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18 - 난장과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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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대장님의 기분 전환이 필요한 날이었나 봐요. 침대보와 베갯잇을 바꾸기로 합니다. 단순히 A를 B로 바꾸는 간단한 작업은 아니에요. 새것은 침대와 베개에 입히고 기존의 것은 옷장에 넣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정리를 바라보는 의견 차이가 존재하죠. 단순히 빈 곳을 찾아 무언가를 채워 넣는 도비 집사와는 달리 대장님은 옷장의 모든 공간을 새롭게 구획하고 정돈하거든요. 그런 까닭에…
“오늘 옷 정리를 할까 해.”라던가
“침대보를 새로 갈까 해.”라는 대장님의 말이 떨어지면 도비 집사의 맥박은 빨리 뛰기 시작하고, 온몸은 긴장 상태가 됩니다.
반면 고양이-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세계는 순리대로 움직이는 법. 정리 정돈이 된 세계 이전에는 ‘반드시’ 난장(亂場)이 존재해요. 그리고 어질러진 옷장 주위는 야옹이들에게 천국과 같아요. 몇 년간 축적한 집사-데이터에 따르면 옷장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은 야옹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직물의 질감과 냄새는 야옹이들의 오감과 호기심을 자극하죠.
일 년에 두 번, 얇은 옷과 두꺼운 옷은 각각 옷장과 정리함으로 여행을 떠나요. 새롭게 우리 집을 찾는 옷도 있고, 쓰임을 다하고 버려지는 옷도 있어요. 옷장 위와 침대 밑에 있는 옷 정리함을 꺼내면 대장님과 김호시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요. 대장님은 손수 초강력 돌돌이로 옷 하나하나에 묻은 털을 제거해 정리함에 넣고, 호시는 정리함을 점령해요.
“김호시~이! 이놈 시키야!!!”
대장님 목소리는 커지고, 김호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비 집사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요. : )
고양이는 ‘익숙한 환경’이 바뀌는 것은 싫어하지만, 익숙한 환경이 ‘어지러워지는 상황’은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해요. 우스갯소리로 “이사를 하는 건 절대 사절이지만, 이삿짐 싸는 분위기는 좋다옹!” 이랄까요?
옷장 정리는 무척 고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호시의 또랑또랑한 눈빛을 마주하는 기회이기도 하죠.
옷장 안은 야옹이들에게 출입 금지 구역이에요.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는 데다가 ‘틈’이 보일 ‘때’를 포착한 야옹이들이 달려들어도 대부분은 대장님에게 잡혀 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옷장 정리 기간에는 대장님의 신경이 온통 옷에 가 있고, 도비 집사는 옷장 출입에 한껏 너그러운 까닭에 위와 같은 장면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어디 보자…”
대장님과 집사의 허술한 감시망을 틈타 옷장 안을 호시탐탐 노리는 김호시에요. 김호시의 기분은 지금 최고로 좋은 상태예요. 한껏 올라가는 꼬리를 보면 알 수 있죠. 어디선가 고탐탐이도 나타나 옷장을 기웃거립니다.
그럴 때가 있어요. 분명 야옹이들의 소리와 움직임이 근처에서 느껴졌는데 갑자기 묘기척이 사라지는 순간. 싸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살피면 십중팔구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김호시가 있지요. 아,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대장님의 “호시, 이놈 시키야!!!”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집사에게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 걸까요? : )
야옹이들에게 옷장 대탐험은 언제나 신나는 일인가 봐요. 은밀한 행동임에도 캣워크와 꼬리에 잔뜩 묻어 있는 김호시의 기분은 감출 수가 없어요. : )
야옹이들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순간’을 보는 일은 집사에게도 무척 즐거운 일이에요. 야옹이들의 기분을 헤아리고, ‘장면’을 기억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이 많이 축적되면 야옹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겨울맞이 옷 정리하는 날입니다. 일단 침대 위에 비닐을 깔고 니트류를 고양이 털과 분리합니다. 호시와 탐탐, 두 야옹이는 벌써 신이 난 모양이에요.
족히 한나절은 걸릴 옷 정리는 사람뿐 아니라 야옹이들에게도 힘든(?) 시간입니다. 옷장과 침대 주변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에요. 난장 상황에서도 쉬는 시간을 가지며 이어질 분탕질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야옹이들입니다.
대장님이 옷장을 비우는 틈을 타 김호시가 옷장을 점령했어요. 김호시는 옷장에 배인 냄새를 무척 좋아해요. 코를 벌렁거리며 ‘킁카킁카’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옷 정리가 끝날 무렵이었어요. 얇은 옷이 담긴 마지막 정리함을 침대 밑에 넣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김호시가 터줏대감처럼 엎드려 있었어요. 표정은 또 어찌나 자신만만한지…
한참 동안 엎드려 있던 호시가 떠난 뒤에야 마지막 옷 정리함이 제자리를 찾아갔어요. 난장판이었던 집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야옹이들은 한껏 얌전해졌어요. 하지만 정리 정돈이 된 집은 언젠가 어지러워지기 마련이고, 야옹이들의 텐션이 올라갈 날이 곧 찾아오겠죠.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계속되니까요. : )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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