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넘어 재취업 후 자격증 취득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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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50살을 목전에 두고 수십 년 하던 일을 정리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 전이라 코로나 시국을 맘 편히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평택 고덕 삼성전자 건설 현장 하청업체에서 조공을 시작했습니다.
그전 1년은 서울로 5시간 걸려 출퇴근 했는데, '차라리 저기서 일해볼까? 이렇게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여러 번 생각했었습니다. 전혀 분야가 달랐기에 엄두를 못내다가 5시간 출퇴근은 안되겠다 싶어 도전했습니다.
일당 12만원 받고 스막에서 사다리 잡아주는 조공은 한 달 만에 짤렸습니다. 다음으로 안전담당자라는 걸 했는데, 하루에 3만5천보가 찍히더군요. 진통제를 먹어가며 세 달 채우고 쿠팡으로 갔습니다. 쿠팡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재계약이 불발되어 다시 고덕으로 돌아와서 공사업체 승합차 운전직으로 들어갔습니다.
운전을 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직원들이 자주 바뀌더군요. 특히 공무(라는 ?)팀 젊은 직원들이 자주 바뀌다가 어느 시점부터 공석이 되곤 충원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좀 하는 걸 알게 된 관리자가 제안을 해서 얼떨결에 단기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분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를 뽑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참 고마운 분이죠.
아무래도 사무실이 익숙했고 엑셀은 제법 다룰 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은 편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업무를 맡고 나니 왜 직원들이 자주 그만두었는지 알겠더군요. 팀에서 가장 급한 업무가 인터넷 사이트에 날짜별로 들어가서 캡쳐하고, 그걸 엑셀 시트에 넣는 작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만 단위를 넘어간다는 점이었죠.
눈 앞이 깜깜했지만, 인생 짬밥으로 '답은 있을 거다'고 마음을 다잡고 대책을 생각했습니다. 일단, 노가다 작업해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매크로를 사용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이 전 사이트에서 얼핏 보았던 게시물이 기억났습니다. 대충 "파이썬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파이썬 외에도 오토핫키와 엑셀 매크로(이하 VBA)를 활용해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파이썬을 공부해서 매크로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토핫키는 쉬워 보였지만 참고할 자료가 부족했고, VBA는 엑셀 자체 작업에만 특화되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임자들이 자주 퇴사한 덕분에(?) 업무 기간은 넉넉하게 주어졌습니다. 한 달 이상. 그 기간 동안 성과를 내야했죠.
파이썬을 배운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파이썬을 설치 했는데, 다음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검색해서 에디터(IDE)인 파이참을 설치하고 가상환경 만들고, 인터프리터 설정하고, 실행이 안돼서 환경변수 패스 추가 해주고 등등. 한 단계 진행하고 막히면 검색해서 문제해결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키보드, 마우스를 조작해서 크롤링, 캡쳐 하는 방법은 자료가 많아서 어찌어찌 코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처음 코드를 짜서 마우스가 움직이는 걸 볼 때는 감동이 일어나더군요.
그렇게 한줄한줄 실행시키다 보니 중복되는 코드가 많아졌습니다. 아하, 이래서 함수라는 걸 만들어서 재활용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나 똑똑한데?' 혼자서 칭찬도 해줬구요.
개발자분들이 보기엔 답답하실거예요. ‘답답하시쥬? 저는 환장하겠슈.’라는 문구가 생각나네요. 때론 정말 환장할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재밌었습니다. 돈 받으면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다니!
결국 날짜별 화면 캡쳐(pyautogui), 파일이름 추출(regex) 후 저장, 엑셀시트에 삽입하는 작업(VBA)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크로는 파이썬, VBA, 오토핫키를 조금씩 다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키보드, 마우스 자동화와 파일 저장은 파이썬, 엑셀 시트 작업은 VBA, 소소한 자동화는 오토핫키가 효율적이더라구요.
ChatGPT가 나온 뒤로는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끙끙대며 혼자 고민하던 걸 뛰어한 지능으로 보조해주는 비서가 생긴 셈이었으니까요. 코드 짜는 시간이 줄었고, 필요한 코드가 생기면 부담 없이 작성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위기가 닥쳐왔지만, 어찌어찌 생존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2년 정도 지나자 일감이 줄기 시작합니다. 옮길 수 있는 인원들은 알아서 회사를 빠져나갑니다. "삼성아, 전에 욕 했다고 이러기니? 덕 좀 볼까 했더니 왜 흔들리냐고?"
냉정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제 위치가 애매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이 계통에서 전문성이 없었습니다. 현장도 모르고, 설비·부품도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요. 엑셀 좀 다룰 줄 알고, 매크로 좀 배웠다고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인력일까?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정말 큰 돈이 오가는 업무는 이게 아니니까요.
장기적으로 자리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낙담하거나 부정적인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다 안전담당자로 일하다가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딴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잠시 함께 일한 게 인연의 전부였지만, 연락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조언을 구하자,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안전 관련 수요가 제법 있기 때문에 나이가 있어도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 가능할 거랍니다. 제 결론은,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따자.'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현실 대응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0.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딴다.
1-1. 회사를 단기간에 그만두어야 할 상황이 오면 '산업안전기사'로 취업해 경력을 쌓는다.
1-2.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으면, '전기 기사' 혹은 '소방 기사' 자격증을 추가로 딴다.
2. 위 상황에 따라 경력을 쌓고 노후까지 일한다.
문과전공이라 실무경력 2년으로는 산업기사만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군 경력을 넣어서 물어보니 Q-net에서 '기사 응시 가능'으로 답변이 나왔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0번 클리어한 거죠.
이 나이가 되니 한숨도 사치가 됩니다. 할 수 있을까도 사치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해야하는 거'면 그냥 하는거죠. '전기 기사', '소방 기사' 무척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 '산업안전기사'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파이썬을 배우는 과정은 말할 것도 없구요.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거다. 익숙해지면 못할 게 없어."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네요. 저만 사연이 있을까요? 다들 사연 있으실테죠? 눈물은 한 스푼 빼고 적었습니다. 힘내시고 다시 달려보자구요.
다음 글에는 '산업안전기사' 자격증 공부과정을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