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11 - 김호시의 수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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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을 몸 안으로 접어 한껏 웅크린 채 엎드린 모습을 일컫는 ‘식빵 자세’는 고양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세에요. 집사들은 “식빵을 굽는다.”라고도 표현하죠
햇살 좋은 날 바깥에서 식빵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길고양이를 보셨나요? 귀여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언제든지 달아날 것도 염두에 둔 자세라고 해요. 야생동물에게 잠은 가장 큰 휴식인 동시에 외부 위험에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이니까요.
집고양이의 경우는 어떨까요? 집안은 바깥보다 비교적 안전한 환경이므로 길고양이만큼은 아니지만, 몸이 아프거나 불안한 상태일 때 식빵 자세를 취하기도 해요.
여기 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야옹이가 있어요.
등은 바닥에 붙어 있고 시선은 하늘을 향한 채 태연히 잠을 청하죠.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도 여느 고양이처럼 식빵을 구웠고, 자면서도 철저하게 사주경계를 했었죠. 시간이 흘러 자신을 모시는 집사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이 집에 더 이상 자신의 천적이 없음을 깨달았어요. 자기 배가 마땅히 닿아야 할 자리를 등에 내어주고 네 발은 바닥이 아닌 허공으로 향했어요.
2017년 호시가 대구에 온 그해 여름. 집사는 대장님과 함께 영화 <레이디 멕베스>를 봤어요. 플로렌스 퓨(Florence Pugh)의 연기와 더불어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푸른빛의 색감이 아주 인상적이었죠. 집사는 영화 포스터에 나온 ‘모든 금기 사항의 집합체’라는 문구를 패러디해 김호시 헌정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고양이 자세로 잠을 자던 탐탐이와는 달리 김호시는 일찍부터 자유분방한 수면 자세를 뽐냈으니까요. : )
김호시의 시그니처 수면 자세에요. 앞발은 다소곳이 모아 뻗고, 뒷발은 쩍벌-당당하게 펼쳐요. 유연한 골반을 자랑하는 김호시의 많은 수면 자세는 이 자세에서 변형이 이루어져요.
꼭 누워서만 잠을 청하는 법은 없죠. 등을 대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잘 수 있어요. 보통 벽에 등을 대고 잠을 청할 때면 골반이 점점 더 천진난만해져요.
김호시의 인디언식 이름은 ‘주먹 쥐고 쿨쿨 자’입니다. 해먹이나 책상 모서리에서 잠을 청할 때 호시의 도톰한 주먹은 허공에 떠 있는데, 상대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주먹의 솜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와 같은 구도를 집사는 참 좋아해요. : )
다음은 수면 자세에 따른 골반의 자유도를 측정한 기록사진입니다. 앞발과 꼬리의 위치에 따라 골반의 수축과 확장이 이루어져요.
엄청 편해 보이는 데 불편해 보이는 ‘몸통 비틀어 자기 자세’입니다. 잠을 자다가 하품 한 큰술을 첨가할 때가 있는데 입이 벌어지거나 혹은 입이 닫히기 직전의 모습은 집사의 취향 저격이죠. 김호시는 치열이 참 예쁘거든요. : )
네. 집사는 팔불출 맞습니다. ;ㅅ;
김호시는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역시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수면 과학 연구소 수석연구원>입니다. 전위적인 수면 자세를 연구하는 일인데, 호시는 단연 으뜸인 아방가르드 수면 전사에요.
김호시 수석연구원은 야옹이들은 대체 어디까지 고단하게 잠을 잘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어요. 호시는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누구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묘(猫)에요.
여름 홑이불은 김호시가 좋아하는 아이템이죠. 집사가 자려고 누우면 자기도 자리를 잡아요. 잠을 청하는 호시에게 집사는 팔을 뻗어 살포시 배를 만져요. 여름철 에어컨을 틀고 홑이불을 덮은 다음 야옹이 배가 있으면 소소한 사치를 누릴 수 있어요. 김호시의 배는 여름철 집사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에요. : )
- 제자리에
- 준비하시고
- 쏘세요!
대프리카의 여름은 야옹이들이 버티기에는 가혹한 환경입니다. 날이 더워질수록 야옹이들은 점점 늘어져 가고 호시의 골반은 점점 더 천진난만해지는데, 김호시의 묘권 보호를 위해 집사는 이불을 덮어주곤 해요.
어때요? 감쪽같죠. : )
아깽이 시절과 캣초딩 시절 쉴 새 없이 우다다를 하면서 활동적인 사진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야옹이들의 사진은 잠으로 수렴해요. 분명 잠은 정적인 행위일 텐데 이상하게 동적이죠. 김호시의 잠은 이토록이나 씩씩해요!
고양이의 신체 부위 가운데 배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해요. 집사가 읽은 고양이 관련 서적에는 정말 신뢰하는 대상이 아니면 고양이는 배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어요. 김호시와 고탐탐이는 배를 까뒤집는 것은 일상이고 심지어 만지면 좋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특히 김호시의 수면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위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요즈음 김호시가 새롭게 심취한 수면 자세에요. 호시 얼굴이 혹여나 납작해질까 걱정이 큰 집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떡잎을 자랑하던 김호시는 자유로운 수면 자세의 소유묘에요. 우리 집 대장님이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우리 집 야옹이들은 행복할까?”
그럴 때마다 집사는 대답하죠. '야옹이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려면 고개 들어 야옹이들의 수면 자세를 보라!'고요. : )
어느 주말, 알람 없이 늘어지게 잠든 날.
점심때쯤 깬 집사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에요. 혹여나 호시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사부작사부작 챙긴 뒤, 다시 자리에 누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셔터를 눌렀죠. 마음에 쏙 드는 포즈와 질감,
오랜만에 집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이에요.
밥때와 다음 밥때 사이.
식사 후 졸음이 소화돼 가장 깊은 잠으로 가서 닿았을 때.
수평선도 아니고 지평선도 아니지만, 눈앞에 나타난 이 장면.
집사는 이것을 ‘끝없이 펼쳐진 잠평선’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사진을 찍다 보면 아주 작은 확률로 기억에 남는 장면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찍히기보다 사진을 찍는 일이 많은 집사는 사진 속 관계체를 통해 사진 밖의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요. 방석 위에 누워 다리 한쪽을 든 채 쿨쿨 자는 호시를 보며 사진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세상에서 김호시의 수면 자세를 제일 많이 마주하고 기록하는 집사에게 '잠아 일체(잠이 나이고 내가 곧 잠인 경지)’를 추구하는 신선의 경지를 보여준 이 장면. 사진 밖에는 빵 터진 채 셔터를 누른 집사가 있었어요. : )
마치 부처의 얼굴을 보는 듯한 온화한 표정과 한쪽 다리를 수직으로 세워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김호시는 분명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겁니다. 그래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늘 영광이에요. 집사는...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여러 장이 이어진 이미지는 클릭하고 확대하면 조금 더 크고 선명한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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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끼님의 댓글
저희 집 고양이놈들도 이리저리 맘대로 몸을 꽈대고 자는데, 축 늘어진 따끈한 슬라임 같습니다.
특히 '머리 박고 쿨쿨 자' 자세는, 집사 겨드랑이 밑에 꾸역꾸역 들어오는게 참 사랑스러운 놈들이다 싶어요.
노래쟁이s님의 댓글
<(연작) 고양이의 시간 中>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듯한 호시의 참 사진이 예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