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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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디가니 210.♡.254.193
작성일 2024.09.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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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여기 옆에 와서 누워봐."

Z는 머뭇거렸다. 매사에 시큰둥해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Z였지만 '싫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O는 Z의 의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시 재촉할 뿐이었다.

"옷이 더러워질까 봐? 아니면, 다 큰 어른이 땅바닥에 눕는 게 어색해서?"

"Another one bites the dust."

Z는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한 음절씩 뱉어냈다. Z의 대답에 O는 짧게 헤실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꼭 눈에 흙을 뿌려야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뒈져야 흙바닥에 눕는 건 아니잖아. 넌 그래서 탈이야. 뭐든 무거워. 그렇게 살다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고. 꼬로록이야."

그러곤 O는 단호하게 말을 덧붙였다.

"Oh, Let's go!"

Z는 O가 딴엔 멋을 부린 말에 "아무 데나 프레디를 호출하지 마."라고 코웃음을 치며 그의 옆에 가서 누웠다. 골목길 바닥은 여름 한낮인데도 의외로 차가웠다. 좁은 골이 굽이굽이 이어진 하루 온종일 해가 비칠 일이 없는 바닥인 탓이었다.

그렇게 두 남자가 골목길의 끝 계단 끝에 바짝 머리를 대고 누운 것이다. 그들의 시선은 좁고 긴 계단을 따라 바로 하늘로 이어졌다. 마치 하늘로 난 계단 같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가파른 언덕에 곰보자국처럼 얽은 판자촌 빈민굴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 시리게 파란, 저 하늘로 곧장 이어지는 것이다.

"난, ... 어릴 때 가끔 이렇게 누워 있곤 했어."

"아무 데나 누워 자는 거지 본성이 그때부터야?"

마지못해 땅바닥에 누운 Z는, 감상에 젖은 O의 목소리를 뿌리치며 뻣뻣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면 올라가려면 두 번은 쉬어야 하는 저 계단이, 아버지가, 형이 그렇게 두들겨패기만 했던 집에라도 돌아가려면 녹슨 난간을 붙들고 저 계단에 매달려야 했어."

"니만 그렇게 산 거 아니야."

Z의 입에 돋친 가시는 말랑거리는 건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쳇, 내가 사연팔일 하제? 끝까지 들어. 그러다가 이렇게 계단 끝에 눕는 걸 깨달았지. 그러면 말이야 난 저 계단을 눈으로 하나 하나 오르다보면 끝에 가서 하늘로 점프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 버렸어."

멀리서 프레디 머큐리의 외침 다음, 앞인지 뒤인지 위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Hey

Oh, take it

Bite the dust, hey

Another one bites the dust

Another one bites the dust, ow

Another one bites the dust, hey hey

Another one bites the dust, hey-eh-eh

Ooh, Shout!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02 14:46
O는 어두운 하늘 어딘가로 팔을 뻗고는 말했다.
"내가 말이야, 그 시절에는 저기 어딘가에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었지, 어쩌면 저기에서 떨어진 거라고."
"..."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지. 원래는 저기에서 평온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누가, 누가 실수를 했는데?"

"모르지. 아마 담당관 하나가 작은 실수를 해서, 머나 먼 여기까지, 그것도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그렇게 떨어진거야."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되돌아갈 수 없는 거야. 그 담당관이 누른 버튼에는 '회수'가 없거든. 그러니 그냥 살아가야지"
"속 좋네.."

"흐흐, 그래도 이렇게 누워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고 있으면.. 조금씩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조금씩 말이야."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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