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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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디가니 118.♡.162.79
작성일 2024.09.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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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먹는 도둑이라던 민자 지하철을 타고 봉은사역에서 내렸다. 검은머리 외국인 신분이라 세금을 내지 않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생때같은 내 돈”, “피 같은 내 돈”을 세금으로 뺏기고 또 그게 딴놈 주머니로 착실하게 새고 있다니 열라 킹받는 일이다. 그 주머니에 구멍을 내고 그 밑에 내 주머니를 대고 있으면 화가 가라앉으려나. 그런데 ‘피 같은 내 돈’이라니 … 어느새 나도 그 구두쇠 틀딱을 닮는 모양이다.


“제퍼슨, 절은 어때? 메가시티 안에서 고요한 산사라, 크 멋지지 않아?”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퍼슨은 천장에 매달린 안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Exit 7.”


“야 역명이 뭔지 알기나 해? ‘봉은사역’이야. 근데 봉은사는 스킵이라고?”


제퍼슨은 씩 자랑스레 웃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나 가라, 봉은사.”


제퍼슨 하는 양이 어처구니 없었지만 힙한 한국인 그중에서도 엘리트인 내가 참아야지. 우리는 7번 출구로 나와 코엑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한 200여 미터 앞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다. 그런데 아 존나.. 아니 사실 존나까지는 아니지만(쏠까 존나 멀었는데 약해 보일 순 없으니까), 그래도 멀다. 젠장. 출구 앞에서 전동킥보드라도 찾아볼걸.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퍼슨은 옆에서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울리고 있었다. 


‘K 열풍에 찜쪄진 오징어 같은, 썩을 놈. 남은 뭍에 나온 생선마냥 할딱거리고 있는데 뭐가 좋다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지.’


 이죽거리는 내 입 안에서 소리를 얻지 못한 문장이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요샛놈들 공감 능력 떨어지는 건 여나 거나 한가지인 모양이었다. 딱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퍼슨이 봉은사를 버리고 찾은 바로 ‘강남 스타일 동상’!

동상 앞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첫차를 타고 일찍 온 바람이 있었다. 제퍼슨은 제빨리 삼각대에 폰을 고정하고 영상을 찍을 준비를 했다. 내가 좀 도울까 했지만, 제퍼슨은 애당초 내 도움을 기대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빠르고 정확하게 준비를 마치더니 동상 앞에서 강남 스타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번 영상이 자신의 긴 프로젝트의 끝이라고 했다. 50여 개국 도시에서 말춤 추는 영상의 대미를 장식할 컷이라고.  


‘참나, 이름이 제퍼슨이라 그런지 취향 한번 천박하다니까. 토머스 제퍼슨, 이 천박한 평민 자유주의자 같으니라고.’


 난 저 동상을 처음 봤을 때 무슨 수음하는 동작인가 싶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 천한 노래가 세계적으로 흥하더니 이 강남 한복판에 수음하다 잘린 손이 예술품이라니. 정말 어디 호랑말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저 알토란 같은 자리를 이렇게 놀릴 수 있나? 작은 건물이라도 지으면 말이야, 그리고 내가 그 건물주님이 되면, 모든 게 완벽해질 텐데 말이다. 1층에는 스벅을 입점시키고 2층에는 갤러리, 3층에는 내 오피스 겸 집. 물론 내 차량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지. 크크. 코엑스 거리에 3층 단독 건물이라니, 생각만 해도 곧휴가 고추서고 샅 밑이 움찔움찔 저릿저릿 했다. 언제 촬영을 끝냈는지 제퍼슨은 옆으로 와서 외국인 특유의 어깨짓을 하며 말했다.


“Are you Ok?”


갑자기 끼어든 제퍼슨 때문에 곧 손에 잡힐 것 같던 미래가 사라져버렸다. 개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놈 저놈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년놈이 없다. 


‘씨발, 염강탱이. 돈을 안 준단 말이지. 씨드 머니, 그것만 있으면….”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23 16:26
강남스타일의 히트와 더불어 처음 동상을 기획하고 기획서를 내밀었을 때,
이미 여러분들도 예상하신 것처럼 내 기획안은 내 머리 위로 훨훨 날아올랐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다섯 장에 불과했으니까,
아주 그럴싸하게 스토리를 넣고 해서 수 십 장 정도 작성했더라면
바닥에 흩어진 그 많은 기획서 종이를 번호 순으로 정리하며 줍는
꼴 사나운 모습이 펼쳐졌겠지.

다섯 장을 다시 번호 순으로 정리하고 다시 내밀었다.

"다시 한 번 살펴주세요. 이건 분명 관광객들의 성지가 될 겁니다."
"이 보세요, 과장님! 언제적 강남스타일이에요. 벌써 단물 다 빠졌어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곡 한 곡만 볼게 아니라, K-POP의 태동으로 충분히.."
"허허허, 그래서, BTS, 블랙핑크.. 뭐 이런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온다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스탬프를 찍는 코스들을 만들어서.."
"하아.. 정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요, 좋습니다, 좋아요. 한 번 올려봅시다."

된통 깨질 걸 예상하고 윗선으로 결재가 하나씩 올라가고,
결국, 강남스타일의 동상이 강남 한 복판에 설치되었다.
도대체 누가..?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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