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5 - 창가의 김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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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클라인의병 117.♡.226.185
작성일 2024.07.21 21:32
분류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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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001>


어느 날이었어요. 컴퓨터 화면 속에 빠져있던 집사는 잠깐 고개를 들었고, 제 시선은 창가로 가 닿았어요. 야옹이들과 함께 살지 않던 시절에도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집사의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고양이 한 마리가 늘 있었어요.

  • 머리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
  • 둥글게 말아놓은 꼬리와 가지런히 모아 둔 앞발.
  • 창밖을 보는 시선.


순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딱 맞춤한 자세의 김호시가 집사의 눈앞에 나타났어요.

집사가 야옹이들 사진을 찍는 일은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야옹이들의 행동 패턴을 기록하는 작업이에요.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죠. 집사는 ‘관찰-반복’을 통해 일정한 규칙의 ‘사진-형식’을 만들고, 사진-형식의 ‘이름’을 정해요. 이름이 있는 ‘사진-형식’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장면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을 힘을 만들어내죠.

창문, 창가, 야옹이, 이상적인 자세라는 여러 소재가 모여 ‘사진-형식’ 하나를 만들었고, ‘(연작) 창가의 김호시'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좌) 10+24주 / (우) 10+27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풍경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생애 가장 부지런히, 이른바 '포인트'를 찾아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 더 스펙터클한 풍경을 찾아 셔터를 누르고, 어쩌다 운 좋게 얻어걸린 결과물에는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었죠. 하지만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닐수록, 즐거움이 아닌 경쟁으로 다가오는 스펙터클은 되려 사진 생활에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분이 되었어요.


한참 후에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 계기는 매일 지나치는,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을 1년 이상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을 때였어요. 그때 알게 된 풍경 사진의 묘미(妙味)는 '하나의 공간'이 '시간'과 함께할 때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남는 건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 / 무언가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이었어요.


<10+30주, 203, 자기만의 '창'>


집사는 '창가의 김호시.들'을 봅니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김호시에게는 '자기만의 창'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떠올리며 야옹이 김호시에게 창밖은 TV 같은 것이 아닐까 상상도 해 봅니다. 창밖을 보는 야옹이를 보고, 야옹이의 시선을 상상해 보고, 야옹이의 기분을 헤아려봅니다.


창가의 김호시는 그렇게 집사의 마음을 간지럽혀요.


<10+34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 이제 일어나 볼까?>


처음에는 창밖을 보는 야옹이, 김호시의 자태가 예뻐서 사진을 찍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셔터를 누르는 횟수는 줄어들고, 집사는 창가의 김호시를 그저 보고 또 봅니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호시를 보고 있으면, 집사의 마음은 평온해져요. 호시의 공간(space)은 집사에게 다가와 평안을 주는 장소(place)가 됩니다.

<(좌) 10+41주, 203, 창밖에 비가 와 / (우) 10+39주, 203, 창밖에 눈이 와>


작고 볼품없는 창이에요. 창틀도 창밖의 풍경도 그리 특별하지 않아요. 그러나 김호시를 비롯한 야옹이의 존재가 더해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문이 돼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좌) 10+34주, 203, 완전체 털냥이 / (우) 10+52주, 203, 등빡빡이 야옹이들>


털이 풍성하거나, 혹은 등을 빡빡 밀어도... (검은 털이 파뿌리 될 때까지...)

야옹이들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여 '야옹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요. : )


<10+208주, 302, (연작) 창가의 김호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좀 더 넓고 빛이 좋은 창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도 창가의 김호시는, 그리고 야옹이들은 한결같이 그 장면을 집사에게 보여줍니다.


<10+123주, 203, (연작) 창가의 김호시>


“창가에 오래 앉아 있던 고양이를 껴안으면 그 계절의 냄새가 난다. 털 사이에 그 계절의 햇빛과 온도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문을 구경시켜 준 것을 생각하면서, 더 현명하고 능숙하게 아프지 않게 돌봐주고 싶다.”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라는 책에 실린 김건영 시인의 '나의 단이'라는 시(詩) 한 구절입니다. 평소에 눈물은 하품할 때나 가끔 보는 집사지만 이 시를 읽었을 때, 그동안 마주했던 '창가의 김호시.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던 당황스러운 기억이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문'이란 텍스트가 순식간에 그동안의 이미지로 번역되는 경험이었달까요.


대략적인 글의 뼈대를 세우고 사진을 고르면서 멀거나 가까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데려오며 괜히 또 울컥하는 밤입니다. 시인의 마음처럼 다모앙에 계신 모든 집사님이 더 현명하고 능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여러 장이 이어진 이미지는 클릭하고 확대하면 조금 더 크고 선명한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목차


#1 - 우리 집에 고양이가 산다.

#2 - 고양이 연쇄수면사건

#3 - 호시 운동 교실

#4 - 밤과 별과 야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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