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교각 (59.♡.32.196)
2026년 7월 17일 PM 11:32 · 수정 5회(23:50)
◎ 플롯 없는 전개 – 부조리극의 차용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확립된 ‘플롯’을 서사의 골격으로 삼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학 시간에 배운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이 구체적인 전개 양상이며 각 단계는 인과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전개되며, 작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현실에서도 벌어질 법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어 개별 사건으로 이루어진 역사보다 한 단계 높은 질서로서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플롯의 일반적 개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인류는 20세기에 그러한 고전적 플롯에서 벗어난 예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다만 영화라는 장르에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대중 영화를 표방한 작품에서 그러한 ‘부조리극’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일 것입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영화화한다면 관객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극장을 뛰쳐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나홍진은 전작 「곡성」에서 이미 그의 천재적인 연출력을 통해 훌륭한 부조리극을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 「곡성」의 주제 해석
「곡성」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입니다. 그것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영화가 구체적으로 특정한 사건들을 형상화하고 있어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의미 해석을 가능케 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사건들이 하나의 메타포를 형성하고 있어서 또 한 층이 더해지면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의미구조를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건은 귀신 들린 것인지 혹은 독버섯에 취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이 괴이한 행위를 하고 사람들은 죽어 나가는데 과학의 힘으로 사건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사건의 원인으로 일본인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급기야 곽도원의 딸까지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되자,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을 불러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은 산신 혹은 민족의 수호신이자 선의 대리인이며 일본인은 괴기한 주술을 행하는 악의 대리인으로, 황정민은 그러한 악의 대리인의 하수인 격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선은 악에게 패배하게 되고 곽도원의 딸은 그를 포함하여 모든 식구들을 살해합니다.(영화를 본지 오래되어 줄거리에 약간의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면 이 영화는 하나의 오컬트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산신이나 수호신, 악마나 그 하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시대에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고 우리의 이성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당은 또 어떻습니까? 살을 날리는 것이 정말 천우희가 연기한 산신이나 민족의 수호신을 죽이려는 행위였을까요? 하지만 영혼에게도 살을 날릴 수 있나요? 우리 무속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전통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황정민이 악의 하수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 모든 요소들이 일차적 서사로서 기능할지라도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구적 서사 줄기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문제의식은 “왜 죄 없는 어린 아이가 다중 살인의 가해자가 되었는가?” 혹은 “왜 죄 없는 가족이 그 아이에게 살해당했는가?”입니다.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답은 “이유 없다”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삶의 비극은 이유가 없습니다. 수호신이나 악마, 주술 따위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 부조리한 삶의 비극을 설명할 수 없어서 그러나 설명하지 못하면 두렵기 때문에 만들어낸, 하나의 망상들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삶은 비극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플롯은 극적 장치일 뿐, 우리의 현실은 그것과는 무관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그저 기다립니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져 감에도 그들은 그저 기다립니다. 매일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은 없고 오늘 저녁에 온다던 고도는 내일도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매일이 반복됩니다.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시지프스이고, 죄 없이 형벌은 받는 부조리한 시지프스입니다. 그래서 삶은 비극이고,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영화 「곡성」이 곡성(哭聲)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애도하기 위해 울어야 합니다.
◎ 哭聲 10년 뒤에 던져진 HOPE
나홍진이 「곡성」이후에 무엇을 던져줄지 저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이후에 그가 연출한 작품이 HOPE임을 알았을 때 저는 감동했습니다. 아, 그래 우리 삶이 곡성이라면 희망이 필요하다. 그래 비극적인 우리의 삶이 비극에서 그친다면 그것이 진정 비극일 것이므로 나홍진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어떤 서사를 만들 것인가, 「곡성」처럼 부조리극으로 그려낼 것인가 아니면 「황해」처럼 플롯을 얹을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은 전작 「곡성」에 이어서 HOPE도 하나의 부조리극으로 완성시켰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정말 감동적인데 수백억의 투자를 받은 감독이 부조리극 영화를 만든다는 건 그냥 ‘미친 짓’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경력이 단칼에 끝장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이렇게 긴 상영시간으로 편집을 해놓고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상영관을 나서며 “이게 뭐야?” 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곡성」에서 취한 전략을 다시 사용합니다. 중층적인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외계인 이야기를 끌어와서 인간과 외계인의 대립 구도라는 서사를 한 층 내려 쌓아 서사구조를 만들고, 시각적인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서 감각적 만족도를 주는 윗층을 쌓고, 그것에 삶의 메타포를 한층 더 쌓아 올려서 영화를 완성합니다. 전작 「곡성」이 이중층이였다면 이 작품은 삼중층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입니다. 비극 위에 희망을 한층 더 쌓아 올린 것입니다. 완벽한 후속작이고 빛나는 걸작입니다.
◎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호포항(아마도 지명은 호포리일 것 같습니다)에 외계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종족의 외계인이 하필 그 외딴 지역에 불시착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 갈등과 살육전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말이 안 되죠,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이 60~70년대라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또 시대적 배경이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말이 안 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북한 땅을 지나 휴전선을 뚫고 내려오는 것이 차라리 더 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말이 안 되는 설정이지만 SF라는 장르적 특성이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입니다. 마지막에 거대한 우주선이 침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비행체가 대기권 혹은 지구 외부에 있다는 것을 그 당시 치열한 냉전 시기에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미국이나 소련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트럭을 타고 괴물과 맞서 싸우러 가는 두 명의 할아버지와 그들에게 탄창을 건네주는 두 명의 할머니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괴물들과 맞섭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출처도 알 수 없는데,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걸 왜 묻냐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대사들이 튀어나옵니다. 저 노인들은 누구일까요? 현실에서 그런 노인들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 호포리라는 곳이 HID 요원들의 집단 거주지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괴물을 사냥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의 전투력도 말이 안 되고, 그들을 지원하러 온 건지 그냥 온 건지 알 수 없는 부티 나는 형님 무리들도 말도 안 되는 총기 사용 능력과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모두 몰살당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혹자에게 이 영화는 플롯이 결여된 영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영화, 설정이 맞지 않는 영화, 개연성이 결핍된 영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저 외계인 세력들이 한반도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대리전을 벌였던 소련과 미국을 은유하는 것이라면 어떻습니까? 너무 일차적이죠? 그러나 저 외계인들이 어느날 불쑥 닥쳐 온 우리 삶의 불행이라면 어떻습니까?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예기치 못한 퇴사 권유, 멀쩡할 줄 알았던 아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고, 건강한 줄 알았는데 암 선고를 내리는 의사가 저 외계인들이라면 어떻습니까? 그냥 길을 걷는데 아리랑 치기를 당하는 것에 비유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삶은 지금 이순간도 외계인의 침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호포리이고, 우리는 그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운명은 가혹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결말은 호포리 사람들처럼 ‘몰살’일 확률이 높습니다.
◎ 영웅, 히어로는 없다.
매일 매일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야 하는 우리의 삶은 힘겹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그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우리는 자신을 단련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매일의 단련을 통하여 마음 속에 한 자루의 칼(이 영화에서는 총)을 벼리어 나갑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증명이고,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칼을 휘둘러 나와 누군가의 삶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에 남은 네 명의 인물은 그렇게 자신의 칼을 만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키 작고 볼품 없는 노인은 왜 그렇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기꺼이 외계인을 처치하기 위해 숲으로 향하는가, 반쯤은 정신이 나간 것 같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청년은 어이없이 대형 사고를 치고도 버려지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남는가, 두 명의 경찰은 왜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 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 영화 중간에 반복되는 “이게 말이 돼? 이게 믿어져?” 같은 대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깨우쳐줍니다 – 에 그저 맞서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의 어느 순간에서는 목숨을 걸고 우리의 칼을 휘둘러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저 그런 사람들일 뿐입니다.
◎ 씨바껏,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멀리서 침몰하는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며, 마치 주인공처럼 보였던 조인성의 죽음을 뒤로 하고, 뭘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그들은 뜁니다. 그들을 지켜줄 총을 메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저 어딘가로 뛰어 갑니다. 힘드니까 말 좀 시키지 말라는 부조리한 대사를 주고 받으며 그들은 그냥 뜁니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아니 지금 이순간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뛰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이 탄 차가 끝없이 유턴을 반복하고 우회전, 좌회전 하며 갈팡질팡하듯이 우리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뛰어야 합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야 합니다. 굳건하게 총을 쥐고 마치 군대에서 군장 구보를 하듯이 그렇게,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외계인들에 맞서야 합니다. 저 평범한 네 사람이 그럴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HOPE를 보았습니다. 또한 외계인도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기함은 추락했고 그들 행성의 운명을 좌우할 소중한 존재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구라는 낯선 행성에서조차 어떻게든 종족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자신의 심장까지도 내어 놓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또 한번 HOPE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감동했습니다. 아! 나홍진은 천재가 맞나보다.
◎ 희망은 절망 안에서
한 일 년 희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일이 잘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외계인이 침공했고 우리는 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 HOPE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씨바껏 또 달려야지 뭐. 옛날에 아스팔트에 쇠파이프 끌며 스파이크를 튀기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또 뭐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지, 달려야지 하고 말입니다. 아마 도로 위를 달리던 네 사람은 서로를 마음 깊이 의지하는 동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여전히 수많은 동지들이 도로 위를 함께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절망과 배신감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어깨를 걸고 희망을 위해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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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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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불태워버려
07.17 · 220.♡.9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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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불태워버려 작성자
07.17 · 59.♡.32.196
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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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허허
07.17 · 115.♡.141.148
흥미롭게 봤습니다. 다만, 상영 시간 중 대부분이 액션에 할애되어 있어 깊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로 보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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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허허허허 작성자
07.17 · 59.♡.32.196
네, 감상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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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ㅑㅈ
07.17 · 121.♡.120.248
영화 초반에는 내내 "괴물이 나타나면 보통 도망칠텐데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그대로 죽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노인들이 대다수인 마을에서 아무도 도망치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은 이해불가한 상황에서도 자기 임무를 버리지 않습니다. 액션은 스펙타클하고 간간히 유머코드도 나오는데 마음은 왠지 하얼빈 같은 영화를 본 것처럼 짠해지는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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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츠ㅑㅈ 작성자
00:00 · 59.♡.32.196
저도 마지막 장면에서 짠하고 울컥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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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xerMulder
00:16 · 14.♡.219.243
방금 코엑스 돌비로,
온가족이 보고나서 한참을 토론(?)하면서 귀가했더니,
엄청난 리뷰글을 올려주셨네요.
저는 오늘로서 총 4번을 봤는데,
둘째(초5)가 마지막 엔딩크레딧 올라갈때 큰 숨을 고르고,
최고다 라고 박수치는 모습에 울컥했네요 ㅠㅠ
(온 가족이 너무 좋게 봤다고 해서, 보람찼습니다)
총수가 그랬죠. ㅅㅂ 쫄지마 라고...
희망에서 절망으로, 그리고 다시 희망으로.
그 믿음을 갖고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뛰어가겠습니다.
정말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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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BoxerMulder 작성자
00:23 · 59.♡.32.196
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씨바꺼 또 함께 뛰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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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ydivison
00:42 · 119.♡.207.200
영화를 보고 나와서 외계인들위 존재를 ‘재난 또는 재앙‘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대한 공포로 치환하면 그냥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해하겠다 싶었지만….
이걸 이렇게 공허한 이야기로 민들고 곡성 때와 같이 빈공간을 또 다시 관객들이 채우게 만드는건 상당히 게으른 감독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어요.
초반 10분 이후 반복되는 장면들 때문에 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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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joydivison 작성자
01:10 · 59.♡.32.196
네, 역설적으로 성실하게 게으르달까요ㅎㅎ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