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eyaArborm (119.♡.150.64)
2026년 4월 19일 PM 10:05
*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04.26)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첫 편지 :
https://damoang.net/writing/4592
두 번째 :
https://damoang.net/writing/4613
세 번째 :
https://damoang.net/writing/4616
네 번째 :
https://damoang.net/writing/4648
다섯 번째 :
https://damoang.net/writing/4675
여섯 번째 :
https://damoang.net/writing/4695
등장인물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강현주 사무국장 : 40대 중반의 여성. 우리가족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경숙이 그린아크 공동체운영위원회와 갈등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방귀남) 여종민 : 50대 초반의 남성. 초동 인근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람이 없을 때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 모양이다.
<착한 사람과 착한 사람이 대립한 이야기>
요 며칠 생각이 많았습니다. 방귀남 여종민씨 때문이에요. 산책 때 방귀 뿡뿡 끼고, 동네 카페에서 바리스타 하는 아저씨....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종민씨가 일하는 카페에 파우치랑 지갑 두고 와서 찾으러 갔잖아요. 마침 카페가 한가했고, 종민씨가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해서 “그래요....”하고 떨떠름하게 마주 앉았다가 글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Q선생님한테 보내는 편지 얘기를 한참하고 있지 뭐요? 대화의 쿵짝이 너무 잘 맞았나봅니다. 처음에는 종민씨가 산책 때 방귀로 저를 당황시킨 일에 대해 사과했어요. 그 다음에 세라초코 얘기로 넘어갔다가, 적재적소에 질문과 리액션이 오는 바람에 별의별 얘기를 다해버린 것이지요..
‘망할 주책바가지 여편네 같으니라고...!’
제 자신을 탓하는 소립니다. 아마 가만 놔뒀으면 그 동안 살아온 얘기 다 하고, 계좌번호나 카드번호도 알려줬을지 모르죠. 아아,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 탓입니다. 종민씨가 먼저 뭘 알려달라고 조른 건 아니라서요....
이 동네로 이사와 살아온 스토리를 꽤 풀었을 무렵에 종민씨가 자긴 정말 재밌는데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낱낱이 써서 Q선생님께 보낼 거냐고 묻는 거예요. 순간 골이 띵했어요. 선생님이 수업 때 알려주셨던 ‘이야기란 무엇인가?’ 강의가 머리를 스쳤어요.
나 좋자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풀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재밌지만, 읽는 선생님은 지루하지 않을까?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어느 정도 감이 오고 있으니까요. 여하튼 종민씨의 그 질문 때문에 선생님께 보냈던 편지를 읽고 또 읽었고, 앞으로 하려고 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 근데 여종민씨가 제 경험담을 삼국지에 비유하더라고요. 욕망과 권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슷하다고요. 저도 삼국지를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전형성이 극대화된 간결한 인물 묘사’와 ‘사건으로 직진하는 스토리’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물론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저는 일상에서 파도치는 감정이 더 소중하니까요.
그러면서 다시 생각했어요. 애초 우리가 보이스톡으로 근황을 나누다가, 편지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요. Q선생님은 호기심의 분야가 넓은 분이고 참을성도 좋으셔서 저의 이 아파트 살이 경험을 기분 좋게 읽어주고 계시죠. 저는 어쩌면 선생님의 선의에 기대서 재미없는 이야기, 사실은 기분이 더러운 경험, 불쾌한 인간들에 대해 주절거리는 것일지도 몰라요.
편지가 길어지고 핵심에서 벗어나며 아직도 본격적인 그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지 않은 건, 배경지식을 선생님께 설명해 드려야 한다는 ‘당위’를 씌운 제 양심의 주저함일지도 모릅니다. 기특하게도 제가 혼자 여기까지 온 건 아니고요, 비슷한 이야기를 종민씨가 했어요.
“그냥 시원하게 욕하고 싶은데, 그러면 찔리니까 빙빙 돌리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
종민씨가 그 말을 했을 땐,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뱃속이 화끈거렸어요. 그치만 표정은 냉정하게, 아니 무표정하게 유지했죠. 숨겨둔 치즈를 들킨 쥐새끼가 된 기분이었어요. 정곡을 찔린다면 이런 것일까? 막상 정곡을 찌른 당사사 종민씨는 너무 편안하고 솔직하게, 농담 비슷하게 말하는 바람에 제가 전혀 정색할 수 없었고, 딱히 인정을 요구하는 대답도 아니었고요. 그러고는 재빨리 ‘글이란 게 읽는 사람의 재미도 생각해야죠.’라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버렸어요.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니 완전 당한 거 같기도 한데…. 그가 이런 걸로 취할 이득도 없고, 저는 손해를 보기는커녕 이 편지에 대해 숙고할 기회와 나아갈 방향을 얻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죠. 아아. 종민씨... 참 짜증나는 사람이군요...
그리하여 오늘 편지는 Q선생님께 제가 계속 편지를 써도 될지 말지를 묻은 짧은 내용입니다. 앞으로 편지를 쓴다면 당연히 일상의 결이 들어가겠지만, 주로 사건과 인물소개로 진행될 거 같아요. 그리고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엄청난 ‘욕’일 거 같아요.
저는 제가 겪었던 일에 대해 곱씹으며 누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거예요. 저는 속에 담아두고 화병 앓거나,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다만 주저했어요. 누가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들어줄까 하고..... 그런데 선생님이 기꺼이 제안을 해주셨고 이제 저는 그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답해보려고요.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검열했던, ‘난 착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을 함부로 헐뜯지 않아.’ 같은 명제는 코미디 같아요. 저는 여전히 착해요. 종민씨도 여러 번 그 말을 했는데, 그에 대한 짜증과는 별개로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착하다는 것의 정의도 쉽지 않고, 설령 정의를 내린다 해도 그에 대한 증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저의 직관으로, 제가 살아온 감각으로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가 헐뜯을 대부분의 사람들도 착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게 제가 보는 현실이고 그간 이 아파트에서 겪었던 별별 일들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에요. 착한 사람과 착한 사람이 대립한 이야기라고요. 그 증거로 살인사건도 없었고, 누가 다치지도 않았어요. 물론 마음은 상했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라도 서로 부딪히면 상처가 날 수밖에 없죠. 그건 물리법칙 같은 거니까요. 어떠한 피해도 없는 충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착함에 관해 논하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하지만 이익이나 욕망, 능력과 무능력에 관해선 이래저래 이야기할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고민하면서 얻게 된 것도 굉장히 많고요. 제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를 넘어서 우리 국가공동체를, 아시아를, 유럽을, 인류를, 세계를 보는 틀도 조금 확장된 것 같아요.
Q선생님이 원치 않으신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둘게요. 제 글이 여태 보여드리지 않았던 신랄함과 냉소, 분노를 담을 것이고, 글자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찌르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은 어리석거나 자기 욕망을 앞세우는 우를 범했을지언정, 본래는 착한 사람, 저보다도 훨씬 괜찮은 사람일 확률이 높아요.
이런 글도 괜찮으세요? 저를 염려하고 저를 걱정하지 마시고 선생님께서 자신을 가운데 두고 정하시면 좋겠어요.
2025년 9월
Q선생님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픈 경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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