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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이야기 - 2. 바람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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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2025.02.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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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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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바람결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걸음마다 스쳐가는 그 숨결을 느껴봤나요?

아니면, 달리는 자동차 창문 넘어 거칠게 스며 들어오는 숨결은 어떠셨나요?

저는 딱 이 중간 정도를 지향합니다.

너무 거칠지 않으면서도 사뿐 사뿐하지도 않은 어느 정도 강단이 있는 숨결을 말이지요.

어린 시절 처음 이런 바람결을 느껴 본적은 달리기 시합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달리기를 잘 하는 건 아니었고요.^^ 언제나 꼴찌는 따논 당상이었지요.

그래도, 달리는 건 참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걷을 때 느껴지는 미지근하고도 아쉬운 바람보다 조금 세고.

막무가대로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강풍보다는 조금 세기가 누그러진 느낌.

그래서, 한 동안은 달리기를 참 오래 했던 것 같네요.

그러던 중 어린 시절-아마도 국민학교 6학년쯤(웃음)-우연히 고물 자전거를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군데 군데 녹슨 체인은 온 힘을 다해야 겨우 움직였고, 손잡이 브레이크는 있는둥 마는둥인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처음 맞이한 이 친구 덕에 참 많은 곳을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울퉁불퉁, 아직 포장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골목길도 잘 달려주었습니다.

매끈하게 잘 빠진 아스팔트에서는 자동차 바로 옆에 매달려 가서 아저씨들에게 욕도 먹었고요.^^

언덕길 꼭대기에서 그대로 내려 꽂듯이 달릴때의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정말 온 몸이 자유롭게 바람 속에서 내달리는 느낌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들이 닥칠 때면 이제 잠시 그 상쾌한 바람결은 잊고 살게 됩니다.

대신, 매서운 따귀를 때리는듯한 찬바람이 온몸에 들이닥치지요.

이런 혹독한 겨울 바람은 흡사 매질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렇지만, 바람의 기운이 봄만 되면 한결 수그러듭니다. 매질도 따귀질도 힘이 부치나 봅니다.

그럴때 이제 슬쩍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자전거에 눈길을 줍니다.

튜브 바람도 쌩쌩하고, 체인도 아직은 제법 잘 돕니다.

이제는 고물 자전거가 아니라 제법 위세 좋게 폼나는 녀석이 새로운 동반자인데요.

부장님 체면에 이 정도는 타셔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 등살에 이 녀석을 맞이했네요.^^

작년 한해 참 이 새로운 녀석과 많이도 쏘다녔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처음 만난 그 고물 자전거 친구만큼의 감흥은 조금 부족한 듯해요.^^

이제는 언덕길 꼭대기에서 무모하게 달리지 못해서 일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이제는 바람 결을 느끼기에는 너무 커 버린 걸수도 있겠고요.

그래도 여전히 그 감각이 떠오릅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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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02.20 18:07
전에는 조금 무리인가 싶은 그런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묵직하고, 또 여간 쎄게, 또 빠르게 페달을 밟았으니.. 땀을 흘릴 정도였다.
이러다가는 견디지 못할꺼라고 신호를 보내듯 몸뚱아리를 흔들어대도,
휘청휘청 거리는 걸 어찌나 잘 잡아내던지,
결국 공손하게 그가 이끄는대로 공기를 가르며 내달릴 수 밖에.
언제까지나 함께 할 친구라고 여겼는데, 너무 정을 주었던 탓일까.
기름칠을 하고 체인을 바꾸고 하면 앞으로도 충분히 몇 년은 끄떡 없었는데.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나봐, 내가 녹이 좀 슬고, 낡고, 디자인이 촌스럽고..
이런 건 문제가 아니었나봐. 어느 날인가 번쩍 번쩍하는 새 친구를 대려왔더군.
그의 얼굴에 묻어나는 즐거움이, 행복함이.. 아, 이제 나는 잊혀지게 되는구나.
그래, 당연하지. 낡고, 점점 녹슬고, 그래.. 알아.
전에는 내가 힘들다고 몸을 흔들어 휘청거렸지만,
이제는 그가 잘 잡아줘도 어쩔 수 없이 휘청거리게 된다는 걸.
그래, 알아,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친구야, 고마워.
그 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레드엔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02.20 20:29
@벗님님에게 답글
자전거야.. .내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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