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28 - 꼬리가 길면 (호시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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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향에 가까운 ‘302’ 안방에 있는 창으로는 아침부터 해가 질 녘까지 햇살이 들어와요. 소시(少時)에는 ‘창가의 김호시’로 불리며 집사 마음에 숱하게 불을 댕긴 야옹이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창가에 올라가 화려한 꼬리 놀림을 선보여요. 탐탐이보다 서너 배는 굵은 꼬리-심 덕에 꼬리를 보는 집사가 감탄사를 터트리죠.
맑은 날 햇빛으로 충분히 데워진 공기를 오감으로 느껴요. 기분이 좋은지 호시는 >팡< 하고 꼬리를 들어 올려요. 아주 잠깐 정점에 머무른 꼬리는 끝에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요. 호시 꼬리는 정말 무겁거든요.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됩니다.”라는 대사가 나오죠. 사람 관계에서 지침 같은 말이래요. 하지만 야옹이 —> 집사 관계에서는 괜찮아요. 기분이 태도가 되어도 말이죠. 호시 기분은 꼬리의 태도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탐탐이의 활짝 핀 꼬리는 호시에겐 어려운 일이에요. 탐탐이는 간식 먹을 때 꼬리를 수직으로 세워 집사에게 달려오거든요.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 호시는 자기 꼬리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어요. 잠깐 세우기는 하지만 그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꼬리는 아래로 향했거든요. 궁여지책으로 꼬리를 등과 수평으로 만들어 이동하죠. 집사는 이 모습을 다리미 손잡이 자세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창가에서 일광욕을 맘껏 즐긴 김호시는 아래에 있는 침대로 수직 낙하해요. 이전에도 사진으로 담으려다 몇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장면이에요. 데이터가 고스란히 쌓여있는 집사는 머릿속에 그린 몇 초 후의 미래에 맞춰 셔터를 눌러요.
마침내 성공이에요.
호시는 창가에서 침대로, 프레임 안에서 밖으로 낙하했고 호시 꼬리는 야옹이의 수직-세계를 완전하게 보여줬어요.
애송이 시절 김호시의 꼬리는 집사의 자랑이었어요. 은빛 털에 햇빛이 떨어질 때, 수평을 유지한 꼬리가 한 바퀴 돌면 그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던지요. 물론 태생이 익살꾼인 김호시는 다람쥐 코스프레가 더 자연스러운 야옹이긴 했죠.
호시 꼬리는 유난했고, 튼튼했고, 길었어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있죠?
큰일이에요. 밟히긴 밟히는데 자꾸 눈에 밟혀요. 호시가요. : )
세월이 흐르고 김호시도 나이를 먹었어요. 은빛 털에는 누릇누릇한 빛깔이 덧입혀졌어요. 우아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던 뒷모습에서 ‘가끔’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큰 바위나 찰흙 덩어리를 떠올려요. 여전히 날렵함을 자랑하며 수직-세계를 동경하는 탐탐이와는 달리 바닥이나 침대 같은 수평 세계에 군림하는 덩어리, 아니 야옹이가 됐어요. 팔불출인 집사 눈에 밟히는 게 다르기야 하겠냐만, 바닥에 있는 꼬리가 혹여나 발에도 밟힐 것만 같아서 걱정이에요.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에서 늘 강조하는 부분이에요. 집사에게 ‘야옹이’와 함께하는 경험은 ‘추상적인 고양이’가 ‘구체적인 야옹이’로 전이되는 과정이죠.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고양이가 있어요. 집사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어느 적당한 순간에 이름을 부르죠. 집사의 목소리에 반응해 창가의 고양이가 고개를 돌려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추상적인 고양이는 구체적인 야옹이가 되어 집사와 함께하는 삶으로 들어와요. 날마다 조금씩, 켜켜이 쌓이는 경험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마침내 면에서 입체로 구체화해요. 어느 날은 얼굴만 보여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꼬리까지 반응하기도 해요. : )
고양이의 냥풍당당한 걸음걸이를 빗대어 패션모델의 워킹을 캣워크라고 한대요. 나아가 패션모델들이 서는 좁은 무대를 지칭하기도 하죠. 냥풍당당한 걸음걸이는 발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에요. 캣워크의 완성은 빛이 나는 꼬리에 있죠.
창가의 김호시를 담으려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선 호시 덕분에 만난 장면이에요.
세렝게티 침대 들판 위에 거대 너구리 꼬리를 가진 김호시가 나타났어요. 집사가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공든 베개탑을 머리로 밀어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렸어요. 범행 현장을 목격한 집사는 단호하게 김호시를 불렀죠.
🥸: “김호시이~이”
🐯: “왜 부르냐옹!”
🥸: “아니야..”
분명히 꼬리는 김호시가 내리고 있었는데. 마동석 팔뚝만한 호시 꼬리는 집사에게 충분히 위압적이었어요. 사고를 친 김호시는 당당했죠. 꼬리를 내린 건 오히려 집사였어요.
이불 개척단 수석 탐험가 김호시에요. 단정하게 갠 이불은 아무래도 매력이 없나 봐요. 급하게 둘둘 말아 놓으면 그제서야 호시의 탐험 욕구가 급상승하죠. 틈을 찾아 먼저 머리를 밀어 넣고 후각과 촉각, 그리고 꼬리를 한껏 곤두세워요. 집사를 웃음 짓게 만드는 순간이에요. 집사가 모시는 야옹이의 기분이 좋고, 기분 좋은 느낌을 시각이란 감각으로 충분히 번역한 이 장면이 말이죠.
남다른 골반과 넓은 넓적다리, 호시 꼬리는 야옹이의 뒤태를 구성하는 3요소에요. 수직으로 솟아오르다 못해 굽어지는 꼬리는 호시의 뒤태를 더욱 치명적으로 보이게끔 하죠.
개별적으로 야옹이 사진을 찍을 때 되도록 지키려고 하는 점이 몇 가지 있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수직-세계’의 정립(定立)이에요. 호시&탐탐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인데, 수직-세계는 야옹이들의 생활 환경에 꼭 필요할 뿐 아니라 야옹이들이 동경하는 세계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받아요.
사진을 통하여 ‘수직-세계’를 정립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요. 야옹이들을 포함하는 공간에 ‘수직’이 도드라지는 부분을 찾아요. 수직이 수직으로 보이려면 집사는 수평-세계에 있어야 해요. 야옹이가 있는 층위와 카메라가 있는 층위가 평행하게끔 조절해요.
처음에는 기존에 사진을 하는 방식과는 다른 조정 과정이 제법 껄끄럽고, 어려웠어요. 8년의 세월은 집사인 저를 ‘야옹이를 위한 수직-세계 설계 전문가’로 만들었어요. ‘사진’이란 도구를 사용해 야옹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야옹이들이 동경하는 ‘수직-세계’를 설계하는 거죠. 물론 모든 상황에서 적용하기는 어렵죠.
<10+282주, 302, 숨기지 못하는 기분> 사진은 순간 포착이 중요한 장면이라 위의 과정에 해당하지 않아요.
‘수직-세계’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에요. 보편적 진리라기보다는 집사와 호탐이들 사이에만 있는 작은 약속이죠. 재미있는 건 수직-세계에 관한 개념을 정립하고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할 정도로 훈련하면 수직이 어긋나도, 그 어긋남이 지나침이 아니란 점이에요. : )
집에 정적이 느껴질 때, 집사는 문득 야옹이들을 찾아요. 김호시는 종종 소파나 책상, 유리장 밑에 몸 절반을 감추고 나머지 반을 드러내요. 바닥만큼 납작해진 김호시를 보고 집사는 너털웃음을 지어요. 자연스럽게 바닥과 궤를 같이하는 김호시는 ‘수평-세계’에 존재하는 셈이에요. 그렇다면 호시가 있는 세계에 온전한 평화를 주고픈 집사는 ‘수직-세계’에 머물러야겠지요.
세상을 뒤집을만한 엄청난 상상은 아니에요. 오히려 사소한 공상이죠.
야옹이의 세계는 집사의 세계와 만나요. ‘수직-세계’는 ‘수평-세계’와 만나고, 사진 프레임 ‘안’의 세계는 사진 프레임 ‘밖’의 세계와 만나죠. 너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에요. : )
고양이 꼬리는 또 하나의 자아라는 말처럼 무척 특별한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집사가 모시는 고양이의 꼬리라면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겠죠. 그럼에도 김호시의 꼬리는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어요.
김호시의 꼬리는 집사에게 늘 호기심을 유발하고,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를 넘나들게끔 영감을 주거든요.
글감 정리를 마무리하던 차 거실에서 목격한 김호시에요. 침대에서 내려가기에 물을 마시러 가냐 싶었는데, 꼬리 최적화 모드로 엎드리는 게 아니겠어요. 호시 꼬리를 설명하기 위한 자료사진으로 첨부합니다.
역시나 눈에 밟히는 김호시에요. : )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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