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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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디가니 123.♡.192.165
작성일 2024.09.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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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글렀나 보다."


경석은 밭은 숨을 내쉬며 입술을 달싹였다. 낮은 소리임에도 목소리는 반향을 일으키며 민기의 귀에 닿았다. 그러나 민기는 피 터진 손으로 곡괭이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동굴에 갇힌 지 한달을 넘겼다. 경석을 한달까지 헤하린 후론 며칠이 지났는지 가물가물했다. 경석에겐 이제 시간을 헤아릴 체력조차 남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가지고 있던 비상식량으로 버텼다. 그나마도 동이 난 후론 물이 흐르는 벽을 핥았다. 혀끝이 짜릿하게 죄이는 물맛이었다. 암반 어딘가에서 금속성 광석이 녹아든 것이리라. 그런데 물은 깨끗한지 마시고 탈이 나진 않아 아직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 동굴에 갇히게 되었는지 복기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에게 울화통을 내는 것도 경석은 이젠 지쳤다.


동굴 안쪽에는 심하게 부상을 당하거니 기진해 버린 동료들을 두고 체력이 남아있는 둘이 탈출구를 파내고 있었다. 늘 허기가 진다던 민기는 매번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다녀왔다. 경석은 왕복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는데 괜히 체력 낭비를 하지 말라고 해도 민기는 "그래도 가 봐야지." 할 뿐이었다. 경석은 그들을 이미 죽은 사람들로 간주했다.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말 그대로 '발목만 잡'을 뿐인 존재라고 여겼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둘이라면 탈출 가능성이 몇 배는 높아지리라 판단했다. 그런 합리적인 판단에도 막장의 문장은 정해져 있던 모양이었다. 경석은 극한 상황에서 맞이한 자신의 모습이 실태(失態)인지 실태(實態)인지 헷갈렸다. 뭐가 됐든 결국 그들을 버린 대가가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자신과 달리 피로한 기색만 있을 뿐 기력이 쇠하지 않는 민기는 괴이하기만 했다. 갈수록 멀어지는 그들의 안위를 위해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그 사이를 오가던 민기... 민기... 민기...


경석은 어쩌면 민기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실태(失態)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란 의심을 품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03 16:18
경석이 들었을까, 아니면 의식을 잃으며 그렇게 혼절해버렸을까.
그가 축 처지며 스러지는 것은 확인하며 민기는 키득거렸다. 기분나쁜 키득거림.

"어때?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
"그럼, 절대 알 수 없지. 크크크."
민기는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중얼거렸다.

"해야지?"
"당연히..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주 끈질기게 버텼어. 크크크."

경석의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순간 민기는 놀란 표정으로 경석을 주시했다.
"민.. 민기..? 너.. 맞..아?"

민기는 눈썹을 치켜 뜨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일까.

"음.. 반은 맞고 반은.."
"크크크, 그냥 맞다고 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크크크."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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