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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이야기 - 7.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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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2025.02.2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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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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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린 석준은 바쁘게 눈을 돌렸다. 눈을 따라 함께 돌던 목이 한 순간 뻣뻣해 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의자에 꽁꽁 묶인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드셨나요?”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가 석준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머리를 마음대로 돌릴 수 없으니, 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묶여 있는 그 뒤에 있을 것이다.

“누구야? 여긴 또 어디고?”

석준은 당장에라도 분노로 묶여 있는 줄을 풀려는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석준의 태도를 꽤 가볍게 생각하는 듯 했다.

“아실 필요 없어요. 그보다는 왜 여기에 오셨는지 모르시겠어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석준의 분노와 달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깊은 호수처럼 평정심이 가득했다. 그의 악다구니에도 상대는 가볍게 한 숨만을 내실 뿐 감정의 동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윤석준씨. 당신은 죄를 저질러서 여기에 온거에요.”

“죄라고? 무슨 죄? 생 사람 잡지마!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그래?”

상대가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석준은 바로 앞을 바라보며 크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빠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10년 전에 저지른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10년전?”

차갑게 변한 여성의 목소리에 석준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이렇게 납치되어서 묶인 이유를.

“그…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

“과연 그럴까요?”

추궁하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에 석준은 잠시 움찔했다. 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감싸는 동안 석준의 머리속은 1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그…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을거야. 나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구! 너… 너도 아마 그렇게 했을지 몰라!”

석준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처음 냈던 것과 달리 다소 의기 소침해 있었다. 두려움이 서린 음성은 자신이 들어봐도 꽤 불안정했다.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죄가 너무 많지 않나요?”

“동지를 배신한 거 말인가? 나… 나도 그때는 순사들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했다고! 여기 가슴팍 상처를 봐! 나도 놈들에게 송곳으로 두 번이나 찔리면서 참아 보려고 노력했어!”

다급해진 목소리로 항변을 했지만, 여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채였다. 그러다가 조금 힘이 빠진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랬었지요. 그래요, 그랬었지요. 그 뒤로 당신은 완전히 놈들의 앞잡이가 되었지요.”

“살려고 그랬어! 단지 그 뿐이야! 악!”

격한 통증이 그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찌릿한 뭔가가 그의 등을 꿰뚫듯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석준 자신이 지금 살아 있는지도 의심 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여진처럼 그의 뇌리에 남았다.

“그런것치고는 꽤 즐겁게 일하시지 않았나요?”

목소리가 바로 뒷통수에서부터 들려왔다. 아마도 뭔가로 찌르기 위해서 어느틈에 자신의 뒤에 가 있었으리라고 석준은 생각했다.

“이름을 판 동지들을 모두 기억하시나요?”

여자의 목소리가 재촉했지만, 석준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등의 격통이 시작되었다.

“왜요? 너무 많은 동지들을 팔아 넘겨서 기억하지 못할 정도인가요?”

가까스로 통증을 견디며 석준은 자신이 밀고한 전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고 그의 양심이 이들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의 그들의 얼굴은 모두 흐릿했고, 그의 기억은 조각난 채 남아 있다.

그들을 어떻게 밀고했는지도 드문 드문 기억 속에 떠오른채 물가에 던져진 깨진 도자기 파편처럼 그저 부유할 뿐이었다.

“아악!”

새롭게 양 손에 고통이 가해졌다. 순서는 있었지만,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찰나의 차이일 뿐.

가까스로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 틈엔가 여성이 그 앞에 와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방 안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남은 손의 감촉으로 추측하건데,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버린 대못처럼, 그의 손을 관통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 손으로 대체 얼마나 죽였습니까?”

이제 석준은 새롭게 새겨진 손의 아픔과 함께 공포감이 동시에 느꼈다. 이 여자는 반드시 자신을 죽일 거라는 걸. 그리고, 그 방식이 매우 잔인무도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답을 하세요.”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얼굴을 알아 볼 수는 없었다.

“아아악!”

손등과 손바닥끝이 동시에 타들어가는 듯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석준은 자신의 몸이 추위를 느끼는 것처럼 벌벌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백, 이십, 세 명이에요.”

여성은 또박 또박 강조하듯이 숫자를 읊었다. 석준은 자신이 그렇게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음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머리속에 이 숫자는 잡혀 있지 않았다.

“당신의 그 손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겁니다.”

“제기랄! 내가 알게 뭐야? 나는 그냥… 그저… 폭탄 스위치를 눌렀을 뿐인데! 거기에 너희들이 얼마나 들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석준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양심의 고백이 일으킨 발로였을까? 천만에! 그는 단지 자신이 겪고 있는 신체적인 고통에 울고 있을 뿐이었다.

“알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여성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다리쪽에 고통이 기습적으로 찾아왔다. 석준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을 느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말로가 어찌 될지 알고 있었고, 단지 그것만이 이 지난한 경험을 끝내줄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리로 찾아간 놈들에게 물어 볼 수도 있었잖아요? 거기에 당신이 아끼던 사람도 있었을 텐데요.”

여성의 마지막 말에 석준은 불현듯 그 시간을 되짚어 갔다. 깨져나간 기억이라는 도자기 파편이 다시 하나 하나 맞혀졌다. 그가 배신해야 했던 동지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그들과 함께 유인해 폭사 시켰던 자신의 애인이 무섭도록 선명하게 그의 기억속에서 되살아 났다. 조각난 기억이 다시금 하나로 모이자 그는 공포에 사로 잡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가! 당신이 어떻게!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는데!”

대답대신 나무 지팡이가 만들어 내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여성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지팡이를 짚어 대는 팔의 반대편은 거의 질질 끌리다 시피 달려 있었다.

석준은 회환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전 애인을 맞이했다. 세월과 고통의 흔적이 그녀의 얼굴과 몸을 얼마나 망가 트렸는지 그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느 틈에 건장한 청년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더러운 심장이 문제인겁니다.”

석준의 귀에 마지막으로 들려온 전 애인의 말이었다. 순간 그는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의 귀에 마지막으로 남은 건 자신의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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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02.28 15:58
*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을 구상하고 정리한 후, chatGPT에게 글을 맡긴 후 다듬어서 올려봅니다.

신체가 겪는 고통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킬 수 있다면,
이런 극단적인 강제 분리를 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윤석준은 그 생각을 가만히 곱씹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극한의 고통, 피가 응고되어 흐르지 않는 손끝과 뼈를 긁어대는 칼날 같은 감각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감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 상태는 고통스럽지 않다, 평상적이다.’
마치 최면에 걸리듯,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고 다짐했다.
몸뚱아리에서 전해져 오는 신경의 신호들을 모두 차단하는 것이다.

온몸을 기어오르는 불길한 열기, 그리고 그보다 더 불길한 조소.
‘아프지 않다, 고통스럽지 않다.’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처음엔 단순한 인상이었고, 다음 순간 미소였다.

그를 고문하던 이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지금 막 피범벅이 된 손바닥에 또 하나의 대못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묶인 채로 부자연스러운 흔들림을 만들었다.
피가 응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몸을 움직이자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는 그것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느끼지 않기로 했다.

그를 둘러싼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를 고문하던 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의도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윤석준은 문득 떠올렸다.
‘나는 이래서 살아남았던 건가. 나는 이런 인간이었나.’

생각은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가벼운 바람처럼 지나가야 했던 그 기억이, 마치 돌처럼 가슴 한구석에 남았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으나, 그 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그들이 분노하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미소가 그들에게는 모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고통을 인지하지 않았다.
정신이 육체를 부정하고, 기억이 감각을 집어삼켰다. 그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 폭발음.
그리고 공중으로 흩어진 살점들.

“네가 살아남았을 줄이야.”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흔들렸고, 오랜 원한이 맺힌 물빛이었다.


그녀의 다리는 힘없이 끌리며, 걸을 때마다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윤석준은 그 마찰음이 귓가를 할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육체의 고통은 차단했으나, 정신의 고통은 차단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그 손은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손이 아니었다.
전쟁이, 배신이, 시간과 상처가 만들어낸 다른 무언가였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감각이 없는 듯 움직였다.

“이 손으로 대체 얼마나 죽였어?”

그녀는 속삭였다. 속삭임은 칼날보다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그의 정신은 마치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면 찬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고, 그 모든 순간이 낯설었다.

그는 이 상황이,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누구인가.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나.

손가락이 그의 턱을 감쌌다.

“이제 끝내야겠어.”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그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고통을 느꼈다.
아니, 그때까지 무시했던 고통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는 숨을 삼켰다.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신경이 깨어났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는 그 증거가 두려웠다.

그녀가
그의 심장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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