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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이야기 - 1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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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2025.03.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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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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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해가 뜨겠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어스름한 산등성이의 모습을 보며, 반 교수는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미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교수님. 우리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요?”

미나의 질문의 교수는 천천히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은채 무표정한 상태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이제 곧 해가 뜰걸세.”

방금 전과 같은 말을 하면서 교수는 다시 창문을 응시했다. 미나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묵직한 방문과 반 교수를 번갈아 보며 가슴 앞에 손을 꼭 모았다.

어찌 보면 둘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무심한 듯 무표정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 않은가.

“교수님은 저 악마가 두렵지 않으신가요?”

두 손이 하얗게 되도록 힘을 주며 미나는 교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번에는 교수가 즉각적으로 답을 했다.

“무섭네. 지금까지 맞닥뜨린 그 어떤 괴물들보다도 무섭다네. 하지만, 놈은 악마가 아니야. 그저… 이전까지 내가 만난 다른 놈들보다 강한 또 다른 괴물일 뿐이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반 교수의 표정은 어딘가 신이 들린듯 잔뜩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바깥에서 점차 밝아오는 희미한 빛이 서린 다양한 회색선들의 연출로 그 기괴함은 한층 더 돋보였다.

“새벽인데… 도대체 해는… 태양은 언제 떠오르는 건가요? 이 밤이 과연 끝나기는 한 건가요?”

초조해진 미나는 거의 소리치듯이 반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는 그런 미나에게 대답 대신 창문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다.

산 너머에서 붉은 기운이 서서히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아! 드디어!”

미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 표정은 두려움이라는 거친 급류에 휩쓸려 버렸다.

“쿵! 쿵!”

커다란 방문이 당장이라도 부서져라 울렸다.

필시 놈일 것이다.

“내 뒤로 물러서 있게.”

반 교수는 미나를 자신의 뒤로 돌리며, 천둥처럼 울려대는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나는 조바심에 가득 찬 얼굴로 창문 밖의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붉은 기운은 제법 커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던 태양은 여전히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쿵! 쿵!”

이제 문은 거의 부서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빗장이 질러져 있었지만, 그것이 저 포악한 괴물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반 교수의 손이 코트 안 가슴께로 향했다. 미나는 그의 코트에 뭐가 있을지 알고 있었다. 지난 시간과 밤동안 산타클로스의 봇따리처럼 온갖 기기묘묘한 장비들이 그곳에서 샘물처럼 솟아 나왔고, 그럴때마다 눈 앞에 있던 괴물과 온갖 기괴한 적들이 여지없이 쓰러져갔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미나는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녀의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안의 원인이 이제 막 방안으로 들어섰다.

놈은 그다지 흥분되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댔던 게 만나 싶을 정도로.

“그래, 지금까지 버텨준 데에서는 당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하지.”

놈은 예의 바른 귀족처럼 나긋나긋한 말투로 미나와 반 교수에게 말하며 살짝 머리를 숙였다.

“인사는 고맙게 받겠소. 드라큐라 백작.”

침착한 반 교수의 목소리에 미나는 잠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그의 팔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보고 다시 공포에 사로잡혔다.

“교수님. 당신은 떨고 있군요. 오… 가엾어라. 당신의 심장은 지금 미친듯이 뛰고 있군요. 이 나와 대결하고 싶은 소원을 드디어 이루었으니 말이요.”

백자의 말에 미나는 재빨리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의 떨림은 절대 공포가 아니었다. 그는 거의 미친 사람 웃고 있었다. 더욱이 얼굴과 달리 그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미나로서는 교수 역시 반대편에 서 있는 괴물과 진배 없어 보였다.

악마같은 괴물과 인간같은 괴물이 서로를 마주보며, 이 만남을 기뻐하고 있는 모습은 이 어린 소녀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으리라.

악마같은 괴물이 선수를 쳤다.

그는 반 교수의 목을 재빨리 낚워 채 공중에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마치 교수형에 처한 사람처럼 반 교수는 캑캑 소리를 지르며 허공 속에서 손발을 버둥 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드라큐라의 얼굴은 꽤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그 여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교수의 손에 들려 있었던 또 하나의 이상한 물건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백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반 교수는 땅 바닥을 뒹글 수 밖에 없었지만, 교수형에서는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반 교수는 그대로 재빨리 일어나 그 탄력으로 드라큐라에게 달려 들었다. 두 사람. 아니 두 괴물이 바닥에서 서로 엉켜 뒹굴었다. 그 모습은 흡싸 자신의 영역을 두고 다투는 두 마리의 사자같은 형상이었다.

그 처절한 모습과 함께 미나는 얼굴을 가리며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채였다.

그때!

그녀의 얼굴에 작은 빛 줄기가 비추었다.

방금 전까지 미나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러나! 보아라!

저 찬란한 태양 빛을!

새벽을 가르며 떠오른 태양은 곧바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미나의 얼굴에 비추었던 작은 빛줄기는 어느새 점점 더 크게 넓어져 가더니, 거대한 단두대 칼날처럼 백작의 몸을 내리쳤다.

“으아아악!”

백작이 비명을 지르며 반 교수를 밀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밀쳐진 노교구의 몸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솟구쳤다 바닥에 떨어졌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불쾌하게 타는 냄새가 온 방안을 감돌았다. 연기 마저 미나의 눈을 멀게 만들려는 것처럼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백작의 형체였던 그 무언가는 점점 그 형태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최후에 반항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형체가 일어서려 했지만, 곧 반 교수에 의해 저지되었다.

교수는 은 말뚝을 백작의 가슴에 꽂아 넣고 그대로 주먹으로 한 번 더 그것을 내리쳤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백작의 것으로 추정되는 재의 흔적과 주인을 잃은 은말뚝 뿐이었다.

“교수님! 살았어요! 교수님!”

미나는 기쁨에 겨워 반 교수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교수는 그대로 손을 뻗어 미나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신호했다.

교수의 행동에 미나는 의아해 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교수의 목에는 두 개의 잇빨 작욱이 새겨져 있었다.

“미나… 가거라. 사람들에게 알려… 백작은 이제 죽었다고.”

핏발이 선 눈을 한채 교수는 거친 숨을 쉬며 말했다. 미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그러나, 방문 밖까지 갈 동안 그녀의 눈은 반 교수를 계속 좇고 있었다.

“미나… 내 일은 여기서 이제 끝이란다. 가거라, 아가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반교수는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그 창에서 뛰어 내렸다.

그것이 미나가 마지막으로 본 반 교수의 모습이었다.


....

새벽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그 희망의 빛을 기다리며 꿎꿎히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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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03.10 10:12
영웅의 서사, 그 마지막 마침표는 시대와 배경,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의 길로 정리되곤 합니다.
영웅의 죽음. 그 안타까운 결론으로 그가 마침내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사람들에게 오랜 동안 회자가 되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처음은 한 결 같았으나,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나면
뜻하고자 하는 바로 모두 뜻하고 나면
'또 다른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게 아닐까,
'또 다른 사명'을 찾으려 하는 게 아닐까.

혹은, 모든 것을 다 이루어버린, 이제는 무엇도 그의 흥미를 끌지 않게 되어버린
희노애락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 세상과 삶이 시시해져버린
그렇게 흑화되어버리는 예전의 영웅, 인상부터 뒤틀려버린 일그러진 영웅.
이런 결론들을 참 많이 접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런 참혹한 결론에 이르르기 전에, 그가 떠나는 것,
미완의 어느 상태에서 멈추는 것을 안타깝지만 바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음에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운명'이었을까..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레드엔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03.10 10:19
@벗님님에게 답글 좋은 해석과 격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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