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14.♡.156.50)
2026년 5월 23일 PM 12:09
4.3학교 답사 후기 - 1(서울 현충원 베트남참전 장병묘역, 4.3관련 인물 간략한 소개)
https://damoang.net/free/6283325
4.3학교 답사 후기 - 2(서울 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가짜 독립운동가들, '일송정은 죄가 없다.')
https://damoang.net/free/6284991
4.3학교 답사 후기 - 3(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 1묘역, 장군 1묘역)
https://damoang.net/free/6286375
4.3학교 답사 후기 - 4(서울 현충원 장군 1묘역 묘비에서 볼 수 있는 역사왜곡, 김대중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묘소, 이승만 묘소)
https://damoang.net/free/6292225
4.3학교 답사 후기 - 5(제주도민들을 지키려했던 참 군인 문상길, 손선호 사형터)
https://damoang.net/free/6292305
4.3학교 답사 후기 - 6(남영동 대공분실 1)
https://damoang.net/free/6312822
4.3학교 답사 후기 - 7(남영동 대공분실 2)
https://damoang.net/free/6318970
일주일간 써온 위의 후기에 이어 마지막 후기입니다.
6편에서 잠깐 언급된 대로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민주화운동를 하던 분들 말고도 여러 조작간첩 피해자분들이 끌려오셔서 고문을 당하셨는데요. 오늘 후기에서는 그 분들에 대한 자료와 기사와 영상 등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박종철 열사에 관한 전시실의 반대편에 다른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자료가 있었고, 제주 출신 피해자분에 대한 설명만 간략하게 들었습니다.
저도 성함과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알고 있었던 강광보 할아버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주 출신으로 큰어머니의 형제분들이 4.3사건으로 희생되었다고 하구요. 4.3 이후에 큰아버지 내외분이 일본으로 가셨었고 강광보 선생님도 20대가 되어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셨고, 큰아버지와 생활을 하다가 불법체류가 적발되어 일본에서 꾸린 가족들과 함께 귀국했는데 입국하자마자 연행되어 3일간 폭행을 당하고 풀려났다가, 한달 뒤에 경찰이 찾아와서 다시 데려가서 한두달 가량 고문과 취조를 당하다 풀려났는데 그 이유는 박정희가 사망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때부터 몇년간 감시를 당하다가 7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군인이 들이닥쳐서 그동안과 차원이 다른 모진 고문 끝에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리고 2009년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동료분(제주 출신)의 소식을 접했으나 이명박근혜 정권 때라 2017년 재심을 신청하여 무죄를 받으시고 제주에 수상한 집이라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하셨고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하셨는데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찾아보다보니 이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손녀가 할아버지의 재심을 도왔다는 기사도 있는 걸 보니 뜻깊은 일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2206
'수상한집' 다녀간 손녀가 45년만에 받아낸 '할아버지 무죄'
안기부 고문 당한 박아무개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선고 결과... 부산고법 "원심파기, 무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좀 가볼 걸 그랬습니다.;;
관련 기사와 영상을 찾아보다보니 조작 간첩들 중에 제주 출신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출처 : https://www.ziksir.com/news/articleView.html?idxno=8397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중 제주 출신이 많은 이유
전체 조작간첩사건 피해자 중에 무려 30%가 제주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관련 영상도 하나 더 가져옵니다.
조작간첩사건에 대해 나름 관심이 있긴 했는데(관련 단체 꾸리셨던 분과 아는 사이이고, 진화위에서 일했던 친구에게 많이 듣고 관련 행사에도 몇 번 같이 갔어서요.) 제주 출신 피해자분들이 유독 더 많았고 이것이 4.3의 후유증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위의 영상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캡쳐한 것인데요.
그동안 너무 몰랐던 게 많았어서 부끄럽고 아쉽고,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다보니 재일동포 조작간첩에 대한 다큐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고국의 대학으로 유학온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수많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는데요.
다들 좋은 학교 다니시고 앞길이 창창한 청춘들이었는데 고국이라는 곳에서 젊은이들의 인생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되고, 이 분들이 얼마나 절망적이셨을지... 가늠도 다 되지 않았는데요.
일본인 활동가들, 동료, 학교 동문들이 오히려 연대해주었고, 옥바라지 하느라 여러차례 한국과 일본을 오가셨다는 얘기, 크나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셨던 분들의 인터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분의 가족들이 어떤 심정이신지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아직까지 한국을 무서운 나라라고, 재심에 대해 말도 못 꺼내게 하셨던 분도 계시다고 하구요.

돌아가신 남편분의 재심을 신청하신 아내분께서, 남편분을 죄 없는 영혼으로 저 세상으로 보내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에 찍어온 자료로 돌아가겠습니다.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분에 대한 자료입니다.

납북 어부 조작간첩 피해자 분에 대한 자료입니다.

남민전 사건의 피해자였고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신 분에 대한 자료입니다.
남민전 사건이 뭔가 하고 찾아보고 있는데 관련 인물이 많군요. 김남주 시인이 이 일로 옥고를 치렀고,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프랑스 망명을 했다고 하네요.

학림사건 피해자분이시라는데 이것도 몰라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노동운동을 하셨던 분이시구요.

최종길 교수에 대한 자료입니다.
서울대 법대 교수셨고 동생분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보부에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셨다가 의문사를 당한 분이십니다.
꼬꼬무에서도 다뤘었네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600.html
아, 그들은 진실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단다.
위의 기사에서 보니 한 고문 가해자는 천지신명과 어머니의 양심까지 걸고 거짓말도 참 잘 하고 무척 뻔뻔하며 도무지 반성을 모르는군요.
최교수의 마지막 순간에 있었던 중정 직원은 진실을 듣고자 찾아간 조사관을 주거침입으로 신고하고 진실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참... 귀신은 뭐하고 있나 모르겠어요. 에휴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의 얘기를 듣고 있나봅니다.


여기는 시간이 없어서 더 못 보고 지나쳐왔는데요.
무서운 것은 특별히 뭐 어떻게, 어, 정신적으로 왜곡돼서 그런 뭐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보면 평범한 그런 사람들, 그 사람이 나한테 했던 그런 고문이나 이런 걸 생각을 하면, 그게 더 섬뜩하고 무서웠던 것 같아요.
박문식/1981년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학림사건)/당시 만 23세
초점이 나가서 어른거려서 옮겨적었습니다.
이제 5층 조사실로 올라갑니다.

이 패널에 설명이 다 적혀있는데요.
각 장치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탈출을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게 저렇게 문들을 똑같이 만들기도 했고, 각 호실별로 문이 마주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문이 열려있어도 밖에 보이는 것이 없고 다른 호실에서 고문당하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문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니 일가족을 데려다가 다른 호실에서 고문 당하는 소리를 듣도록 했었다고 하네요. 다큐에서도 보니 가족에 대해 언급하면서 협박을 많이 했었다던데 예전에 고문하던 놈들이 하던 짓을 얼마전에는 검찰도 할 정도로... 참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이걸 뭐라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조사실 내부 감시장치(카메라)와 흡음판도 보이구요.
흡음판으로 소리를 막아 공포를 극대화했다고 합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외시경이 문에 있었구요.

각 호실에 있던 창문은 길고 좁은 이중창으로 만들어져있어서 해가 잘 들지 않았는데 조도를 조정하는 것이 복도에 부착돼있었습니다.

문에 잠금 장치가 없구요.

몇층인지 모르도록 9호라고만 적혀있구요.

조명에도 철망을 씌워놓았는데 혹시라도 고문을 받던 사람들이 조명을 깨고 사고를 칠까봐 그랬다는군요.
마이크 선도 2022년에 구조보강공사를 위해 천장을 뜯었다가 발견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애프터서비스가 되는 소니의 제품이라고, 당시 최신식 장비였을 거라고 하셨구요.
책상과 의자도 모두 고정돼있었는데 자해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랬다는군요.
현재 다른 호실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서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으시던 곳 509호실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유리로 막혀있지만 2014년에는 509실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안창모 교수님 해설을 들었을 때 욕조에 대한 설명도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70~80년대에 욕조가 있는 집 자체가 참 귀했는데 여긴 그 귀한 욕조를 갖다놨고, 이렇게 테두리 마감까지 참 꼼꼼하게 했다고 설명해주셔서 사진을 찍어뒀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까이서 찍었던 사진이라고 기껏 찾았더니 화질이 참 그렇군요.;;
509호실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짧게 묵념을 하고 515호실, 더 넓은 방으로 이동했는데요.
조사실 두 개(514, 515호)를 터서 규모가 더 큰 곳으로, 민청련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이 1985년에 고문을 당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난 후기에서 언급됐던 칠성판 위에서 고문을 당하셨다고 하구요.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한 분이 김근태 전 의원이라고 하고, 며칠간 몇회에 걸쳐 고문을 당했는지를 상세히 기억해서 진술하셨다고 합니다. 경찰관들의 손목 시계를 보고 몇시간동안 고문을 당했구나... 하고 아셨다고 하구요. 법정에 가서도 피딱지 하나라도 증거로 제출하려고 노력하셨다고 하네요.
23일간의 고문 중에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이 계속 됐던 것은, 자백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짓밟고 여기서 있었던 일을 밖에 발설하지 못하게, 다시는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신 분들이 계셨고, 재심을 청구하신 분들도 몇십년간 묻어뒀던 고통을 다시 꺼내어 마주하고 투쟁하셔야했지만, 이 분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에 맞서 투쟁하고 저항한 분들로 기억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4.3, 5.18이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와 노력, 눈물이 있었는데, 재심으로 무죄판결 받으신 분들이 무죄라는 법적 선언 외에는 국가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트라우마 치료 지원도 받지 못했는데 이분들께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대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인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해설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혹시 민주화운동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보실 분들을 위해서 관람 안내 페이지 내용을 퍼옵니다.

매일 11시와 14시에 사전예약자가 해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고 하구요.
현장에서 예약을 하셔도 되고, 아래 링크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셔도 됩니다.
https://www.kdemo.or.kr/exhibit/visitReservation.do
무려 8편까지 이어지는 4.3학교 답사 후기를 일주일간 작성했는데요.
답사를 통해 배운 것도 많았지만 후기를 작성하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이 이 후기를 통해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돌아보고, 국가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던 엄혹한 시절에 맞서 싸우셨던 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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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르르
05.23 · 49.♡.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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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 구르르 작성자
05.23 · 223.♡.84.30
네, 저도 모르건 걸 많이 배운 답사였고 후기 작성하면서도 많이 배웠어요.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내용이 방대하고 많아서 처음글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읽고 있습니다. 잘 모르고 살던 것들이 많아서 큰 공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