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요원 (121.♡.209.232)
2026년 7월 19일 PM 03:04 · 수정 4회(15:51)
군부독재시절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었던 단어 - "빨갱이"
아니, 정확히는 이승만 정권 때 부터 사용되어 왔으니 군부독재가 ‘빨갱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군요.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반공주의와 빨갱이 낙인을 군사정권이 통치수단으로 체계화한 것에 가깝습니다. 군사정권은 이 말을 법률·수사기관·언론·교육과 결합해 정치적 반대자를 국가의 적으로 만드는 통치수단으로 사용해 왔죠.
물론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실제 간첩 활동은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정상적인 안보 대응과 달리, 정부를 비판하거나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까지 공산주의자로 몰아 정치적 권리와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한 ‘빨갱이 몰이’였습니다. 결국 이 말은 군부독재 시절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상대를 정치공동체 밖으로 추방하고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정치적 낙인으로 작동했습니다.
정치는 이러한 사상 검증을 하는 단어를 사용해 진영을 나누었고 현재까지도 정파적 욕설과 색깔론으로 잔존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그 직접적인 계승의 역할을 했던 단어가 '종북좌파', '반국가세력' 같은 단어이죠.
최근 이상한 구분이 하나 생겼습니다.
"반명"입니까?
처음 들었을 때 부터, 너무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유튜브 타이틀 여기저기에 '반명'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원래 의미대로라면 다음 세 가지는 서로 다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특정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
이재명 중심의 정치노선과 거리를 두는 사람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나 축출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
엄밀히 말해 마지막 경우만 ‘반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사람에게도 “그래서 반명이라는 말이냐?”라고 묻는 경우가 생깁니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 인사나 공천에 불만을 제기한 인물이 자신이 ‘반명으로 낙인찍혔다’고 주장한 사례가 있었고,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보인 인사에게 ‘반명 수괴’ 같은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 정책이 옳은가?”를 논의해야 하는데, 질문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그러면 검찰개혁·경제정책·인사·당 운영에 대한 비판도 정책적 견해가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충성 여부로 해석됩니다. ‘빨갱이인가?’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시험했다면, ‘반명인가?’는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시험하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대상과 강도는 다르지만, 주장보다 발언자의 소속을 먼저 심판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정치적 입장은 원래 여러 층위로 구성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 정책은 반대할 수 있고,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만 인사는 비판할 수 있으며,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당 지도부에는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명 대 반명’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하면 이런 복합적 태도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비판자는 곧 반대자가 되고, 유보적 태도는 배신으로 해석됩니다.
정당과 정부가 실패를 피하려면 내부에서 불편한 이야기가 전달돼야 합니다. 그런데 비판하는 순간 ‘반명’으로 분류된다면 정치인과 당직자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한다.
지도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달한다.
정책의 효과보다 충성 경쟁에 집중한다.
그 결과 지도자는 실제 민심과 위험 신호를 늦게 알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단결한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집단사고와 정책 실패의 가능성을 키웁니다.
위험한 논리는 다음과 같이 확장됩니다.
이재명 비판 → 반명
반명 → 민주당을 해치는 행위
민주당을 해침 → 개혁을 방해하는 행위
개혁을 방해함 → 상대 진영을 돕는 행위
이 과정이 굳어지면 특정 지도자를 비판하는 행위가 당과 진영 전체를 배신하는 행위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민주정치에서는 지도자와 정당, 정부와 국가가 동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정부의 성공을 바랄 수도 있고, 당대표를 비판하면서 당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정당은 정책과 가치의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충성 공동체로 바뀔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비판을 ‘반명 공세’로 돌리면 실제 잘못을 검토하지 않게 됩니다.
잘못된 인사 = 반명 세력의 공격
정책 실패 지적 = 흔들기
지지율 하락 분석 = 내부 총질
민심 이반 경고 = 배신 행위
이렇게 되면 정치인은 결과에 책임지는 대신, 비판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 문제 해결 경쟁이 아니라 충성심 증명 경쟁으로 변합니다.
‘반명’의 가장 큰 위험은 이재명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책적 비판, 노선 차이, 인사 경쟁, 감정적 불만을 모두 ‘반명’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 데 있습니다.
과거의 ‘빨갱이’가 다양한 사람을 “국가의 적”으로 단순화했다면, 오늘날의 ‘반명’ 낙인은 민주당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지도자의 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강도와 폭력성은 비교할 수 없지만, 논리 구조는 다음과 같이 닮아 있습니다.
무엇을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편인지부터 증명하라.
건강한 구분은 친명·반명이 아니라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어떤 정책에 찬성하는가?
무엇을 비판하는가?
대안은 무엇인가?
민주당과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가?
사람을 분류하는 순간 토론은 끝나지만, 행위와 주장을 구분해서 평가할 때 비로소 정치가 시작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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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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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사모
07.19 · 124.♡.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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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반명을... 신천지라고 딱지를 붙이고 있죠.
저는 민주주의 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일개 개인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가치보다 한 개인의 뜻을 받드는 것을 우선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최루탄 가스에 시달리고, 백골단에게 두들겨맞아가면서 평생을 민주당 지지자로 살아왔는데... 말년에 이 무슨 봉변인지... 자괴감이 듭니다. 반명... 신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