으로 보지 않으면 좀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한 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짐을 부치고 체크인을 하니 정말 여행이 끝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못 먹었던 음식 중 궁금했던 무사카를 점심으로 먹기로 했습니다.

오, 이거 꽤 맛있습니다. 얇게 썬 가지와 감자 위에 다진 고기를 얹고 그 위에는 치즈와 크림이 섞인 듯한 토핑을 얹어 구워낸 음식입니다. 맛은 토마토 소스로 냈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에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하는 집 가서 먹을 걸 하는 아쉬움마저 남았네요. 그리스 가시는 분들, 무사카 꼭 드셔보세요.

비행기 출국 시간이 되어 탑승을 하고 마침내 그리스를 떠났습니다.

그럼 여기서 끝이냐? 아닙니다.


경유 시간이 6시간 정도 있어서 레이오버로 코펜하겐 여행을 조금 했거든요.

코펜하겐은 4시 30분이면 해가 집니다. 하필 도착할 때가 딱 그 시간이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해가 거의 다 졌습니다. 처음에 EXIT를 통해 나가다 보니 어라라? 그냥 출국장으로 덜커덕 나왔습니다. 짐이야 레이오버이니까 찾을 일도 없었지만 입국 심사도 없이?

혹시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닌가 싶어 잠시 당황해서 스칸디나비아 항공 카운터 가서 직원과 얘기하다가 여기가 쉥겐 조약국가라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1편에서 말씀드렸죠, 여기서 수속 밟은 덕에 아테네에서는 그냥 나갔다고요. 바보 같이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겁니다. 저는 여전히 EU 안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단지 유로화를 안 쓰는 나라일 뿐.


지하철 타고 시내까지는 15분 정도입니다. 지하철 요금 사악하더군요. 15분에 우리 돈으로 6,600원 정도 합니다. 지하철 탈 때 제일 곤란했던 것은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는 것입니다. 알파벳만 봐서는 내가 맞게 들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바람에 중간에 갈아탈 때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습니다.

지하철에서 신기했던 점은 같은 노선인데 반대 방향이 다른 층에 있을 때입니다. 다른 나라에 그런 사례를 못 본 것은 아닌데, 그런 경우 보통 반대편에 다른 노선이 있곤 하죠.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1층과 2층이 반대 방향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은 3량 정도로 굉장히 아담합니다.

또 신기한 점은 엘리베이터가 우리나라처럼 상향 하향이 교차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 반대쪽에 한쪽은 모두 올라가기만 하고, 반대편은 모두 내려가기만 합니다. 보통 4개 정도의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있는데 이거 모두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겁니다.

아무튼 지하철 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이미 밤이네요. 어차피 2시간 정도 돌아다닐 계획으로 나온 거라 시청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는 여름인데 여기는 겨울입니다. 꽤나 춥습니다. 미리 꺼내놓은 경량 패딩을 입었는데도 좀 추웠습니다.

조명이 참 예쁩니다.

길을 걸으면 여기는 자전거 도로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고요.

시청 건물부터 시작해 뉘하운 운하를 지나 오페라 하우스 건너편 광장까지 걷는데 1시간 조금 안 되게 걸렸습니다. 여기는 조명이 대체로 약해서 길거리가 굉장히 어둡습니다. 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이곳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더군요. 다만 자기들도 안 보이는 것은 아는지 이 추운 날씨에도 러닝하는 사람들이 몸에 발광체를 하나씩 달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아시죠? 요즘 강아지들 밤에 몸에 달고 다니는 그 반짝반짝 램프요… 사람들이 그걸 손목이나 등에 메고 다니더군요.

워낙 광공해가 낮은데다 공기도 깨끗한지 밤하늘에 별이 산토리니보다 더 많이 보입니다. (저 밑에 받침대는 쇠사슬입니다. 삼각대를 캐리어 안에 넣어놓는 바람에 부두 근처에 있는 큼지막한 쇠사슬에 거치하고 찍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가 눈에 보입니다.

네, 바로 인어공주상입니다. 작다는 말을 들어 큰 기대 안 했는데 사람보다는 약간 큰 것 같았습니다. 다만 밤이라 바로 앞에 설치된 조명이 너무 세서 청동상의 질감을 잘 느끼기 좀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북유럽 여행 올 때 낮에 와 봐야겠습니다.

다시 출국까지 3시간 정도 남은 상태라 이제 출국 수속을 하러 가야했습니다. 돌아올 때도 지하철로 15분, 또 6,600원 냈습니다. 왜 덴마크 사람들이 열심히 자전거 타고 다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녁을 못 먹은 터라 공항에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버거킹이 보이네요? 햄버거와 콜라만 시켰는데… 우후후후… 우리 돈으로 3만 6,000원 정도 됩니다. 미국 버거킹보다 비싸요! 맛은 좋았습니다. 여유 시간 더 있어서 시내에서 먹었으면 파산할 뻔했습니다. 북유럽 물가 비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겪어 보니 정말 무섭군요.

저녁도 먹었으니 보안 검사를 받고 들어간 뒤 제가 탈 비행기가 있는 쪽으로 가다 보면 올 때처럼 중간에 뜬금없는 출국 심사대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도장 찍고 게이트로 가면 됩니다. 에… 코펜하겐 공항에는 안마의자가 있습니다. 정말 시원합니다. 피곤하신 분들 안마의자 보이면 앉아보세요. 물론 유료입니다.

제가 기다린 게이트는 의자가 괴랄하게 생겼습니다. 저러니 기대지도 못합니다. 공항 의자 중 저런 의자는 처음 봤습니다. 웃기는 건 다른 게이트들은 보통 우리가 공항에서 보는 그런 의자인데 저 게이트만 그럽니다. 한국인 차별이얏!

저기서 2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이걸로 이번 제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좀 용두사미가 되었지만, 직장인이 시간 내서 이런 여행 요약 쓰는 것도 일이네요.


나중에 또 다른 여행기를 올릴 때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5)

  • 열정

    열정 Lv.1

    25.11.10 · 222.♡.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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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WL⠀

    PWL⠀ Lv.1

    25.11.10 · 175.♡.119.153

    마지막 의자가 꽤 비싼 고급 의자입니다. 덴마크제구요. 편해요. ;;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연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빅머니

    빅머니 Lv.1 → PWL⠀ 작성자

    25.11.10 · 175.♡.29.112

    편하긴 했습니다만, 공항 의자라는 게 반쯤 눕다시피 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게 글로벌 룰 아니겠습니까. 저건 얄짤 없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해서 좀 그랬습니다.
  • jameslee

    jameslee Lv.1

    25.11.10 · 118.♡.82.60

    그동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늘기억

    하늘기억 Lv.1

    25.11.10 · 58.♡.125.189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오셨네요.
    사전에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저도 이 여행기를 바탕으로 그리스 가봐야겠습니다.
    갑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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