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35- 세 개의 시점
클라인의병

Lv.1 클라인의병 (117.♡.226.185)

2025년 12월 23일 PM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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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는 인간 영혼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기계적 ‘눈’으로서 기능한다. 이 ‘눈’이 어떤 시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세계는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현상한다. 또한 세계는 결코 전체로서 현상하지 않는다. (…) 『지연의 윤리학』 中 사진, 거짓의 역량 - 김홍기


발단은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미술비평서에서 계속 눈길이 머무르는 어느 구절이었어요. 구절 중에서도 ‘시점’이란 단어에 눈이 멈춥니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니 시점이란 단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입니다.


시점1(始點) 어떠한 것이 처음으로 일어나거나 시작되는 곳. = 기점.

시점2(時點) 시간의 흐름 가운데 어느 한순간.

시점3(視點) 어떤 대상을 볼 때에 시력의 중심이 가서 닿는 점. ≒ 주시점.


엄밀히 따져보면 책의 구절에 있는 시점이란 단어는 공간적 의미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까닭에 사전에는 없는 의미에 가깝지만, 이미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시점이란 말이 가진 여러 의미에 흥미를 느낀 집사입니다. 의미마다 그동안 야옹이들과 함께한 여러 장면이 떠올랐거든요.


<10+1주, 203, 고양이의 시간(001)>


첫 번째 시점1(始點)입니다. ‘시작되는 지점’을 뜻합니다.

처음 시, 혹은 비로소 시 자를 씁니다. ‘비로소’는 익숙한 말이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 다시 사전을 찾아보니,

비로소: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전까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던 사건이나 사태가 이루어지거나 변화하기 시작함을 나타내는 말


한 자, 한 자 사전에 쓰인 의미가 마음에 듭니다. 고작 야옹이들 사진일 뿐이지만 제목 앞에 (연작)을 붙이는 사진들이 생각납니다. 그중에서도 오산에서 부모 형제와 10주간 함께하다가 비로소 집사를 만난 첫 주, 미리 사 놓은 원형 스크래처를 보자마자 침대로 사용하는 김호시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전에도 시간은 흘렀지만,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죠. 바로 이 지점이 너와 나, 야옹이와 집사가 만나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이에요. ‘시작’이라는 말이 참말로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연작) 사진은 반드시 시작에 해당하는 사진이 있어요. 처음 이 장면을 마주했을 때 이어지는 미래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연작) 고양이의 시간 中>


만약에 원형 스크래처를 사지 않았더라면 절대 탄생하지 않았을 사진이에요. 잠깐 발톱을 갈고 말았더라면, 김호시처럼 넉살 좋게 스크래처 안에서 잠들지 않았더라면 역시나 <(연작) 고양이의 시간>은 없었을 테지요.


기록으로 시작되는 사진을 기억해 놓으면 (야옹이) 사진 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비슷한 장면을 만날 때마다 기록해 놓으면 켜켜이 쌓여 나중에는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가 되니까요. : )


<10+19주, 203, 창가의 김호시(001)>


이전에도 창가에서 김호시를 만난 장면은 있었지만, 위 사진에 있는 김호시는 시선이며, 자세며, 말아놓은 꼬리까지 집사에게 이상적인 실루엣을 가진 것으로 느껴졌어요. 무척 마음에 든 나머지 역시나 “장면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가 비슷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사진으로 담았고 <(연작) 창가의 김호시>가 탄생했어요.


<(연작) 창가의 김호시 中>


한 장, 한 장이 좋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모아 놓았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진이 있지요. <(연작) 창가의 김호시>는 한 장, 한 장도 좋고 모아 놓았을 때도 역시나 좋네요. : )


<10+8주, 203, Cat stand-ups(001)>


<(연작) Cat stand-ups>는 두 발로 선 야옹이를 담은 사진이에요. 시각적 일관성을 위해 ver. 김호시만을 추렸어요. 사실 두 발로 서 있는 야옹이 사진은 대단한 영감을 준다거나 (연작)을 염두에 둔 사진은 아니에요. 하지만 두 발로 선 모습 자체가 주는 재미가 커 이 사진을 시작으로 야옹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카메라를 들게 된 장면이에요.


<(연작) Cat stand-ups 中>


두 발로 서 있는 야옹이 사진에서 묘한 에너지를 느껴요. 지금과는 달리 왕성한 생체 에너지를 뽐내던 시절 사진이 많은 데다가 수직으로 뻗은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야옹이들이 두 발로 선 모습을 마주해도 늘 카메라로 포착하지는 못하기에 더욱 소중하고 인상적인 장면이에요.


<10+246주, 302, 점핑호시탐탐(001)>


밥그릇이 침대 옆의 나무 수납장 위에 있던 시기에 찍었던 <(연작) 점핑호시탐탐>입니다. 카메라 셔터 누를 준비를 하고 “밥 먹자~!”라고 하면 거실에 있던 야옹이들이 침대로 달려와 뛰어오르는 장면들을 모았어요. 첫 번째 사진이 탐탐이었는데 제법 초점이 맞고 의도대로 나와 짜릿했던 기억이 있어요.


<(연작) 점핑호시탐탐 中>


카메라를 침대 위에 놓고 야옹이들이 점프하는 순간 단 한 번 셔터를 누르는 방식 덕분에(?) 초점이 흐리거나 야옹이들 일부 모습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어요. 팔불출 집사지만 모아 놓고 보니 더 좋네요. : )


<10+11주, 203, 거긴 어떻게 올라간거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화장실 창문에 올라간 김호시에요. 김호시를 찾다가 화장실에서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나요.


‘대체 그 위에는 어떻게 올라간 거지?’ 생각하면서 호시가 다시 뛰어내리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는 사진을 남겨 두었어요. 나중에 사진을 다시 보니 거울에 비친 모습이 인상적이라서 기억해 두었지요. 거울에 비친 김호시를 보면 늘 떠오르도록 말이죠.


<10+141주, 203, (좌) 누구냐 넌? / (우) 널 잡으러 간다옹>


어느 날인가 세월이 흘러 거울에 비친 김호시를 마주했을 때, 예전 거울 사진을 떠올린다면 새로운 거울 사진이 ‘장면’으로 탄생하는 것이죠. 연작 사진은 밀도가 아주 높은 것도 있지만 아주 낮은 밀도를 가지기도 해요. 앞서 소개한 <고양이의 시간>, <창가의 김호시>, <Cat stand-ups>, <점핑호시탐탐>이 밀도가 높다면 거울과 함께하는 야옹이 사진은 밀도가 낮은 편에 속해요.


<(좌) 10+201주 / (우) 10+302주, 302, 거울 속에 김호시가 있구나...>


야옹이들이 거울을 보거나, 거울 곁에 있을 때, 카메라를 들 여력이 된다면 셔터를 눌러요. 특별히 제목을 붙이는 연작 사진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비슷한 장면이 모이는 거죠.


<10+279주, 302, 김호시 옆에 김호시>


대부분 연작 사진은 최초의 장면이 가장 좋을 때가 많아요. 그만큼 ‘시작’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일 테죠. <창가의 김호시>와 <점핑호시탐탐>이 그래요. 어떤 사진들은 꾸준히 찍다 보면 나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나타나기도 하죠. 위 사진처럼요. : ) 그렇지만 늘 떠올려요. 처음, 거울 속에 있던 김호시를 말이죠.


첫 번째 의미의 시점(始點)은 ‘시작’을 의미하고, 시작을 ‘기억’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10+322주, 302, 잠 / 하품 / 깸 - 어느 장면을 선택할 것이냐옹>


두 번째 시점2(時點)은 ‘시간의 흐름 가운데 어느 한순간’이라는 의미에요.


때 시(時) 자를 씁니다. 보통 ‘구도’라고 설명하는, 공간적으로 잘라내는 의미를 제외하면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자른다는 의미에서 사진이란 미디어의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뜻이에요. 카메라를 들고 언제 셔터를 누르는지에 따라 어느 부분은 영원히 남는 장면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다시는 못 볼 순간이 돼 사라져 버리죠. 그래서 집사는 셔터를 한 번 누른 다음에 카메라를 내리지 말고, 조금 더 기다리며 지켜보다가 몇 번 더 셔터를 누르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요.

운이 좋으면 골반을 활짝 열고 자는 호시를 찍을 때 하품하는 모습과 더불어 집사를 쳐다보는 모습까지 담을 수가 있죠. : )


대부분 정보를 영상으로 저장하는 것이 디폴트가 된 시대임에도 여전히 사진이란 미디어를 더 좋아하는 구시대적 집사는 야옹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재미있는 순간을 만날 때마다 ‘장면’으로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10+15주, 203, 알을 깨고 나온 김호시>


각도에 따라 야옹이들이 ‘알’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데미안의 “고양이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호’미안 정도는 되겠죠.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재미는 아니지만 야옹이들을 보는 집사의 쏠쏠한 재미 정도는 돼요. 관건은 ‘언제’ 셔터를 누를 것인가죠.


<10+116주, 203, 알을 깨고 나온 고탐탐>


집사의 시점에서는 알을 깨고 나온 ‘탐’미안이지만, 탐탐이의 시점에서는 “누구냐옹? 누가 감히 나의 잠을 깨웠냐옹?!”입니다. 저에게 사진의 묘미는 관찰을 통해 시작점을 ‘결정’하고 아주 잠깐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있어요. 예민한 탐탐이는 집사가 셔터를 누르면 곧 일어날 거란 걸 믿고알고 알을 깨고 나온 탐탐이를 담을 수가 있었어요. : )


<10+48주, 203, 어쩌다 윙크>


집사의 사진 생활에서 순간 포착이라는 건 어쩌다 우연히 걸리는 결과가 아니에요. 상황을 관찰하면서 머릿속에는 잠시 후에 이어질 장면을 상상해요. 최종 결과물과 머릿속 상상이 일치할수록 순간 포착의 짜릿함이 커져요. 재미있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할 때 느끼는 짜릿함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두 번째 시점(時點)이 가지는 의미와도 잘 어울리죠.


<(좌) 10+140주, 203, / (우) 10+290주, 302, 김호시의 눈동자도 불타오른다.>


야옹이의 눈동자는 어두울수록 커져요. 또 하나 눈동자가 불타오르는 순간이 있는데 사냥놀이에서 몹시 흥분했거나 혹은 초-집중 상태에 있을 때입니다. 그런 까닭에 평소 낙천적이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김호시의 커다란 눈동자는 사진으로 남기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순간이에요. ‘장면’이 된 시점(時點) 전, 후의 순간은 사진으로 남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요. 그래서인지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장면들은 밀도가 무척 높아요.


<(좌) 10+323주 / (우) 10+ 324주, 302, 흔치 않은 늘어짐>


늘 빈틈이 없는 탐탐이가 흔치 않게 늘어질 때도 포착할 가치가 높은 장면입니다. 창가에서 자연 바람을 기분 좋게 맞다가 깜빡 잠이 들거나, 뽀송한 침대보 위에서 늘어졌을 때가 그렇죠. 만나기는 어렵지만 사진으로 담기에는 아주 느긋한 장면입니다. : )


<10+325주, 302, 내 이름은 고탐탐>


24/7 예쁜 탐탐이지만 위 사진처럼 특별히 더 예쁠 때가 있어요. 조명과 탐탐이와 카메라 사이의 각도, 무엇보다 탐탐이 그날의 기분까지 삼박자가 떨어져야 겨우 만나게 되는 희귀한 장면이에요. 더군다나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예뻐서 더욱 그렇죠.


탐탐이에게 충분한 협조를 구한다면 그 순간을 포착해 ‘장면’으로 기록해요.


<10+323주, 302, 전경과 후경 / 탐탐이와 호시>


세 번째 시점3(視點)은 ‘어떤 대상을 볼 때 시력의 중심이 가서 닿는 점(≒ 주시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건 카메라의 초점과 아웃포커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사진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번역하는 미디어입니다. 사진을 볼 때 ‘면’을 보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위상차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위와 같은 장면에서는 보통 초점을 다르게 해서 최소한 두 번 셔터를 눌러요.


<10+153주, 203, 주먹 쥐고 쿨쿨 자>


사진을 찍을 때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는 노출과 프레임과 더불어 기본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얼굴, 그 중에서도 눈에 맞추는 편이지만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죠. 두 야옹이 사이 위상차를 이용한 사진 외에도 김호시의 찹쌀떡처럼 그냥 지나치기 힘든 순간에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10+289주, 302, 집사에게 우다다>


멀리 있는 탐탐이를 후경으로 두고 그보다 살짝 가깝게 있는 호시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셔터를 누르려던 순간, 갑자기 김호시가 집사에게 다가옵니다. 당황하지 않고 일단 셔터를 누릅니다. 두 야옹이 어디에도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오히려 선명하지 않아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남았어요.


“초점이 맞는 부분은 선명하다.”라는 사실은 “선명한 부분이 주요하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선명하지 않아도 주요한 부분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야옹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집사가 더 집중하고 신경 쓰는 부분은 정확한 초점에 해당하고, 덜 신경 쓰는 부분은 흐린 초점에 해당한다고 여긴다면 가끔은 정반대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게 된 장면이라 마음에 쏙 드는 사진입니다. : )


한 줄 글에서 읽은 ‘시점’이란 단어에서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 장면들을 떠올렸어요. 처음에는 카테고리의 경계가 선명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니 처음에 느꼈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사실은 경계가 분명할 필요가 없는 거죠. 야옹이들과 함께하는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테니까요. 생각의 끝에 다다릅니다. 사진을 배열하고 글을 고쳐 쓰는 밤입니다. 야옹이들을 보니 괜스레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밤이기도 하네요. 



늘 그렇듯이 냐옹이당에 있는 모든 고양이와 집사님의 즐겁고 건강한 시절을 응원하며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P.S

​- 팔불출 집사의 개인적인 의견과 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 고탐탐이는 2025년 7월 28일, 10+424주 간의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고양이별로 돌아갔습니다.




[냥큐멘터리] 오늘도 호시탐탐 #목차


#1 - 우리 집에 고양이가 산다.

#2 - 고양이 연쇄수면사건

#3 - 호시 운동 교실

#4 - 밤과 별과 야옹이

#5 - 창가의 김호시

#6 - 호시와 탐탐, 그리고 관계

#7 - 달과 해

#8 - 대배우 김호시

#9 - 꼬리의 역할

#10 - 고양이의 시간

#11 - 김호시의 수면 자세

#12 - 매력적인 빌런, 고탐탐 씨

#13 - 두 야옹이의 관계

#14 - 김호시 얼굴의 비밀

#15 - 야옹이와 이야기가 있는 사진

#16 - Cat Stand-ups​

​#17 - 점핑 호시탐탐

#18 - 난장과 옷장

#19 - Magic Hammpck Ride_*

#20 - 시청자

#21 - 포즈(pose)

#22 -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23 - 첫눈

#24 - 사물의 쓰임

#25 - 뾰족하고 보드라운 졸음. 잠

#26 - 표정 속에 산다.

#27 - 틈. 사이. 빼꼼.

#28 - 꼬리가 길면 (호시가 눈에) 밟힌다.

#29 - 뜻밖의 장면

#30 - 봄. 야옹이를 봄. 야옹이가 봄.

#31 - 나는 하품하는 고양이

#32 - 둘이라서 다행이야

#33 - 방비와 무방비

#34 - 김호시는 빛나는 야옹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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