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27 - 틈. 사이. 빼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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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묘한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시선이 시작되는 곳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대개 두리번거림 몇 번이면 궁금증이 풀리거든요. 어느 날은 책장과 공기청정기 사이, 좁은 틈에서 도대체 언제부터 집사를 보고 있었을지 모를 김호시와 마주쳤어요.
한편, 창밖을 보고 있는 야옹이를 지켜볼 때가 있죠. 그럴 땐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요. 노출을 고정하고 반셔터를 누른 채 야옹이의 이름을 불러요. 목소리에 반응한 야옹이가 고개를 돌려 집사와 마주한다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죠. 모니터와 적당히 열어 놓은 창문 사이, 그 틈에서 만난 어느 날의 고탐탐이가 꼭 그랬어요.
덧붙여 미묘(微妙)하게 살짝 가려진 야옹이의 눈은 절묘(絶妙)함의 기준이에요. : )
야옹이들과 틈 사이에서 빼꼼 마주하는 걸 집사는 참 좋아해요. 보통 ‘본다’라는 행위는 ‘시각’이란 감각을 전제해요. 사진이란 미디어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변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제한해요. 한편, 틈이라는 구조는 ‘본다’라는 감각에 ‘비집고 들어간다’라는 감각을 더해줘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시각에서 촉각으로 순식간에 감각을 번역하는 거죠. 또한 틈이 보이는 구조는 2차원의 편평한 사진 베이스가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층(layer)을 쌓아줘요. 일상에서 흔히 만나기 어려운 까닭에 간혹 만나는 마음에 드는 ‘빼꼼’ 사진은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 많아요. 물론 이 모든 건 ‘야옹이’의 존재가 없다면 무용지물이겠죠.
야옹이와 함께 살게 된 첫째 주(10+1주) 사진이에요. 김호시는 침대 밑에 있는 옷 정리함 사이에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요. 마치 초보 집사의 마음에 순식간에 비집고 들어온 느낌이었달까요. : )
‘틈’이란 단어를 무척 좋아해요. 개별적인 느낌으로 말맛이 좋고, 다양한 맥락에서 쓰임을 갖는 말이에요.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대한 층위 양쪽을 거닐어 다니는 지점이 매력적이죠. 야옹이들 사진을 찍을 때 셔터를 한 번 누른 다음, 바로 상황을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는 편이에요. 이어지는 한, 두 개의 장면은 시간상으로 몇 초간의 공백이지만, 그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상상이 자리하고 있지요. 시간이 만드는 틈 역시 사진으로 담긴 장면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요.
틈은 야옹이의 허술함을 보여주기도 해요. 집사가 보고자 하는 것과 야옹이들이 보여주는 것 사이의 틈이 벌어질수록 예상치 못한 장면이 드러나죠. 집사는 이것을 허술함이 주는 매력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책장에 먼저 올라간 탐탐이를 따라 밑에서 뛰어오른 김호시. 멋지게 착지하면 좋았으련만 생각보다 추진력이 강해 반대쪽으로 떨어질 뻔했어요. 확대해서 본 김호시의 표정이 꽤 당황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집사는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드는 게 좋아요. 각 잡고 찍는 사진은 ‘예쁜 사진’일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진은 아니에요. 집사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 기억하는 사진은 틈이라던가 허술함처럼,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으로 조금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야옹이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 와중에 마주한 악마 소환 김호시에요. 일부러 찍으려고 하면 오히려 만나기 힘든 표정이에요. 시간의 틈을 두고 셔터를 누르는 방식이 몸에 배면 야옹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 아주 조금 수월해져요. : )
처음에는 왼쪽 사진의 고탐탐이와 오른쪽 사진의 김호시가 함께 있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어요. 왼쪽 사진을 먼저 찍고, 다른 곳을 보는 호시가 집사를 보기를 기다렸어요. 다시 셔터를 누르려던 찰나 탐탐이가 혓바닥을 샐쭉 내밀었어요. 의도해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장면이에요. 네. 우연히 만난 장면이죠. 그러나 시간의 틈을 만드는 데 익숙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우연’이에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오히려 더 좋은 사진이에요. 허술한 표정을 드러낸 탐탐이와 그윽한 눈빛을 던지는 김호시가 집사 마음에 쏙 들어요. : )
10+101주를 기준으로 이전의 사진들은 Ricoh GR, 이후의 사진들은 Ricoh GR3로 찍었어요. 몇 가지 이유로 야옹이들 사진은 28mm 단일 화각을 가진 작은 P&S 똑딱이로만 찍고 있어요. GR이 제 쓰임을 다하고 GR3를 들인 다음에 처음 찍은 야옹이 사진이에요. 역시나 처음은 김호시에요. 선명하게 기억하는 시작. 일종의 상징인 사진이죠. 렌즈 일부가 이불과 겹쳐 ‘틈’과 ‘층’을 만든 묘한 느낌의 김호시에요.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집사의 취향과 관계있는 사진이에요. 집사는 관계체가 작아도 집중할 수 있는 사진을 좋아해요. 책장 너머 보이는 호시를 몰래 찍어보려다 딱 걸린 장면이에요. 사진 속 김호시가 프레임 가득 크게 보이진 않아도, 카메라 앞에서 자신만만한 호시 특유의 표정이 담겨 있어요. 많이 가리고 조금 드러내는 구도는 흔하진 않지만, 아주 가끔 집사의 마음이 설레는 장면을 빼꼼 드러내요. : )
경험한다는 건 내용을 숙지하는 것보다는 형식을 구축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야옹이들의 생활을 살피고, 하나의 사진-형식에 생기고 익숙해지면 비슷한 장면을 꽤 많이 만나게 돼요. 더 적확하게 표현하면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지나쳤을 장면’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장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랄까요?
‘틈’을 찾아요. ‘틈’이라는 구조를 살핍니다. 물리적인 의미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확장된 개념까지, 틈 사이에 빼꼼 보이는 야옹이들과 마주하려고 노력해요.
안방에서 거실로 향하는 문 옆에 책장이 있어요. 물 마시러 가는 길, 거실 책상 위에서 당당한 자세로 모로 누워 있는 탐탐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순간, 속으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어요. 예전 장면이 떠올랐거든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책장 옆에 숨어 다시 탐탐이를 봤어요. 고탐탐 씨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집사를 기다렸어요.(라고 믿습니다)
창을 통과한 겨울 햇살은 다른 계절보다 더 낮고, 멀리까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창가 반대쪽 벽에 내려앉은 빛이 작은 틀을 만든다. 때마침 거기에 어울리게 앉은 호시의 그림자가 나만 아는 작은 장면을 만든다. 작지만 너에겐 전부인 세계. 그 세계에도 사계절의 시간과 공간이 있다. 오늘의 햇살은 닿을 수 없는 벽을 보며 당시의 기억이 담긴 사진을 꺼낸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한 그때의 두근거림을 떠올린다.
야옹이들은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고, 틈만 나면 시야에서 사라져요. 집사는 틈이 보이면 장면을 그리고, 틈이 나면 장면을 기다려요.
3월이 되면 야옹이들도 8살이 돼요. 아무것도 모르던 우당탕탕 풋내기 집사는 호시, 탐탐 두 야옹이에게 조련돼 제법 능숙한 집사로 거듭났어요.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사진 생활에서 발견한 ‘틈’이라는 개념은 야옹이들과 집사 사이에도 있을 거예요. 그 틈을 시간과 공간이란 씨실과 날실로 엮어 이야기로 남겨요. 사진으로 기록해요. 기록된 몇몇 장면은 빼꼼 삐져나와 집사에게 뜻밖의 만남을 선사해요. : )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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