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이야기 - 16. 어린 왕자와 여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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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habash 211.♡.120.164
작성일 2024.12.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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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덥고 건조한 날 이었다.

물 한 모금이면 더 바랄게 없겠다고 생각하며, 저녁노을 고운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저만치 앞에서 작은 우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우물을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기대와 달리, 정원 속에 만들어진 조형물이었다.

우물의 지붕 위에는 까마귀 형상의 풍향계가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

풍향계라고 생각했던 건 더위에 지쳐 구조물 위에 앉아 쉬고 있던 까마귀였다.


그 모습 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풍경이었지만, 더위와 갈증은 그 감동마저 덮어버렸다.

까마귀도 날아가 버린 텅 빈 우물 곁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지.’


그때였다.

어디선가 맑은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와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모래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오더니, 무언가 꼬리 달린 존재가 덤불 속으로 휙 뛰어들었다.

순간, 초록빛 가득했던 태화강 국가정원이 황금빛 모래 사막으로 변했다.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종이비행기라도 하나 접어 날렸다면, 이 순간을 조금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었을까.


길을 걷다가 우물을 만나면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라.

비행기를 수리하고 있는 생떽쥐베리와 마주칠지,

아니면 어린 왕자가 양 한 마리를 데리고 여우를 길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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