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학교 답사 후기 - 6(남영동 대공분실 1)
아기고양이

Lv.1 아기고양이 (14.♡.156.50)

2026년 5월 22일 AM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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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학교 답사 후기 - 5(제주도민들을 지키려했던 참 군인 문상길, 손선호 사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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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학교 답사의 마지막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습니다.

5월 16일 토요일에 남영동에 다녀왔는데 글쎄 5월 18일에 멸콩놈들이 탱크 어쩌고에 '책상을 탁 치니'란 표현까지 써서 사람을 분노케 하네요. 하아...

암튼 이 답사는 4.3학교였잖아요. 4.3과 남영동 대공분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문상길, 손선호 사형 집행터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하는 버스에서 김학규 선생님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은 처음에는 뉴스에도 보도되지 않다가 공안부장검사 최환의 노력으로 부검을 하고,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것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주검을 처음 목격한 중앙대병원 의사 오연상이 밝힌 것이 보도되면서 경찰 2명이 구속됩니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과정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는데, 경찰 5명이 한 짓이라고 하면 조직적이고 일상적인 일로 보일까봐 경찰 2명이 한 짓이라고 축소은폐하다가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이 사건의 은폐 조작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폭로되면서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박종철 열사는 1월에 돌아가셨는데 잊혀질 뻔 했다가 진실이 밝혀지는 그 과정도 전시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47년 제주에서 있었던 3.1발포사건으로 사람들의 항의가 커지는데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하면서 3.1절 집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을 4.3봉기 전까지 몇천명을 잡아갔는데, 1948년 3월 4일에 김용철이라는 조천중학원 2년생(21세) 학생이 3.1사건으로 수배중에 경찰에 체포되었고 3월 6일 조천지서에서 거꾸로 매달린채 곤봉으로 매질을 당하다 고문사 당했습니다.

경찰은 축소은폐를 시도했지만 제주 출신 의사 장시영이 맡은 두 차례 부검을 통해 '외부 타격에 의한 뇌출혈'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용철의 고문사와 축소은폐 시도, 부검을 통해 사실이 밝혀진 것...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 같지 않습니까? 바로 위에 언급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유사합니다.

양은하(27세)는 대정면의 청년이었는데 포고령 위반으로 구금 중 3월 14일 모슬포지서에서 머리채가 천장에 매달린 채 고문을 당하다 숨졌습니다.

박행구(22세)는 한림면 금릉리 청년이었는데 서북청년단과 경찰에 연행되어 집단구타를 당한 뒤 3월 29일(추정) 초주검 상태에서 즉결처형 총살을 당합니다.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지서 뒷마당에 시신을 묻으려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들이 대중의 분노를 사고, 항쟁에 이르도록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4.3 이전에 이미 남로당 제주도당의 19명이 모였던 중에 12명이 동의하여 봉기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7명은 무장봉기로 더 고립될 것을 걱정했다고 하는데, 김달삼을 비롯한 소장파 세력들이 무장봉기를 결정했다고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6개월~1년 정도를 예상했었다고 하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전개됐다고 하구요.

여기까지 버스에서 듣고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했습니다.

제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처음 가본 것은 2012년이었는데요.

그때는 이렇게 상설로 전시를 볼 수 있게 되어있지 않고, 경찰청 인권센터라고 경찰이 관리를 해서 제한적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단체 답사로 갔었고, 그 때도 김학규 이사님(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이사님이시기도 해요. 박종철 열사와 대학 동기이자 민주화운동 동지셨다고 해요.)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갔었고, 이곳에서의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일부 참여했었는데 자원활동 안 한 지 오래라 까먹은 것도 많았고, 내부에 전시자료가 많아져서 좋았지만, 원형을 많이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김학규 이사님 페이스북에서 보고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니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재오 민주화기념사업회장 물러나라고 릴레이 1인 시위를 했었는데 한 번이라도 갈 걸 그랬다고 후회했구요.;;; (활동하시는 분들의 단톡에서 묵언수행중이라 못 갔습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에그머니나 왼쪽에 무슨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고, 레일이 사라지고 철문도 활짝 열려 개방돼있으니... 이게 뭔가 싶더라구요.

최대한 원형이 보존되길 바라는 게 제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분들이 고문 피해를 당하셨던 곳인데, 왜 굳이 여기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라고 지으면서 원형을 많이 훼손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1702

이미 2019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결국 많이 훼손이 된 건가봐요. ㅠㅠ

문 뿐만 아니라 옆과 뒤쪽 벽도 많이 허물어서 그냥 흔한 기념관처럼 만들어버려서... 많이 언짢았어요. ㅠㅠ

그래서 예전 모습을 찍어둔 게 있는지 외장하드까지 뒤져봤습니다.;; 후기 작성하면서 하나씩 보여드릴게요.

기념관 내부가 아주 넓지는 않아서 40명 가량이 한꺼번에 해설을 같이 들을 수는 없어서 팀을 나눠서 들어야했고, 김학규 이사님의 해설을 여러번 들은 저는 다른 분들께 양보하는 마음으로? 도슨트분의 해설을 들었습니다.

도슨트분께서 해설 과정 중에 영화 '1987'을 여러번 언급하셨는데, 혹시 안 보신 분이 계시거나, 자녀분께 우리 현대사에 대해 알려주시고 싶으신 부모님들은 영화 '1987'을 같이 보시는 게 이해를 돕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작년에 재개관 후에 다녀오신 앙님께서 사용기에 후기를 올려주신 적이 있었어요.

https://damoang.net/tutorial/14986

이것도 같이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을 주셔서 홍성담 화백의 전시를 잠깐 보고 올라갔는데요. 그건 따로 올렸으니 참고해주세요.

https://damoang.net/free/6311979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름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라는 이름으로 간첩수사를 하던 곳이었는데요.

5,60년대에는 남북간의 긴장이 최고조여서 실제 간첩이 많았고 7,80년대에는 실제 간첩의 수는 훨씬 줄어들게 되지만 1976년에 이 건물이 지어지고, 더 줄어드는 1983년에 2개층이 증축이 됩니다. 그래서 현재 7층 건물의 모습을 볼 수 있구요.

실제 간첩이 줄어드는데 대공수사의 규모는 커졌다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민주화운동가들과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조사하는 일이 이어졌던 것이고, 조사실은 2000년대 초반까지 쓰였고, 2005년에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다가 가해자인 경찰이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어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리모델링을 거쳐 작년에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됩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연혁을 보니... 리영희 선생이 이곳에서의 최초 고문피해자셨군요.

5층에 보이는 좁고 긴 수직창이 건축가 김수근의 시그니처이긴 한데, 5층 전부에 저런 창이 들어간 것은 목적이 있었고, 보안이 필수였던 것은 5층에 조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긴 건물 내외관만 볼 것이 아니라, 철문이랑 담벼락부터 보고 들어가야하는데요.

저 철문이 워낙 육중해서 레일이 깔려있었고 움직이면 막 탱크 소리처럼 엄청 큰 소리가 나거든요.

근데 레일을 없애고 저렇게 고정시켜놓고는 소리만 재생해주더라구요.

이유도 모른 채 눈은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연행된 분들이 이 곳에 끌려오면서 이 소리를 들으면 탱크 소리인 줄 알고 군부대에 끌려갔나? 하며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게 2014년에 찍어온 사진인데요. 오른쪽에 상자 속에 레일이 보이시죠? 저걸 없애버렸더라구요.

철문을 고정시켜놓는 것까지는 좋은데 레일은 왜 없앴을까요...

그리고 철문 왼쪽 담장을 보시고 아래 사진을 보시면 담을 허물어놓은 걸 보실 수 있어요.

2014년에 찍어온 사진에서 보이는 담 사진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80년대까지 구치소로 쓰였던데다 거길 허물고 공원을 만들려다가 무산 되어 건물들이 많이 헐렸따가 1930년대 모습으로 계속 복원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여긴 몇해전까지 외관은 원형이 많이 보존되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영화 1987에서도 당시 모습이 잘 보이더라구요.)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왜 굳이 여기에 지으면서 대공분실로 가장 유명하고 남아있는 곳을 훼손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언짢은 기분으로 해설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1987에서도 잠깐씩 비춰지지만, 이 곳은 당시에 부국 해양연구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고, 담이 높게 쳐져있었기에 뒤에 있던 건물(당시 롯데제과)에서 근무하시던 분들도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경찰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일반 회사처럼 과장님, 부장님 하고 불렀다고 하구요.

그런데 해설을 듣고 있는데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와서 이건 또 왜 나오나 싶어서...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좀 여쭤봐야할 것 같아요. 일부러 80년대 노래를 틀어주는 건가 해서요.

뒷 건물과의 사이에 있는 담입니다.

뒤쪽에서도 김수근의 좁고 긴 창이 여러개 보이죠. 뒷건물과 마주한 면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연행된 분들은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끌려들어가셨었는데, 이 문도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문이 안쪽에 숨겨져있다고 해야할까요. 이것 역시 보안을 위해서 이렇게 지었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문을 통과하면 1층에서 5층 조사실로 곧장 이어지는 철제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나옵니다.

2012년에 갔을 때는 직접 걸어올라가볼 수 있었는데요, 철제 계단을 밟으면 소리도 크게 울리는데다 저렇게 만든 것은 눈을 가린 채 끌려가면 몇 층으로 가는지 가늠을 할 수 없고 공포심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피해자들이 그래서 '7층으로 갔다.', '8층으로 갔다.' 라며 몇층으로 갔는지에 대해 다 다르게 얘기하고 심지어 지하로 내려갔다고 얘기하기도 할 정도로 가늠을 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계단이 좁아서 사람을 끌고 올라가기 힘들어서 아래의 엘리베이터도 이용했었다고 하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1층과 5층에서만 섰다고 합니다.

사진에 초점이 나갔는데 김근태 의원도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왼쪽에 있는 공간에서부터 전시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 전시물이 더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빠르게 지나가서 찍어오질 못 했습니다.

이건 1층 정문 로비쪽에 있는 기둥인데요.

헌법이 저러하면 뭐하겠어요. 경찰이 법을 더 안 지키고 불법 감금에 고문 수사를 했는걸요. 에휴

검찰도 판사도 그 현실을 다 외면해서... 조작간첩사건은 계속 만들어졌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납북어부와 재일동포들중에 조작간첩 피해자분들이 많았는데, 4.3 이후 일본으로 가셨던 분들이 고국에 돌아오셨다가 조작간첩 피해를 입은 분들도 계셨다고 합니다.

여기는 2층인데요.

조작간첩사건의 사례를 터치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돼있었어요.

수 많은 조작간첩사건 중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으셨거나 재심 중에 있는 사건 180여건에 관한 자료들을 책장에서 꺼내서 볼 수도 있구요.

50년대 3건, 60년대 18건, 70년대 75건, 80년대 82건으로 조작간첩 사건 사례가 점점 늘었다는 기록도 터치 스크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곗바늘 앞에 못이 박혀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시계인데요.

고문피해자들의 시간이 멈춰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트라우마나 아픔, 고통이 깊고 크게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영상, 피해자분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 또 안 찍어왔네요.;;)

피해자분들께 12.3 계엄때 어떠셨냐고 여쭤보니 한 분이 대답하시길 베란다에 계셨다고, 경찰들이 또 잡으러 오는지 보려고 베란다에서 지켜보고 계셨고, 가족과 지인들까지 잡혀가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를 느끼셨다고 합니다. ㅠㅠ

아무리 민주화가 됐고,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도 평생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하네요. ㅠㅠ

또 글이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 끊고 3층부터는 다음 후기에서 내용 더 적겠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8)

  • Rider_man

    Rider_man Lv.1

    05.22 · 180.♡.225.117

    아침 출근길 매일 남영역을 지나다 대공분실을 봅니다. 볼때마다 인간이 만든 그 끔찍한 창틀을 보죠. 볼때마다 속으로 그 안에서 희생된 분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시작된다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이런 답사가 학교 정규과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Rider_man 작성자

    05.22 · 14.♡.156.50

    네, 이런 답사가 꼭 학교 정규과정에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놈들 헛소리 좀 못하게 어릴 때부터 제대로 교육 시키면 좋겠는데 고문 장면이 묘사되는 공간에는 초등학생은 못 들어가게 하시더라구요. 넘 잔인했어서 나이 제한이 이해되긴 해요. 에휴...

  • 홀리지저스

    홀리지저스 Lv.1

    05.22 · 121.♡.147.178

    수없이 많은 민주시민들이 이 공간에서 고문을 받다 죽어갔군요.

    차가운 새벽에 계엄을 막아선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모앙 회원들이

    한예종에 설치된 고문실에서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네요.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홀리지저스 작성자

    05.22 · 14.♡.156.50

    제가 저 공간에 몇 번 다녀온 기억 때문에 잡혀서 고문 당할 것이 무서워서 계엄 때 여의도에 못 갔습니다. ㅠㅠ

    두려움을 이겨내고 죽음도 각오하고 계엄 때 여의도에 가주신 많은 분들께 새삼 다시 또 감사드립니다. ㅠㅠ

  • Lv.1

    05.22

    삭제된 댓글입니다.
  • Lv.1

    05.22

    삭제된 댓글입니다.
  • cleasi

    cleasi Lv.1

    05.22 · 182.♡.97.137

    작년에 6.10 기념식은 대선 직후라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통령 대신 참석했었죠. 장소는 다녀오신 그 곳이구요 . 올해는 대통령께서 참석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5.18도 그렇고 6.10도 그렇고 고 이해찬 총리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기려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cleasi 작성자

    05.22 · 14.♡.156.50

    이번 6.10은 6.10만세운동 100주년과 겹쳐서 아마 대통령께서 그쪽으로 가실 지도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고 했거든요.

    하필 날짜가 겹쳐서 좀 그렇네요.;;

    내년은 6.10항쟁 40주년이니 꼭 참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blowtorch

    blowtorch Lv.1

    05.22 · 59.♡.125.144

    저게 말로만 듣던 남영동 계단이네요.

    엘리베이터는 특정층에만 섰기 때문에 끌려온 사람은

    자신이 건물의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는 얘길 들었어요.

    400명 가까운 사람이 잡혀와서 고문과 수사를 받았던 현장이죠.

    여기서 수사 받고 사형이 집행됬거나 이미 심신이 붕괴상태를

    넘어서서 수형생활을 감당 못하고 자살한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의 존속을 위해 숱한 이들의 인생과 가족을 망가뜨린 현장이죠.

    '남영동 분실을 설계했던 원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건물 용도를

    몰랐을 거다'라고 두둔하는 분들이 건축계에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모를리가요.

    사진만 봐도 건물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가 눈에 띄는 걸요.

    고인은 '공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귀한 기행기 글입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emo:damoang-emo-007.gif}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blowtorch 작성자

    05.22 · 14.♡.156.50

    네, 김수근의 제자들이 두둔한다고 들었는데요. 저도 몰랐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280900001#ENT 혹시 이 기사를 보셨을까요?

    이 기사에 등장하는 안창모 교수님께도 이 공간에 대한 해설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절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용도에 맞게 아주 꼼꼼하게 잘 지어진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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