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 재밌네요(장문주의, 스포주의)
7번교각

Lv.1 7번교각 (59.♡.32.196)

2026년 7월 5일 AM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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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야기입니다.

인류는 고래로부터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래동화에서 웹소설에 이르기까지 몇 천 년 동안 끝없는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들은 서로를 닮아가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 퍼집니다. 동서양의 전래 동화들은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를 원합니다.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으니까요.

작가들은 늘 고민합니다. 새로운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 기발한 이야기가 없을까?

그러다보면 이야기 자체에 매몰될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잃게 됩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바리공주 이야기를 매번 반복하지만 ㅖ이를 재미없다 말하지 않습니다. 무격의 조상인 바리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행해지는 의식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니까요.

그러나 이야기만을 좇게 되면 결국 기기묘묘한 이야기 자체에 매몰되어 “왜 쓰는가?”, “이 이야기에 담긴 삶의 진리”는 무엇인가를 잃게 됩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걸프만의 늙은 한 어부 중에 누군가는 평생 한 번쯤 겪어 볼 것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통해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대 사람들, 이후의 인류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입니다. 그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가 우리 존재를 증명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내 손에 남은 것 하나 없고, 누구도 내 삶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할지라도, 결국 세상과의  전투애서 패배하여 비참하고 초라한 몰골의 패잔병이 되어 쓰러질지라도, 인생에 한 번은 모든 것을 걸고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적 앞에 나아가서 “내가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그 순간이 내 생명의 존재 증명임을 이 작품은  깨우쳐 줍니다.  단 한 번이라도 거대한 파도 앞애서 뒷걸음질치지 않은 적 있다면 그 삶은 가치가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헤밍웨이가 이런 적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패인 내전에 투신했던 이유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내 가족과 이웃 나아가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 , 일면식 없는 타국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과 그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을 혐오하거나 인간을 부정하거나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재능 있는 작가들이 수없이 많고 그만큼이나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지만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작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을 쓸 수는 있어도 영혼을 울리는 걸작을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을 길러낼 수는 없을 겁니다. 위대한 작품의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흐르고 그 작품들은 보이지 않게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 작품 “맨 끝줄 소년”에서 국문과 교수 허문오는 참신한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찾기에 매몰된 채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지독한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그저 “특별한” 이야기만 좇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에 대해 또 그들이 만들어가는 현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그는 그저 공상과 망상 속에서 자기 욕망을 충족시킬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좇습니다. 그런 사람이 소설을 쓸 수 없겠죠. 소설은 허구일지언정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일진대 평범한  인간의 삶을 모르는 그가 어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갰습니까?

삶의 진리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 있으니, 작가도 스스로 평범한 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그들과 부대끼며 ‘희노애락애오욕’ 인간 칠정을 모두 누리며, 켜켜이 쌓아올린 타인과 자신의 삶의 나이테를 하나씩 풀어낼 때 서로가 공감하는 진짜 이야기가 탄생할 겁니다.

극중 허문오를 자극하여 파멸로 이끄는 “맨 끝줄 소년”은 12년 전 자신의 가슴 아픈 삶의 고백을 그저 별 볼 일 없는 이야기, 진부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 허문오에 대해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고 오랫동안  준비한 치밀한 복수극을 감행합니다. 허문오가 좋아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미끼로 삼아서 말입니다. 극이 전개될수록 시청자는 점점 그 소년의 이야기가 “이상하네”, “앞뒤가 안 맞네”, “현실과 다른데?” 의구심을 갖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이네”, “의도가 뭐지?”, “도대체 쟤는 허문오랑 어떤 관계일까” 등등을 느낍니다. 그러나 허문오만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인간에 무관심한 그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간 삶에 대한 이해도 없으니 소년의 특별한 이야기에만 매몰되어 스스로의 욕망이 투사된 거짓 현실을 만들어가다 결국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를 잃고 맙니다. 그래서 우스운 인간이 되어 버리고 소년이 친 덫애 완벽히 걸려들어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어쩌면 좋은 작가가 될 수도 있었을 그는,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잊은 까닭에 파멸하고 맙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좋습니다. 재미있고 독자들에게 소구력이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삶의 진리가 담겨 있지 않다면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평범한 이야기에 삶의 진리가 담겨 있다면 고전의 반열에 들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허문오는 이것을 잊었을까요?

허문오가 모든 것을 잃고 헌책방 카운터에 있을 때 그를 찾아 온 소년은 그에게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있음을 제안하는데, 허문오는 이에 대해 묘한 반응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소년에 대해 적합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그가 다시 소년의 유혹에 빠져들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허문오가 이강이라는 소년에 의해 아내와 교수직을 잃고 사회에서 매장당했음애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그의 병을 치유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파우스트”가 등장하는 것은 소년 이강이 마치 허문오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선량한 허문오를 유혹하는 악마인 것이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파우스트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성장하고 발전하여 결국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간척지를  마련하고 죽음에 이르며 그 덕에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지만, 허문오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그저 이야기만 탐닉함으로써 구원받지 못한 그의 삶은 앞으로도 지옥일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수에 눈이 어두워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허문오 스스로 그 이야기를 완성함으로써 자신을 파멸시키도록 이끈 소년 이강도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이야기꾼일지는 몰라도 좋은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도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핍되어 있으며, 삶의 진실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허문오를 조롱하고 파괴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맨 끝줄 소년”은 이강이며 또한 허문오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인간이라고  봐야 하갰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천재적 재능도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참,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 (15)

  • 숙면이보약

    숙면이보약 Lv.1

    07.05 · 1.♡.88.20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허문오가 이강에게 이끌려 어쩔수 없이 문제 훔치는 장면에서

    허문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을 느낀 것 처럼 보였고 이후 소설 집필에 도움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였습니다. 허문오의 희열은 하루 짜리였나? 그럼 이 장면은 왜 넣었을까?

    시간나면 다시 한번 보던지 해야 겠네요

  • 7번교각

    7번교각 Lv.1 → 숙면이보약 작성자

    07.05 · 175.♡.34.235

    저는 그 장면에서 허문오가 일탈의 쾌감을 느끼는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창작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면 범죄적 행위를 성공한 것으로써 기존의 허문오에서 조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요.

    아마 그 경험이 무려 연대 교수였던 허문오가 이강의 거짓 진술에 넘어가서 결국 이성을 잃고 자신만의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광기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봐요.

  • 원티드 Lv.1

    07.05 · 211.♡.178.80

    액자 형식의 플롯과 특이한 스토리 라인, 묘한 긴장과 에로틱,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본 시리즈입니다...ㅎㅎ

    극중 배우처럼 중독과 탐닉에 빠진 시간이었어요.

    다만 마지막 화에서 허문오 교수의 얇은 캐릭터를 드러낸 점은 아쉬웠습니다.

  • 7번교각

    7번교각 Lv.1 → 원티드 작성자

    07.05 · 175.♡.34.235

    허문오가 이강에게 너무 쉽게 무너진 것도 저는 좀 아쉽고, 애초에 연대 교수인 허문오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수훈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도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한국적 상황과는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창작을 못하니 평론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지만, 평론도 다른 의미에서의 창작이라서 허문오가 지나치게 가볍게 그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원티드 Lv.1 → 7번교각

    07.05 · 211.♡.178.80

    저는 마지막화 전까지는 충분히 용인이 됐어요. 이강은 허문오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파고든 거고, 그래서 허문오는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허문오가 대학동기인 김수훈에게 느끼는 문학적 열등감, 작가적 열패감 또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과거 씬을 보면 더욱더 그래요. 다만, 마지막화 보육원 씬에서 허문오의 캐릭터가 너무 얇아져 버려서 좀 실망했습니다. 이야기를 잘 끌고 온 작가의 상상력이 갑자기 소진돼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 좋구낭 Lv.1

    07.05 · 175.♡.11.181

    전 이드라마 결말이 조금 깼습니다

    왜 저리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죠? 과장되고 이해 안가는 말과 태도가 난무하는데 결말은 이게 모야 내가 뭘본거야 딱 이느낌이였습니다

  • 7번교각

    7번교각 Lv.1 → 좋구낭 작성자

    07.05 · 175.♡.34.235

    님은 시선의 객관성을 유지하셨지만 이야기에 탐닉한 허문오는 이야기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 탓이 아닐까요?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이강의 말을 맹신할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든 거죠. 진실은 허위로 구축된다는 것의 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 좋구낭 Lv.1 → 7번교각

    07.05 · 175.♡.11.181

    글쎄요 전 허문오의 입장에서 이강의 말을 그대로 믿는 그 부분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이강의 복수하고자 하는 이유도 그렇고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것도 그렇고, 허문오가 미쳐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외에는 이강이란 사람이 설명이 안되보입니다

    왜 대질도 안하고 조사도 안했나요? 그 새벽에 급하게 전화한 것은 어찌!설명되나요?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 너무 앞뒤가 안맞습니다

  • 폴길버트

    폴길버트 Lv.1

    07.05 · 1.♡.126.248

    평론가 이신가요? 너무 프로페셔널 하고 훌륭한 평론 잘봤습니다!

  • 7번교각

    7번교각 Lv.1 → 폴길버트 작성자

    07.05 · 175.♡.34.235

    그럴리가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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