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이야기 - 14. 꿩의 비름
페이지 정보
본문
대나무숲 근처에서 활동이 배정된 날이면,
바람을 타고 마른 대나무 잎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다.
그날도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입으로 크게 바람을 불어 마치 제피로스가 된 양 힘을 보태고 있었다.
주변에는 삼삼오오 방문객들이 지나가고, 꿩도 지나가고…꿩?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꿩 한마리가 1m 거리에서 유유히 걸어 내 앞쪽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꿩이 나를 위화감 없이 지나칠 정도로 내가 이 자리에 오래 서 있었던 걸까?
간혹 대나무 숲 속에서 꿩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실제로 꿩을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책하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
맨발로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까지.
뭐 하나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살아있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숲으로 사라졌던 꿩이 다시 내 앞을 지나 반대편 대나무 숲을 향해 총총 걸어갔다.
못 본 것인지, 아니면 못 본척 하는 것인지,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자연주의 정원에서 본 ‘꿩의 비름’ 이라는 식물이 떠올랐다.
그 식물이 자라는 곳에 꿩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던데,
그래서 꿩이 있는 것인지, 꿩 때문에 그 식물이 심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머리를 낮춘 채 대나무 숲 한켠으로 살금살금 들어간다.
나는 방금 태화강 국가정원의 이면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엿본 듯하다.
벗님님의 댓글
문득 한 자리에 머무르며 발 아래 밟힌 작은 풀잎 하나,
바스라지듯 흩어진 모래 알갱이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