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14.♡.156.50)
2026년 7월 13일 PM 11:18

지난 달에 2년만에 독립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오후여서 아주 한적했습니다.

탑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겨레의 집인데요.
저 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탑 사이에 한반도가 그려져있었습니다.
사람 많을 때 가면 이렇게 찍기 어려운데 아무도 없어서 찍어봤습니다.

건너가는 다리 이름이 '독립의 다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보면서 민주당이 생각났습니다.
왜 못 뭉치고 저 야단일까... 하고요. (지금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여기가 겨레의 집인데요.
건축양식에 대해 좀 알면 좋으련만 그런 건 전혀 모르고;; 개방돼있는 곳이라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뭐 그런 곳입니다.

겨레의 집을 보면서 올라갔을 때 오른쪽에 있었던 여러 버전의 태극기들입니다.

역사 속의 태극기라고 합니다.


100년 전 그날을 보다 6.10 만세운동 전시를 보러 일부러 독립기념관에 다녀왔는데요.
잘 아시는 분께서 일부러 가실 필요는 없겠지만, 겸사겸사 보러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6월 중순에 다녀왔건만 전시 종료가 한 달도 안 남은 이제야 후기를 올리고 있군요.;;

다 보는데 아주 오래 걸리진 않았구요.
저는 6.10 만세운동에 대한 답사를 한 차례 다녀와서 내용을 좀 알고 봤기에 20분 정도만에 후딱 봤지만, 꼼꼼하게 전시물을 다 읽으셔도 30~40분 정도면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것 같고, 실내 전시관에서 다른 상설 전시랑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 후기는 여건상 직접 못 가시는 분들을 위한 후기에 가까워서 찍어온 것을 최대한 올려보겠습니다.

전시를 열며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일, 만세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습니다. 6.10 만세운동은 오로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좌우 세력이 이념의 차이를 넘어, 손을 잡고 나아갔던 역사적인 독립운동입니다. 100년 전 그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자료를 보며, 어둠을 뚫고 터져 나왔던 그날의 함성과 독립정신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역광이라 어른거리네요.
6.10만세운동의 준비
독립을 위해 이념을 넘어 손잡고 나아가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의 결과, 일제는 통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의 독립의식을 누르고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하여 친일적인 세력을 키우는 데에도 힘썼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1920년대,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고 합법적 범위 내에서의 활동을 주장하는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민족세력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죽고 민중들의 애도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던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 진영은 순종의 장례일을 맞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6.10만세운동을 함께 준비해 갔습니다.

1919년 3.1 운동에 대한 기사와 천도교 개벽사에서 발행한 잡지 [개벽] 57호의 내용입니다.
천도교 개벽사에서 발행한 [개벽] 57호에는, 데라우치(1대 총독)의 무단통치와 사이토(3대 총독)의 문화 통치를 비교하는 글이 실려있다. 문화통치가 언론.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정책으로 조선인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한 정책이며, 겉으로는 '문화'의 외피를 씌웠지만, 실제로는 경찰력과 군사력 확충을 통해 무단통치와 다르지 않았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919년 3.1운동 이후부터 1926년 6.10만세운동이 있기 전까지의 국내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이어집니다.

위는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이지탁 선생의 회고이고, 아래는 '동아일보'에 실린 이광수의 글인데요.
일제의 지배를 인정한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의 등장은 민족세력의 분열을 일으켰다는 내용입니다.

1926년 민족의 단결을 위한 노력이 있었고, 5월 1일에는 메이데이 기념 대중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장례일에 대중적인 시위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수정되었습니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의 죽음 이후 애도 분위기와 항일 의식이 고조되었는데요.
시대일보에 실렸다는 '통곡 속에서' 라는 심대섭의 시의 전문은 큐알코드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고 아래에 가져왔습니다.


6.10 만세운동이 있기 전에 있었던 송학선 의사의 의거에 대한 전시물입니다.
송학선 의사는 평소 안중근 의사를 존경했었는데 안중근 의사와 같은 나이에, 이듬 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돌아가십니다.



권오설이 쓰고 박래원이 인쇄를 한 격고문은 천도교당 옆 손재기의 집에 보관 되었습니다.
격문의 내용은 QR 코드를 찍으면 아래와 같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되고 위기를 맞습니다.




천도교당 옆에 거주하던 손재기의 집에서 보관 중이던 수만장의 격문이 압수되었고, 관계자들도 모두 붙잡혔습니다.

조선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한 조선 사람으로 당연한 것이라 여겨 민중이 동요하고 있는 이 기회를 이용해 불온문서를 인쇄 살포하여 한 조선인이 가지고 있는 사상을 고조시켜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을 세웠다.
- 권오설 신문조서 1926.10.11 서대문형무소에서 -



배재고보생들도 참여를 했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얼마 전 듣고 온 강연에서는 통동계는 5명 뿐이었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학생들이 주축이었기에 두 갈래로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 전시에서는 두 갈래라고 적혀있네요.
그 강연의 후기는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거사의 계획이 발각되고, 학생 조직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학생들이 급하게 격문(삐라)를 제작해야했습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격문은 사직동에 있던 이석훈이 하숙집에서, 통동계의 격문은 김재문과 박용규의 하숙집에서 제작되었다. 이들은 만세운동 전에, 서로의 계획을 확인하고 거사를 일으킬 장소를 나누는 등 연대를 이어갔다.
학생들이 격문을 제작한 장소, 전시 패널

왼쪽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오른쪽은 통동계 학생들의 격문이라고 합니다.

종을 이왕이라고 했었나봅니다.
순종의 장례에 관한 기록의 제목이 '고이왕전하인산에 관한 휘록'이군요.

당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있었을까? 하는 큐알코드 속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6.10 만세운동 이후 배재학교 불온학생들이 일부 교사들의 암묵적 지원 아래 만세운동을 모의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큐알코드 속, 지방의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창신동 채석장 입구가 어디인지 아직 파악이 안 됐다고 들었는데 창신동, 동묘앞에서도 만세를 외쳤다고 하구요.
오후 1시25분경, 순종의 장례 행렬이 창신동 채석장 입구 부근을 통과하자, 홍종헌은 '대한독립만세 우리 동포여, 우리는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자'라는 문구가 따로 적힌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장례 행렬을 따라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 보라색 원으로 표기되어 있는데요.
단성사, 관수교, 경성사범학교, 오간수교, 동대문, 동묘 이렇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각 장소별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분들의 사진과 이름이 표기되어있습니다.




QR코드 속 내용, 동아일보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은 다 퇴학 당해서 1명 빼고는 졸업을 못 했다고 합니다.(박찬승 교수님 페북에서 본 내용입니다.)

전시 패널에서 '이병립'이라는 이름을 계속 보셨을텐데요.
놀랍게도 얼마전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이번에 서훈을 받으셨다고 합니다.(얼마전 별도 강연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판결문이 있는데도 왜 진작 서훈을 받지 않으셨는지... 국가보훈부는 6.10만세운동에도 관심을 좀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10 만세운동 이후에 좌우 합작 단체 신간회와 근우회가 결성되었다고 하는데, 신간회는 합법단체였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어쨌든 좌우 합작에 의미가 있다고 봐야하겠습니다.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전시 내용은 간략했고, 찍어온 것을 모두 올렸습니다.
제가 5월에 다녀온 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의 후기에도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참고해주세요.
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 후기 1 : https://damoang.net/free/6220907
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 후기 2 : https://damoang.net/free/6224297
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 후기 3 : https://damoang.net/free/6225066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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