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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21 - 포즈(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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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클라인의병
작성일 2025.01.19 03:05
분류 생활문화
590 조회
1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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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0+2주, 203 / (우) 10+278주, 302, 호.시그니처 포즈>


김호시는 옷장 앞에 기대앉는 걸 참 좋아해요. 차가운 느낌이 좋은 건지, 금속이라는 소재의 감촉이 좋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에도 꽤 공을 들여 옷장에 몸을 기댄 채 시간을 보내요. 야옹이란 생명체는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에 앉아 그루밍처럼 자기 할 일을 하다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출 때가 있죠. 집사의 연차가 쌓일수록 시간이 멈추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을 경험하곤 해요. 실제 시간은 수초에서 십여 초 남짓이지만 카메라와 집사, 야옹이들이 공존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영원에 가까운 순간이에요.


사진이란 미디어가 등장하고 인간 자세를 스냅 사진으로 찍게 된 후부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육체적, 정신적 자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고 해요. 흔히들 말하는 “카메라를 의식한다.”라는 표현이 그 흔적이죠. “김치”나 “치즈”를 외치며 자발적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자세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렌즈를 손으로 가리며 카메라 셔터를 거부하기도 하죠.


카메라 앞에서 사진 잘 찍히고 싶은 욕망은 사람에게만 해당해요. 야옹이들은 사진에 잘 찍히고 싶은 욕망이 없어요. 그 욕망은 순전히 집사의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야옹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지 않아요.


사진을 읽을 때 사진이 ‘누구의 욕망’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과 프레임 안에 있는 관계체의 ‘포즈’와 ‘욕망’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어요. 서두에서 언급한 야옹이들이 자기 할 일을 하다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예측하고 포착한다면, 그 순간이 마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라고요.


<10+138주, 203, 하이 패션 포즈>


‘포즈’를 잡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은 이전 글에서 언급한 사진 분류법 가운데 ‘집사의 의도’가 매우 다분한 지점에 있어요. 인간의 세계에서 ‘포즈’라고 인식할 만한 자세와 야옹이들이 취하는 자세의 교집합을 찾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니까요.


그간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야옹이들의 그루밍에도 밀도의 차이가 있어요. 어떨 땐 그루밍 중에 작은 소리만 들려도 반응하는가 하면, 큰 소리로 이름을 계속 불러도 무아지경일 때가 있어요. 대체로 높은 밀도의 그루밍을 할 때 야옹이들이 그대로 멈추는 시간이 긴 편이에요. 앞에서 정의한 ‘포즈’가 완성되는 순간이죠.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오늘도 호시탐탐 #21> 글에 영감을 준 구절이기도 해요.


나는 ‘포즈’를 취하는 동안 내 자신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다른 육체로 만들고, 미리 앞질러 스스로 이미지로 변형시켜 버린다.


대개는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상황에서 해석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야옹이들이 무아지경으로 자기 할 일을 할 때 집사의 몸은 카메라를 든 육체로 재조직되고 야옹이들의 ‘포즈’를 기다리죠.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사진’이란 미디어의 힘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집사는 야옹이들의 특정 행동에 영향을 받아요. ‘포즈’를 취하는 야옹이 사진을 찍기 위해 집사가 카메라를 드는 것 역시 ‘포즈’를 취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무서운 사실일까요? 집사가 야옹이들 사진을 찍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야옹이들이 집사가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게끔 만드는 거죠. : )


<10+19주, 203, 현란한 발라당>


한바탕 장난감으로 노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를 느끼는 건 무척 쉬운 일이에요. 떡실신과 선잠의 비율을 살펴보면 되거든요. 흐트러짐이라곤 모르던 탐탐이의 어린 시절, 집사는 가끔 떡실신한 탐탐이를 보곤 했어요. 주로 엎드려 잠을 청하는 보통 때와는 달리 현란한 ‘발라당’ 자세를 취하면 떡실신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었어요. : )


<10+64주, 203, 현란한 발재간>


햇살 좋은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집사는 김호시의 ‘자세’를 보고 빵 터지고 말았어요. 얼굴은 타지 않게 가리고 일광욕하는 것 같았어요. 조금 기다려 보니까 모로 누워 기지개까지 켜더라고요.


야옹이들의 ‘자세 혹은 포즈’가 카테고리가 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대개는 집사가 사진 생활을 하면서 봤던 사진집이나, 다른 사람들의 사진으로 봤던 인상적인 구도나 포즈가 야옹이들의 행동에서 보일 때인데 순간 기 부르댕이라는 사진작가가 떠올랐어요. 작업의 의도나 작가의 세계관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포즈’만이 해당해요. 호불호가 뚜렷한 기 부르댕의 사진과는 달리 김호시의 자세는 너무 귀여우니까요. : )


<10+64주, 203, 위풍당당 김호시>


🥸: “호시야. 왜 침대보에 머리만 가리고 자는 거야?”

​🐯: “대구 오기 전에 오산에 있는 엄마가 일광욕할 때는 머리는 가리라고 했다옹!”

🥸: “아......”


가정교육을 잘 받은 김호시예요. : )


<10+237주, 302, 집사는 분명 책상을 샀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형식을 정하면 구체화하는 과정은 그저 시간을 기다리기만 할 뿐이에요. 야옹이들도 집사도 각자 영역에서 생활하다가 한 점에서 스치듯 마주하는 장면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거죠. 다만 그냥 사진만 찍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야옹이들의 떡실신을 보며 ‘천적이 없는 삶’‘사물의 쓰임’에 관해 떠올려 보는 시간도 가져요.


<(좌) 10+260주 / (우) 10+264주, 302, 집사는 분명 의자를 샀는데...>


여전히 우리 집의 거실에 빈티지한 분위기를 책임지고 있는 위 사진의 책상(이라고 쓰고 야옹이들 침대라고 읽는)과는 달리 이 의자는 몇 장의 야옹이들 사진을 남기고 당근행 급행열차를 타고 떠났어요.


<10+266주, 302, 한밤 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려 가던 길에...>


현란한 발재간은 역시 김호시 몫이에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껏 천진난만한 골반을 자랑하죠.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불 꺼진 거실 바닥은 야옹이들이 누워 자는 곳이어서 잠결이라도 발걸음을 내딛는데 조심하죠. 자정 무렵 김호시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어요. 이런 장면을 마주하면 비몽사몽인 집사의 육체는 재조직돼 저절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게 되죠.


<(좌) 10+278주 / (우) 10+279주, 302, (너의) 포즈와 (나의) 포즈가 만나>


사진 프레임 에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몸이 있어요. 사진 프레임 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야옹이들의 모습에 카메라를 드는 포즈를 취하는 몸이 있죠. 프레임 안과 밖의 만남과 경계를 허무는 일은 평생의 관심사인 까닭에 야옹이와 함께하는 삶을 기록하는 와중에도, 개별적인 사진 생활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은 무척 즐거운 일이에요.


기 부르댕의 사진을 떠올렸던 호시의 발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재미있는 자세롤 보여줬어요. (너의) 포즈(나의) 포즈가 만나 장면이 드러나는 순간이에요. : )


<10+153주, 203, 포인>


한쪽 다리를 높게 올려 그루밍하다가 그대로 멈춘 김호시에요. 집사는 호시의 자세를 보고 발레리나의 포인 동작을 떠올렸어요.


<10+279주, 302, 그대로 멈춰라>


다리를 들고 그루밍을 하면 집사는 조용히 카메라를 반셔터를 누른 채 그 모습을 지켜봐요. 늘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만 보고 지나칠 때가 더 많지만, 가끔 “이거다!”하고 번뜩이는 자세를 마주하면 조용히 셔터를 눌러요.


<10+207주, 302, 치명적인 뒤태>


막 이사했을 때의 일이에요. 로봇 청소기 이모님을 집에 들였는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로봇 청소기가 혼자 움직였을 때 탐탐이는 기겁하며 도망을 갔는데, 호시는 놀란 기색도 없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어요. 남다른 골반을 자랑하는 호시는 굵은 꼬리와 함께 치명적인 뒤태를 자랑하죠. 거실에 깔아놓은 카펫은 건조하고 까칠한 감촉이고 발톱 갈기에도 적당해서 야옹이들이 자주 머무르는 장소에요. 원형 스크래처에서 (연작) 고양이의 시간이 탄생했듯이, 카펫 위에서는 다양한 자세로 자거나 누워있는 야옹이들을 만날 수 있어요.


<10+260주, 302, 불편한 것 같은데 편해 보이는 김호시...?>


쿠엔틴 타란티노만큼의 발 페티쉬 까지는 아니겠지만 야옹이들의 발은 집사에게 무척 매력적인 존재에요. 무언가 ‘불편한 것 같은데 편해 보이는 자세’로 누워 있는 장면은 찍는 순간도, 언제든지 꺼내어 볼 때도 집사를 무척 즐겁게 해요. 늘 그랬듯이 일정한 사진-형식이 정해지면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꾸준히 기록해 두어요.


<10+276주, 302, 뒤집힌 세계(머리↑ 꼬리↓)>


집사가 좋아하는 김호시의 수면 자세에요. 보통 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자세로 잠을 청하다가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몸을 이리저리 돌릴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마치 맥세이프 충전기가 맥북에 “딸깍”하고 체결되는 것처럼 그대로 멈추는 순간이 있는데, 집사는 호시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반대 방향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카펫에서 누워 있거나 잠을 자는 야옹이들의 사진도 한두 장씩 찍다 보니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 )


<10+278주, 302, 탐이의 얼굴과 호시의 발>


고탐탐이도 카펫에서 발톱 갈이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해요. 다양한 표정의 김호시와는 달리 항상 같은 표정의 탐탐이지만, ‘경계’와 ‘애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묘한 매력이 있죠. 사실 탐탐이의 얼굴이 주는 느낌은 사진으로 온전히 담을 수가 없어서 늘 아쉬워요. 사진으로 봐도 예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예쁘거든요. 네. 집사는 팔불출입니다. : )


아침 시간. 방과 거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거실 바닥에 떡하니 누워 있는 탐탐이를 봤어요.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으려고 살피는데 소파 밑에 있던 김호시의 발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두 야옹이의 절묘한 위치가 잘 드러나게끔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어요. 야옹이들을 담은 사진들은 대부분이 야옹이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함이에요. 기록을 위해 야옹이들의 행동과 습성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억해 놓아요. 삶의 전 과정에서 야옹이들의 항상성이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거든요.


<10+282주, 302, 한껏 헤이해진 탐탐>


늘 주위를 경계하고 예민했던 탐탐이도 몇 년의 세월을 집사와 함께 살면서 꽤 무던해진 듯 해요. 물론 타고난 성향은 성향인지라 예민함과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혀를 내두를 정도예요. 집사가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물건을 옮겨도, 혹은 어디선가 소리가 나더라도 부동자세죠. 적어도 집사가 자신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겠죠? 한껏 해이해진 탐탐이의 태도는 집사를 뿌듯하게 만들어요.


야옹이들의 다양한 자세(pose)는 집사의 상상력을 자극해요. 야옹이들은 눈빛으로, 자세로 끊임없이 표현하죠. 집사는 야옹이들의 표현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표현을 담은 집사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살피도록 애를 써요.


‘미디어-몸’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단순화하면 인간의 몸이 새로운 미디어를 경험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이 된다는 의미에요. 여기서 미디어의 범주는 매우 넓어요. 문자, 바퀴, 사진, 전신 같은 ‘기술’에 관한 것뿐 아니라, 집사에게는 야옹이들도 미디어에 해당하죠. 이는 야옹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야옹이들에게는 집사가 미디어가 되겠죠. 길고양이와 집고양이는 ‘고양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미디어-몸’이죠. 집사의 몸은 야옹이들을 만나기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어요. 단순히 야옹이들을 ‘모시는’ 집사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사진-몸’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진을 하는 방법까지 이전과는 달라진 걸 느끼고 있어요.


야옹이들이 집사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듯이, 집사의 존재가 호시와 탐탐이에게도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기를 바랍니다.


다모앙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여러 장이 이어진 이미지는 클릭하고 확대하면 조금 더 크고 선명한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목차


#1 - 우리 집에 고양이가 산다.

#2 - 고양이 연쇄수면사건

#3 - 호시 운동 교실

#4 - 밤과 별과 야옹이

#5 - 창가의 김호시

#6 - 호시와 탐탐, 그리고 관계

#7 - 달과 해

#8 - 대배우 김호시

#9 - 꼬리의 역할

#10 - 고양이의 시간

#11 - 김호시의 수면 자세

#12 - 매력적인 빌런, 고탐탐 씨

#13 - 두 야옹이의 관계

#14 - 김호시 얼굴의 비밀

#15 - 야옹이와 이야기가 있는 사진

#16 - Cat Stand-ups​

​#17 - 점핑 호시탐탐

#18 - 난장과 옷장

#19 - Magic Hammpck Ride_*

#20 - 시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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