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이야기 - 9. 오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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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2.21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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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강바람을 타고 떼까마귀가 오죽위로 날아간다.
강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대나무 사이로 떼까마귀가 내려앉는 순간,
자연은 이름과 형상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지난 여름,
한 미국인이 태화강 국가정원의 오죽을 보며 말했다.
“얼마 전 골프장에서 시커멓게 죽어가는 나무를 봤는데, 이 나무랑 똑같아 보이네요.
혹시 자연주의 정원이라서 나무 관리를 자연에 맡기는 건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죽은 나무가 아니라 오죽(烏竹)입니다.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까마귀의 깃털처럼 검은 대나무라는 뜻이에요.”
그들은 오죽의 검은색과 까마귀 깃털의 색이 얼마나 닮았는지 열심히 토론을 시작했다.
지나가는 까마귀가 한 마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먼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 한여름에 겨울 철새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결국, 오죽의 학명을 알려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Phyllostachys nigra, 한국에서는 오죽, 검정대, 흑죽으로 불리지요.
영어 이름도 Black Bamboo예요.”
오죽했으면 영어 이름이 Black Bamboo이겠는가.
처음부터 영어 이름으로 설명했으면 더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자연을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이 건네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법도 조금씩 배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경험이 쌓인다.
댓글 3
브로콜리너역시님의 댓글
저도 중고등학교를 울산에서 나온 사람으로 태화강이라는 이름이 참 반갑습니다. 당시는 국가정원 뭐 이런건 아니었고, 친구들이랑 시내에서 만나면 강변애서도 종종 놀고 했었는데요. 98년에 대학가면서 울산을 떠나고, 부모님도 그무렵 이사를 가시고, 저는 직장생활중 미국으로 이사를 와 사는 바람에, 98년 이후론 한번도 가보질 못했네요. 제 기억도 많이 흐릿해졌고, 또 엄청 많이 변했겠지만,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싶습니다. 모교도 방문해보고싶고요.
crom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