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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편지 : 두부 쪼물락쪼물락은 되는데, 왜 우린 안 돼요?
HeeyaArborm

Lv.1 HeeyaArborm (115.♡.148.24)

2026년 6월 19일 PM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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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06.21)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등장인물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강현주 사무국장 : 40대 중반의 여성. 우리가족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경숙이 그린아크 공동체운영위원회와 갈등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방귀남) 여종민 : 50대 초반의 남성. 초동 인근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람이 없을 때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 모양이다.

손호영 : 30대 중후반 남성. 그린아크초원 공동체운영위원회의 2대 회장. 2022년 10월 달에 회장이 되었다. 누가 봐도 추남이다. 다행히 옷은 잘 입는다.

우지현 : 40대 중반의 남성. 그린아크초원 공동체운영위원회의 초장기 위원이자 첫 상임위원으로 사무국장 역할을 맡았다.

윤아림 : 40대 초반의 여성. 그린아크초원 공동체운영위원회의 초창기 위원이며 공동체활성화단의 단장. 친환경 이상주의자이며 회의나 토론이 잘되지 않는다.

김현경 : 30대 중반의 여성. 신혼부부다. 초창기 멍냥수다방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반려견 꼬꼬를 무척 사랑한다.




큐11화 이미지.png



<11화 두부 쪼물락쪼물락은 되는데, 왜 우린 안 돼요?>




제 몸매를 기억하는 Q선생님은 의외다 싶으시겠지만, 제가 선생님 수업 들을 때 달리기를 꽤 열심히 했어요. 네, 열심히만 했어요. 잘 달리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그때 살던 동네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포츠브랜드가 달리기 교실을 열었어요. 얼씨구나 하고 참여했죠.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네요.

요즘은 길이 잘 닦인 신도시 초원동 뿐만 아니라 꼬불꼬불 골목길 가득한 불광동, 사람들로 북적이는 연서시장에서도 러닝하는 사람을 곧잘 마주쳐요. 상상이 잘 안 가시죠?

뛰는 사람도, 러닝 크루도 없던 10년 전에는 그 달리기 교실이 정말 요긴했습니다. 열심히 나갔어요. 브랜드의 마케팅 차원 행사니 한 군데서만 하지 않았어요. 한강 곳곳에서 했는데 저도 할 때마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한 시간씩 걸려 참여했습니다. 혼자 뛰는 재미만큼 같이 뛰는 재미가 있었어요.


어느 날 밤, 뚝섬 근처에서 달리기교실이 열렸습니다. 저는 느린 편이라 저보다 열다섯 살쯤 어린 여대생들과 같이 뛰게 됐어요. 평소에 달리기와 담을 쌓고 살지만, 가까이서 하니까 재미 삼아 나와 본 친구들이었어요. 부끄럽지만 저랑 속도가 딱 맞더라고요. 호호호.

그 학생들과 같이 뛰는데, 중간쯤에 코스를 안내해 주는 알바생들이 없는 거예요. 원래 길이 갈라질 때마다 알바생들이 지키고 있다가 ‘어디로 가라’ 안내를 해주거든요. 근데 그날은 미리 철수했는지 어쨌는지 아무도 없어서, 저와 여학생들은 가로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한강변 어딘가를 뛰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돌아왔습니다.

무서웠어요. 심장이 두근두근하더라구요. 같이 뛰었던 여학생들은 더 그랬겠죠. 무사히 행사장에 도착하자 안도와 함께 화가 났어요. 이건 안전 문제니까요.

저는 행사책임자한테 가서 따졌어요. 코스 모르고 참여하는 사람도 꽤 있는데, 갈림길에서 안내가 없으면 어떡하냐고요? 여러 번의 참석으로 저와 안면이 있던 그 책임자는 어딘가로 가더니 그 스포츠브랜드의 두툼한 스포츠 양말을 가져와 제 손에 올려주었어요. 그러면서 피곤하고 난처하고 괴로운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더라고요.

저는 제 손 위에 놓인 빳빳한 비닐 포장의 양말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어요. 화가 나서 항의를 한 건데, 돌아온 게 양말이었어요. 매장에서 사면 꽤 비싸고 질도 좋은 제품이죠. 양말을 받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 양말이 제 손 위에 놓인 순간 저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입을 다물고 돌아섰고, 그 이후로는 달리기교실에 다시 가지 못했어요.


어제 옷장을 정리하는데 포장을 뜯지도 않은 그 양말이 나왔어요.

십 년도 더 된 찝찝함이 마치 새것처럼 눈앞에 나타나니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입주한 해의 가을, 저와 멍냥수다방 핵심 멤버들은 세 가지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사무국장 우지현의 ‘너희가 단지 내 반려동물 문화에 좀 긍정적인 활동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카페 반려견 동반출입 문제를 고민해 볼게~)’라는 제안에 화답한 것이었죠. 저는 약속도 받았어요. 행사는 멍냥수다방에서 도맡아 준비하지만, 사무국이 공식 지원하는 형식으로 하자고요. 그리고 실제 가능한 지원을 다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단돈 몇 만 원 진행비라도 운영위원회가 승인하고 사무국이 집행하면 행사의 위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인텔인사이드’같은 거죠. 동아리가 진행하지만 공동체의 대표 기구가 보증한다! 뭐 그런 느낌요.

핵심 멤버들과 고르고 골라서, 멍냥수다방 단톡방의 의견까지 수렴해 기획한 행사는 10월 반려동물 초상화그리기 원데이 클래스, 11월 반려견 생애주기별 건강관리법 특강, 12월 반려동물을 위한 케이크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로 결정되었어요.

다들 기대가 컸어요. 행사가 재밌을 거 같고, 동네 사람들도 좋아해 줄 거 같고, 이 과정이 잘 마무리되면 강아지들과 카페에 같이 들어가 차 한잔 마실 길이 열릴 거였으니까요.


‘반려동물 초상화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 준비를 맡은 핵심멤버 김현경씨에요. 현경씨는 이 일에 열의를 보였어요. 아직 삼십대 중반 젊은 새댁이고, 여기서 강아지 꼬꼬와 잘 살아 보려고 애쓰고 있었거든요.

현경씨는 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에게 여러 번 하소연을 했어요. 일이 진행이 안 된다고요. 사무국에 이런저런 질문과 요청을 하면, 한참 후에야 답이나 결과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묘했어요. 말은 지나칠 정도로 조심히, 공손히 하는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행동은 보여주지 않은 상황이 반복됐어요. 사무국이 관료조직이나 거대 기업 같았습니다. 이게 이렇게 매번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릴 일인가?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우리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는데 말이죠.

어찌저찌 첫 번째 초상화 클래스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힘든 과정 끝에 강사료도 지원받았고요. 원래 그런 용도의 예산이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멍냥수다방이 동아리 사상 최초로 집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강사료 집행 직전, 멍냥수다방의 3연속 마을 행사 진행의 파트너는 사무국이 아니라 윤아림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일이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된 윤아림이 저랑 통화하며


“아, 이건 제 일이에요.”


라고 했는데, 그때의 분위기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화기 너머 윤아림의 목소리가 로맨스 드라마에서 남주와 같이 일하려던 주인공에게 조연이자 경쟁자인 여자 상사가 “△△씨, 그 업무는 제 소관이에요. 이쪽으로~”라고 말하는 톤이랑 흡사했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우유부단한 남주한테 질려서 똑 부러지는 경쟁자가 낫겠다고 판단한 거고요.

저는 윤아림과 두 번째 행사 ‘반려견 생애주기별 건강관리법 특강’을 위해 만났어요. 다른 멍냥수다방 멤버는 조금 늦게 온다고 해서 저와 윤아림 둘이 먼저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윤아림은 첫 번째 행사가 급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강사료를 집행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얘길 반밖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현경씨가 사무국에 진행 상황을 소상히 알리며 진행했거든요. 아마 자기가 숙고해서 집행 결정을 내릴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인 거 같았어요. 저는 솔직히 ‘숙고’도 ‘집행결정’도 좀 그랬어요. 사무국이 애초에 전폭 지원을 약속했던 거니까요. 그치만 두 번째 행사부터는 잘하면 될 일이다, 하고 말았어요.


저는 멤버들이랑 상의를 끝낸 ‘반려동물 건강관리 특강’ 계획을 윤아림에게 설명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윤아림은 왜 멍냥수다방이 이런 행사를 하게 됐는지 자체를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아니, 사무국장 우지현이랑 서로 소통이 안 됐나? 싶었죠. 솔직히 같은 말을 한 달 반 만에 또 하는 거라 맥이 좀 빠졌지만, 어쩌겠어요. 다시 처음부터 설명했죠.

우리가 처음 우지현을 만난 건 카페 반려견 동반출입 문제 때문이었다고요. 그런데 우지현 말로는 사무국도 단지 내 반려견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어요. 배변 문제니 산책 매너니, 민원이 계속 들어온다고요. 그러니 멍냥수다방이 좋은 방향으로 분위기를 좀 만들어 줄 수 없겠냐는 거였죠.

근데 저희 입장에선 난감했어요. 멍냥수다방이 무슨 시민단체도 아니고, 이제 막 회원들끼리 친해지기 시작한 동아리였거든요. 우리가 나서서 ‘반려견 문제해결’을 하겠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대신 단지 내의 반려인들이 서로 얼굴 익히고 인사 나누는 자리 정도는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죠. 사람들끼리 조금 가까워지면, 나중에 반려견 문제도 같이 얘기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우지현도 그 제안에는 동의했고, 사무국 차원에서 멍냥수다방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글로 다시 쓰는데도 숨이 차네요..... 어쨌든 윤아림은 제 설명을 다 듣더니 자기는 공동체활성화단의 단장이기 때문에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행사에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어요. 제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는지 윤아림은 돌려 말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길게 이어갔어요. 저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여러 질문을 했고, 마침내 그가 원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리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아파트 내의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함께 만나는 행사가 공동체 활성화 행사다. 그런 행사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원해줄 수 없다. 그러니 기획을 여기서 나랑 다시 해보자.’


저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거 같았어요. 얼마 전에 온라인 카페에 영유아들의 오감 발달을 위해 여러 물건(튀밥이나 두부 같은 것)들을 조물조물 만지는 행사를 한다는 공지가 떴었고, 후기도 올라왔었거든요. 그 행사는 사무국의 예산지원(그러니까 두부값...)을 받아서 진행한 공식행사였어요.


“아니, 애기들 두부 쪼물락쪼물락은 지원이 되는데, 왜 우리 행사는 안 돼요? 그런 기준이면 애기 있는 사람과 애기 없는 사람이 만나는 행사일 때만 지원하는 게 맞잖아요?”


제 목소리는 회의실 바깥에도 들릴 정도로 커졌답니다.

아아, 당시를 떠올리니 또 마음이 퍽퍽해지네요. 답답한 얘길 너무 오래 한 거 같아 오늘 편지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Q선생님, 제가 갑갑하게 해드린 거면 얼른 스프라이트라도 한 잔 드셔요!


2025년 10월

강아지들과 군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경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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