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앙 커뮤니티 운영 규칙을 확인하세요.
X

14가지 이야기 - 14. 거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2025.03.12 17:48
분류 글쓰기
63 조회
0 추천

본문


가끔 사진 속의 나를 보면 타인을 보는 것 같은 낯설음을 느낀다.

기억도 하기 어려운 어린 아기 시절의 나는 언제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그 웃음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에 막 나왔을 때의 너는 아마도 모든 것이 다 선하고 행복하게 보였나 보다.

언젠거 본 사진 속에 있던 커다란 개의 입에 손을 넣던 너의 천진난만함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기만 하다.

유치원생이었던 시절의 사진들 속에는 가끔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린 모습들이 눈에 띈다. 이제 슬슬 미운 일곱살, 사고치는 어린악마의 모습을 갖추던 시절이었을까?

그럼에도 사진의 속의 너는 이제 막 친구들을 사귀는게 즐거운지 어느새 슬그머니 다시 미소를 띄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의 사진속의 내 모습은 이제 좀 남자답게 굴려는지 굳은 표정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렇지만, 굴욕적이게도(물론 주변 사람들은 즐거웠겠지만) 무슨 행사인지 모를 장소에서 여자 아이들과 같이 한복 치마를 입고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도 들어 있다.

당시의 너는 아마도 꽤 투덜 투덜 되었으리라. 바로 옆에 앉았던 짝에게 조금이라도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테니.

짧게 자른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중학생 교복을 입은 내 모습에 이르러서야, 이 낯설음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한다.

선생과 친구들, 선배들에게 불만을 품은 양볼이 항상 크게 부풀어 있었다.

중학생이 너는 반에서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한창 우쭐해 있었으리라. 그런 너에게 어른들의 말은 귀찮은 잔소리처럼 매사 들렸을 거라고 본다.

고등학생 시절의 사진에는 왠 애늙은이가 하나 틀어 박혀 있었다. 어지간히 세상에 염세적이었던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안경테는 여전히 묵직한 뿔테였지만, 왠지 모르게 튀어 보이는 빨간색을 보건데, 너도 사실은 또래 아이들과 같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대학교 시절의 MT 사진을 보았다. 허리까지 길게 길은 머리을 제법 단정하게 묶어서 늘어 트린게, 잔뜩 멋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 잘 보인다. 이제 안경테는 가볍고 얇게 변해서, 너의 그 하얀 얼굴에 걸쳐져 있는 듯하다.

스무살 사진 속 여자는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좋지 않은 일로 헤어졌다는 것만 기억에 남긴채.

사진 속의 너는 옆에 비스듬히 기댄 여자 아이에게 홀딱 반한게 역력했다. 그렇지만, 서로 헤어질 때는 꽤나 매몰차게 대하게 된다는 걸 그 아이는 아마 몰랐겠지.

서른하고 셋, 넷에 찍은 친구 결혼식 들러리 속의 사진도 보인다.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가정에 속박되고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게 한 창 두려웠을 너였다.

이제 거울을 본다.

제법 주름이 내려 앉은 얼굴의 남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가자미 눈을 하고 이리 저리 오만하게 눈을 굴렸던 중고등학생들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 동안 내 모습을 가졌던 나는 과연 누구였을까?

아마도 이 물음은 다음 번에도 계속 되리라.

그럼에도 나는, 너는 계속 물을 것이다.

진짜 나는, 너는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0추천인 목록보기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03.13 10:07
마주할 때마다 그렇게 변해가더구나.
너의 모습과 태도,
자신과 타인,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더 깊게, 더 넓게 나아가던 너.
거울 속의 너는 그렇게 성장하고, 차츰 어른이라는 옷을 입고 있더구나.

어느 날 문득 마주한 거울에서
어린 시절의 아이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그토록 뵙고 싶은 그분의 젊은 나날을 보던 날, 눈물이 흘렀단다.
자식은 부모는 닮는다고 하던가.
성큼 준비되지 않는 채 아버지로 옷을 갈아 입고 있는 나,
아이가 되어 한 없이 그렇게 아버지 품에 앉기고 싶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